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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물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 예술가의 책무와 인간 욕망
등작 지음 / 드림공작소 / 2022년 11월
평점 :
20년간 다양한 예술가로 활동하며 살아온 삶과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철저히 작가 자신에게 맞춰진 에세이집이다. 스스로 고뇌하고 창조한 예술의 세계와 삶의 어느 곳에 맞닿아 있는 현실과의 접점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조금 모호하기도 하고 명확하게 무언가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독자는 무언가를 명확히 하기보다 짐작하고 희미한 경계선을 그저 들여다볼 뿐이다. 내용만큼이나 담겨있는 글의 형태도 다양한데 수필, 시, 산문, 노래 작사, 영화 시나리오 등이 여기저기 곳곳에 펼쳐져 담겨있다. 마침표와 쉼표도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끝나지 않는 산문 같은 글을 줄 따라 그저 읽어내려가야 한다.
(블로그에 옮긴 인용 부분은 편의상 임의로 쉼표와 마침표를 추가했다)
어떤 것은 내면의 감정을 담은 글이고, 또 어떤 것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또 어떤 글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피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때론 동그라미, 세모, 네모 처럼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기도 한다. 삶과 영혼에 새겨진 색채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있는데,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표현과 내용을 담고 있어 개인마다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모호하고 애매한, 혹은 이해하기 힘든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저자는 20년간 그림을 만 점 정도 그렸고 시를 4000편 정도 썼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안타깝게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만나볼 수 없었다. 단, 그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겪은 고뇌나 우울감, 색채 등의 내면의 이야기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작가 본인의 감정 상태를 포함한 정치, 자연, 사회 이슈 등 무수히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그때그때 느낀 감정의 언어들을 시나 영화 시나리오, 에세이 등의 형태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색채에 대한 표현한 부분을 옮겨보면, 색채 그 자체보다 각 색감에서 느끼는 작가 자신의 이미지나 형상화를 더 깊이 있게 다뤘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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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검정의 미덕은 하나의 빛으로 일어서는 데 있다. 검은색의 아름다움은 빛의 변화에 시시각각 변한다.
■남색: 짙은 낭만의 색깔. 무지개를 지탱해 주는 색채로서 인생에 비유하자면 청년이라기보다 중년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자연에서 나오는 촘촘하고 면밀한 단단함은 남색의 고독과도 닮았다.
■노랑: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숨결을 넣어주는 색채가 노랑이다. 희망을 주는 색깔. 자연의 색채에서 드러내지 않으며 빛의 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 바로 노랑의 아름다움이다.
색채로 읽는 언어, 언어로 읽는 색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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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는 부분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그림은 몸과 정신이 함께 움직여야 되는 노동이며, 일심동체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외에도 영혼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 대목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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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배워서 되는 것이라면 모든 이들이 배워서 훌륭한 화가가 되겠지만 그림은 간절한 삶의 아픔과 아득한 이상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몸과 정신이 함께 움직여야 되는 노동이다. 정신적인 시달림이 많으면 손조차 잘 움직여 주질 않는다.
(...)
가난한 건 호주머니가 아니라 내 영혼임을 알고 사랑 찾아 헤매는 방랑자처럼 그림 안에서 헤매고 싶다. 갈 곳 잃은 것이 아니라 갈 곳이 생겼기 때문에 진정 하얀 화면에 들어갈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1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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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인데, 이 중에서 '봄'에 대해 서술한 시를 일부 옮겨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봄'에 대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작가 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로, 고독하고 우울한 계절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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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눈물 쏟는 봄
(...)
고독의 봄
(...)
나에겐 봄은 사랑도 아픔도 아닌 다만 영혼의 조울증이 극심하게 뿌리를 건드려 절망하는 계절이었다. 계절이다.
다시는 찾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약봉지를
찢어 입 안에 털어내고 약물의 힘에 잠을 잃어버리는 잠의 시간.
1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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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서술된 내용이라 난해한 부분도 생각보다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술가의 머릿속을 유영하고 있는 느낌도 들어 독특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오랫동안 예술가로 살아온 작가의 오랜 고심과 감정적으로 느끼는 힘듦, 삶에서 겪고 느끼는 일련의 생각들을 어쩌면 이렇게 글로 풀어내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색채를 표현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위에 언급한 <색채로 읽는 언어, 언어로 읽는 색채> 부분이다. 보통 단조롭게 표현하는 색채들이 글을 읽다 보면, 하나씩 옷을 입듯 이미지와 형상화가 덧입혀지는 느낌이 들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색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감정들이 담긴다. 그래서 상상하게 되고 표현된 언어들이 느낌으로 다가왔다.
다음에는 색채에 집중된 글이나 전시회를 통해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쪽이 더 내 취향에 가까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