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배송 하시겠습니까 네오픽션 ON시리즈 6
이세라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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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에서 모바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발전하면서 주목받게 된 택배. 특히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선포되면서 비대면은 주류가 되었고, 이에 택배는 우리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 책 <특별배송 하시겠습니까>는 그런 택배기사들의 이야기이자 일반 서민들의 삶을 담고 있는데, 절박한 순간 동아줄처럼 내려온 '특별배송' 제안은 이들에게 삶의 희망이자 빛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특별배송'으로 얻은 시간과 물질적 풍요는 이내 곧 호기심을 유발하고 마침내 목숨을 위협하는 수단으로까지 이어진다.

 

"평온한 삶과 돈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특별한 택배는 단순히 일반 택배보다 수수료가 높아서 '특별한'것이 아니었다. 택배를 전달하는 방식과 이를 받아 가는 사람들의 독특한 모습, 일반 택배보다 몇 배는 높은 수수료, 손바닥만 한 작은 사이즈의 상자 등 일반 택배와는 모든 것이 다르기에 '특별배송'으로 취급되었다.

 

더불어 '특별배송'은 일반 배송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호기심이 드는 것은 물론, 마침내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까지 부추기는 자기와의 사투도 감내해야 했기에 어느 모로 보나 이것은 정말 '특별'했다.

 

그러나 과한 호기심은 화를 부른다고, 일반 배송에서 특별배송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대부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택배 상자를 확인하는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을 겪게 되는데, 무엇이 택배기사들로 하여금 이 택배 상자에 관심을 내보이게 만든 것일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민호와 용재 역시도 퍽퍽한 삶에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택배기사 일을 시작하게 된다. 김밥 집만으로는 아이들을 키우며 생활하기가 빠듯했던 민호는 낮에는 김밥 집에서 아내와 함께 일하고, 밤에서 새벽 사이에는 어니스트 택배사에서 택배 일을 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어니스트 택배사는 일반 택배와는 다르게 밤에서 새벽에만 근무한다는 것이 특이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민호에게는 오히려 딱 맞는 일이었다. 

 

그러다 친구인 용재에게도 자신이 일하고 있는 택배사를 소개해 주게 되고 둘은 함께 택배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먼저 입사한 민호를 통해 용재는 이 택배사에는 일반 배송 외에도 특별 배송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특별 배송의 기사로 배정되어 일하게 될 경우 고가의 물품을 배송하고 일반 수수료의 약 100배 이상이 되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탐은 나지만 원한다고 모두 될 수 없는 특별 배송이기에 그저 기회를 보고만 있던 이들에게 마침내 특별 배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한 푼이 아쉬웠던 이들은 곧 몇 배는 더 손에 거머쥘 돈을 생각하며 각자의 희망을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민호가 기회를 잡게 된다. 희망에 부풀어 있던 그가 특별 배송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뭔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으나 단순 강도의 소행으로 일단락된다. 

 

이후 마침내 용재도 특별 배송 제안을 받게 되고 그는 친구인 민호의 죽음에 특별 배송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을 하며 제안을 수락한다. 용재는 특별 배송을 하며 민호와 같은 수순을 밟게 되는데,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그는 마침내 택배 상자를 개봉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판도라 상자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숨 막히는 추격전과 추리 전이 시작되는데, 어니스트 택배사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려는 이들과 비밀을 숨기려는 자들 그 사이에서 위태로운 목숨을 이어나가며 쫓고 쫓기는 사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읽는 내내 피 튀기는 현장과 생생한 묘사들은 영화를 보듯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우리 삶에 가까이 있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택배에 관련된 이야기이기에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그저 단순한 배송만을 위한 서비스가 한편에서는 특별 배송과 특별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자행되고 있는지, 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매번 타인의 택배 상자를 개봉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특별 배송 기사들의 행태를 보며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니스트 택배사를 보며 과거 이탈리아나 홍콩의 마피아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권력과 힘을 이용해 사업을 장악하고 그들의 룰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찍어 누르거나 이용하다 목숨을 빼앗는 행태라던가 조직원들을 이용해 또 다른 조직을 치는 모습들에서 과거 비슷한 형태의 잔재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선택, 다른 결말. 친구인 민호와 용재는 같은 선택을 했지만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그들이 이것을 해결하는 방식 혹은 과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숨겨진 든든한 조력자들의 존재도 한몫하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소설은 스토리 그 자체보다 소설 속 인물들에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는데, 특히 가장 의문스러웠던 인물은 어니스트 택배사에서 회계 및 각종 잡무를 담당하고 있던 서미란대리이다. 소설 등장 시점부터 시선이 갔던 그녀는 어쩌면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치트키일지도 모르겠다.

 

공부와는 인연이 없다고 판단해 중학교를 마지막으로 공부를 그만두고, 20대 중반에는 수십 명을 거느린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어니스트 택배사의 실질적 주인인 강수와 태수 형제의 삶도 재조명되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용재가 암이 재발한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보고 태수의 속내를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
태수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내 생각했다. 
(...)
자식이나 형제가 뭐라고 그따위 관계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거지?
(...)
차라리  좋지 않은 환경에서 허우적거릴 게 아니라 과감하게 뛰쳐나와 거칠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성공하면 그때 도와주든가 말든가 하면 되지 않은가?
(...)
다 같이 죽도 밥도 아닌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맞는 것인가? 이런 태수의 생각에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않아서 그렇다."
그 질문에 대한 태수의 대답은 '까고 있네'다.
(...)
태수에게 희생이란 대단한 이유나 가치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의 성향일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보다 큰 것, 보다 중요한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본인의 인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가족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선택일 뿐이다.
(...)
그들은 위선자들이며 겁쟁이고 새가슴이다.

62~63페이지 中
=====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용재의 모습을 지켜보며 유달리 불편하게 느끼던 태수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 문장이자, 여러모로 자꾸 되새기게 되는 문장이다. 어쩌면 이것은 태수가 가진 가치관이자 그가 이만큼 사업을 성장시키는 데 버팀목이 되어준 생각들일지도 모르겠다.

 

태수라는 캐릭터를 지우고 보면 굉장히 현실적으로 와닿는 문장인데, 사람은 누구나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던,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어쨌든 결론적으로 보면 모두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것을 태수는 '성향'으로 본다는 것이 좀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가족을 위한 희생을 선택하는 자들을 향해 위선자들이고 겁쟁이, 새가슴으로 표현했는데, 자신과 반대편에 있는 다른 '성향'의 사람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사이다적인 대답으로 큭큭 웃음이 나기도 했는데 '까고 있네'라는 답이 그것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도 모두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지는 않으므로 '까고 있네'라는 태수의 말은 무심히 가정사나 환경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시원한 한방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가담하게 된 범죄. 그 실체를 파악하는 순간 죽음 혹은 그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어니스트 택배사의 룰이다. 단순히 눈 감고 귀 막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택배 배달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삶이 바뀌었다.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그들은 수없이 머리를 굴리며 탈출을 도모한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한다. 가장 밑바닥의 피식자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까지의 여정 속에 다른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뿐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이들이 그리는 반전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상황과 환경은 비슷했다. 그런데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단순히 환경 탓을 하기에는 대처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다.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릴 때가 있다. 정말 환경만의 탓일까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라 또 수많은 선택지를 갖는다.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환경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만든 것이고,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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