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는 주로 서재에서 서식한다. 책도 읽고, 소파에서 낮잠도 자고, 글도 쓰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 야구 중계도 본다. 사실 두 여자(딸아이와 아내)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취향이 달라서 거실에 머무는 시간이 적기도 하다. 
아쉬울 게 없는 서재에서의 칩거지만 단 하나, 굶주림에는 장사가 없다. 식사 시간에는 주로 딸아이가 와서 “지금 식사를 하시겠느냐” 묻거나 “식사를 하시오”라고 통보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이 주식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사란 것이 어느덧 틀에 박힌 일상의 습관이거나 의무감에서 이뤄지는 행위라면, 순수하게 호감으로 선탁해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이 ‘간식’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서재 생활은 간식에 치명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는 나의 아지트인 서재를 할렘처럼 생각해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손을 놓고 있는데, 음식 찌꺼기나 냄새마저 고약하다면 서재 철폐령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서재에 먹거리를 들이지 않는다.
서재 생활에 심취하더라도 늘 바깥세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다. 그래야 후각으로 그들이 어떤 간식을 준비하는지와 요리는 완성되었는지, 청각으로 그 양은 어느 정도 되는지와 간식을 얼마만큼 먹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물론 아내가 야구 중계소리가 신경 쓰이니 문을 꼭 닫으라는 요청을 하면 당연히 꼬~옥 닫아준다.
그들이 언제 간식을 먹는지 어떤 종류의 간식을 먹는지 그 양은 얼마나 되는지 서재에 앉아서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괜히 가장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의 식탐도 충족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 즉 카레라든지 치즈를 잔뜩 얹은 옥수수 비빔밥을 먹겠다고 쪼르르 나갔다가 괜히 체면만 구길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대체로 식사를 끝내고 30분 정도 뒤에 간식을 먹는다. 그때쯤에는 더욱 레이더를 정교하게 가동해야 하며, 그들이 완성된 간식을 텔레비전 앞의 탁자에 딱 올리자마자 염치없이 달려 나가서는 안 된다. 그들의 포만감이 3분의 1정도 충족되어서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눔의 미학을 고려할 수 있을 때여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진즉부터 준비한 자에게만 찾아오는 법.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 가령 어느 날 딸아이가 순댓국밥이 먹고 싶은데 취객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순댓국밥집에 행차하기가 거시기하다고 하면 냄비를 들고 가서 포장해 와야 하고, 그들이 새우 버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냉큼 운전하고 가서 사 와야 한다.
여느 때처럼 느긋하게 메이저 리그를 감상하는데 촉이 왔다. 가장 적절한 시간에, 너희의 간식을 뺏어 먹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표정과 몸짓으로 군웅이 할거하는 거친 광야인 거실로 나갔다. 그들이 먹으려고 하는 것은 골드키위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여인들의 간식을 뺏어 먹는 하이에나도 지켜야 할 상도가 있다. 칠거지악에 삼불거라는 예외가 있듯이 나도 삼불식을 지킨다. 우선 딸내미가 직접 장만한 간식이다. 아직 과도를 다루지 못하는 딸내미가 직접 깎은 과일은 그녀가 그걸 극도로 먹고 싶었음을 의미한다. 그 과일을 뺏어 먹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둘째,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뺏어 먹었다가는 그들의 식탐이 충족되지 못해 원망받을 수 있는 경우다. 셋째는 배스킨라빈스31의 체리쥬빌레 속 왕 체리. 그건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불행하게도 오늘은 작은 접시 위에 올라앉은 골드 키위를 보아하니 키위 두 개쯤을 딸내미가 직접 깎아서 마련한 간식이다. 삼불식 중에 무려 두 가지나 해당된다. 아내도 딸아이를 위해서 먹지 않고 있었다. 지킬 것은 지키는 매너남답게 조용히 물러나려 했는데 거실까지 나온 것이 괜히 머쓱해 딱 한 조각만 먹겠다고 했다. 예상대로 딸아이와 아내는 완강히 거부한다. 나는 그들의 거부 탓에 내가 과일 한 조각도 못 얻어먹고 돌아선다면 그들도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고, 가장으로서 가족 구성원에게 괜한 죄책감을 주기 싫으므로 한 조각만 먹겠으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의 합리적인 요구에 딸아이와 아내는 경계를 풀었다. 딸아이는 저게 접시에서 가장 작은 조각이라는 제 어미의 조언에 따라 그놈을 포크로 찍어 내 입에 넣어줬다. 물론 포크에 침을 묻혀서는 절대 안 된다는 지엄한 요구를 했다.
사실 그 골드키위는 우리 모친께 드리려고 사둔 것인데 어찌하다 보니 가져가지 않아서 우리 집 냉장고에 있었다. 딸아이도 제 할머니처럼 골드키위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 그뿐이 아니라 유년 때부터 제 할머니처럼 노란 시루떡을 좋아해서 재래시장에 가면 조공용으로 자주 사들고 집에 오곤 했다.
제 할머니와 식성을 닮은 딸아이에게서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가 느껴진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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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는 주로 서재에서 서식한다. 책도 읽고, 소파에서 낮잠도 자고, 글도 쓰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 야구 중계도 본다. 사실 두 여자(딸아이와 아내)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취향이 달라서 거실에 머무는 시간이 적기도 하다. 
아쉬울 게 없는 서재에서의 칩거지만 단 하나, 굶주림에는 장사가 없다. 식사 시간에는 주로 딸아이가 와서 “지금 식사를 하시겠느냐” 묻거나 “식사를 하시오”라고 통보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이 주식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사란 것이 어느덧 틀에 박힌 일상의 습관이거나 의무감에서 이뤄지는 행위라면, 순수하게 호감으로 선탁해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이 ‘간식’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서재 생활은 간식에 치명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는 나의 아지트인 서재를 할렘처럼 생각해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손을 놓고 있는데, 음식 찌꺼기나 냄새마저 고약하다면 서재 철폐령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서재에 먹거리를 들이지 않는다.
서재 생활에 심취하더라도 늘 바깥세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다. 그래야 후각으로 그들이 어떤 간식을 준비하는지와 요리는 완성되었는지, 청각으로 그 양은 어느 정도 되는지와 간식을 얼마만큼 먹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물론 아내가 야구 중계소리가 신경 쓰이니 문을 꼭 닫으라는 요청을 하면 당연히 꼬~옥 닫아준다.
그들이 언제 간식을 먹는지 어떤 종류의 간식을 먹는지 그 양은 얼마나 되는지 서재에 앉아서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괜히 가장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의 식탐도 충족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 즉 카레라든지 치즈를 잔뜩 얹은 옥수수 비빔밥을 먹겠다고 쪼르르 나갔다가 괜히 체면만 구길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대체로 식사를 끝내고 30분 정도 뒤에 간식을 먹는다. 그때쯤에는 더욱 레이더를 정교하게 가동해야 하며, 그들이 완성된 간식을 텔레비전 앞의 탁자에 딱 올리자마자 염치없이 달려 나가서는 안 된다. 그들의 포만감이 3분의 1정도 충족되어서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눔의 미학을 고려할 수 있을 때여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진즉부터 준비한 자에게만 찾아오는 법.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 가령 어느 날 딸아이가 순댓국밥이 먹고 싶은데 취객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순댓국밥집에 행차하기가 거시기하다고 하면 냄비를 들고 가서 포장해 와야 하고, 그들이 새우 버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냉큼 운전하고 가서 사 와야 한다.
여느 때처럼 느긋하게 메이저 리그를 감상하는데 촉이 왔다. 가장 적절한 시간에, 너희의 간식을 뺏어 먹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표정과 몸짓으로 군웅이 할거하는 거친 광야인 거실로 나갔다. 그들이 먹으려고 하는 것은 골드키위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여인들의 간식을 뺏어 먹는 하이에나도 지켜야 할 상도가 있다. 칠거지악에 삼불거라는 예외가 있듯이 나도 삼불식을 지킨다. 우선 딸내미가 직접 장만한 간식이다. 아직 과도를 다루지 못하는 딸내미가 직접 깎은 과일은 그녀가 그걸 극도로 먹고 싶었음을 의미한다. 그 과일을 뺏어 먹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둘째,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뺏어 먹었다가는 그들의 식탐이 충족되지 못해 원망받을 수 있는 경우다. 셋째는 배스킨라빈스31의 체리쥬빌레 속 왕 체리. 그건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불행하게도 오늘은 작은 접시 위에 올라앉은 골드 키위를 보아하니 키위 두 개쯤을 딸내미가 직접 깎아서 마련한 간식이다. 삼불식 중에 무려 두 가지나 해당된다. 아내도 딸아이를 위해서 먹지 않고 있었다. 지킬 것은 지키는 매너남답게 조용히 물러나려 했는데 거실까지 나온 것이 괜히 머쓱해 딱 한 조각만 먹겠다고 했다. 예상대로 딸아이와 아내는 완강히 거부한다. 나는 그들의 거부 탓에 내가 과일 한 조각도 못 얻어먹고 돌아선다면 그들도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고, 가장으로서 가족 구성원에게 괜한 죄책감을 주기 싫으므로 한 조각만 먹겠으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의 합리적인 요구에 딸아이와 아내는 경계를 풀었다. 딸아이는 저게 접시에서 가장 작은 조각이라는 제 어미의 조언에 따라 그놈을 포크로 찍어 내 입에 넣어줬다. 물론 포크에 침을 묻혀서는 절대 안 된다는 지엄한 요구를 했다.
사실 그 골드키위는 우리 모친께 드리려고 사둔 것인데 어찌하다 보니 가져가지 않아서 우리 집 냉장고에 있었다. 딸아이도 제 할머니처럼 골드키위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 그뿐이 아니라 유년 때부터 제 할머니처럼 노란 시루떡을 좋아해서 재래시장에 가면 조공용으로 자주 사들고 집에 오곤 했다.
제 할머니와 식성을 닮은 딸아이에게서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가 느껴진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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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우리 집의 정권이 교체되는 것 같다. 돌아가는 정세를 보아하니 아내는 상왕으로 물러나는 듯하고, 중학교 2학년 딸내미가 실세로 군림하는 형국이다. 
며칠 전, 기념일을 챙기는 것에 젬병인 나는 딸내미가 아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에 자식 키우는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그리고 이틀 전에 다시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어젯밤에 딸내미는 아내의 생일을 맞아 편지를 쓰라고 내게 강요했다. 나는 나만의 축하하는 방식이 있고 따로 선물을 준비하니 그런 것은 강요하지 말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딸내미는 편지 쓰기를 계속 주장할 뿐만 아니라 ‘몇 줄’로 짧게 쓰지 말고 편지지를 꽉꽉 채워서 빼곡하게 쓰란다. 나는 서간문에 익숙지 않고, 민망해서 도저히 못 쓰겠다고 항의했더니 급기야 앞으로 나와는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한다. 할 수 없이 알겠다면서 편지지를 부탁했는데 달랑 한 장만 가져온다. 나는 실수가 잦으니 여분으로 두어 장 더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나 딸내미는 일단 컴퓨터로 초고를 작성한 다음 정성을 다해서 편지지에 옮겨 쓰면 되지 않느냐며 거절한다.
페이스북을 뒤져서 남편한테 받은 편지 때문에 감동한 분의 편지와 카드의 사진과, 한 분에게 문의를 한 결과를 모티브삼아 간신히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딸아이라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여자에게 적응하는 일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지배한 탓인지 꿈자리가 그리 상큼하지는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현격하게 정권교체의 징조를 몸소 체험한 날이다. 식사를 하는데 딸아이가 평소처럼 매우 큰 소리의 방귀를 시연했고 나는 ‘식사 예절’에 어긋난다고 점잖게 조언을 했는데 아내는 ‘딸아이의 방귀는 당신의 것과 달리 전혀 냄새가 없다’며 일갈을 한 다음 딸아이를 향해서 계속 시원하게 방귀를 보시라고 힘을 실어준다. 
식사를 마치고 욕실로 향했다. 칫솔에 ‘아빠’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고 나의 뒤통수를 대고 딸아이는 ‘사용 후 반드시 제자리에 꽂아두어야 한다’고 하명한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아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말을 잘 듣도록 해라’며 상왕으로서 주상으로 새로이 등극한 딸아이의 뒤를 봐주었다.
옷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려는데 딸아이는 욕실을 친히 확인하여 자신의 지시사항이 잘 이행되었는지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조용히 서재로 들어와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어제 말한 아내에게 쓴 편지를 달란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고, 새로운 정권의 강도 높은 ‘국민 개조 정책’에 적응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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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외식을 나가려는데 아내의 슬리퍼가 부럽다. 낡아서 꼬질꼬질하고 뒷 굽이 나지막한 나의 것에 비해 아내의 슬리퍼는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외관에다 높으면서도 견고한 굽 덕분에 키가 작은 사람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너무 딱딱하지도 푹신푹신하지도 않은 착화감 또한 훌륭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듯하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집에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교에서 사용하는 슬리퍼가 이상한 방향으로 닳아서 신을 때마다 발등이 아프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니 아내가 신는 같은 브랜드의 제품으로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왜 나랑 같이 산 슬리퍼인데 당신 것만 그렇게 빨리 낡아지느냐?”란다. 
직장에서 실내와 실외를 구분해서 별도의 슬리퍼를 사용하는 경우와 주야장천 한 켤레만 신는 경우가 어떻게 물리학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맞춰서 해지는지 따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공격을 한다면 아내는 대뜸 ‘슬리퍼의 노화는 사용하는 슬리퍼의 개수가 문제가 아니고, 사용자의 보행 스타일 및 관리의 정도가 더 중요한 요인이다’라고 대응할 것이다. 급기야 ‘슬리퍼의 노후에 미치는 요인들에 대한 연구’ 심포지엄이 냉면집에서 개최될 것이다. 
주문한 냉면이 나오기 전에는 어느 정도 선방을 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 앞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아내에 비해, 논쟁 따위보다는 냉면의 쫄깃한 면발의 유지가 훨씬 중요한 나는 급격히 무너질 게 뻔하다. 더구나 제3자로서 공정성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할 딸아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마 편을 들 것이다.
앞으로의 뻔한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자, 위기에 빛을 발하는 나의 두뇌는 기가 막힌 꼼수를 떠올렸다. 아내에게 평등의 원리를 내세우면서 공세를 하는 것 대신에 딸아이에게 슬쩍 눈치를 주었다. ‘너는 엄마의 슬리퍼가 탐나지 않느냐?’ ‘너도 저 폼 나는 슬리퍼 갖고 싶지?’라는 메시지를 가득 담은 눈치 말이다.
딸아이는 아내와 혈맹으로 맺어진 우방국이지만 ‘팍스아내리카나’의 속국이라는 공통점은 가지고 있다. 나는 약소국이라는 동료의식에 호소를 했고 우리 가족의 안정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시 잠들고 있던 그녀의 ‘지름신 욕구’를 살짝 일깨워주었다. 나의 바람대로 딸아이의 입에서 “나도 하나 사줘”라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딸아이라는 잠재적인 적을 내 편으로 만들었고, 아내의 입장에서는 하나가 아닌 둘의 요구이니까 거절하기 힘들 테고 그 와중에 기지를 발휘해서 둘 중에 하나만 사도록 윤허한다면 나는 애초에 슬리퍼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나라는 기득권을 앞세워 간단히 딸아이를 따돌리면 될 일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아이들에게는 문방구에서 파는 삼디다스가 가장 적합하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우리들의 협공에 아내는 “어디 감히 벌 떼처럼 일어나느냐?”라는 호통을 내지른다. 민초들의 절실한 염원을 마치 민란으로 여기는 듯했다. 강력한 독재 정권을 상대로 한 기껏해야 낮과 곡괭이를 든 백성들의 난은 찻잔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았고 나와 딸아이와의 동맹은 단 30초 만에 막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대세가 넘어간 것을 간파한 딸아이는 ‘애초에 난 슬리퍼를 살 생각이 없었는데 아빠가 눈치를 주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수동적으로 동참할 뿐이었다고 말하는 비급한 변절자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설처럼 그들은 잠시의 오해로 인한 불화를 전환 위기로 삼아 더욱 굳건한 동맹 관계를 확립했고 나는 큰 뜻을 품었다가 실패한 후유증으로 냉면집에서 서비스로 준 ‘요구르트’도 마시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재에서 와신상담을 하고 있는 와중에 ‘꼬깔콘이 아니고 꼬깔콘과 비슷하게 생긴 과자와 오징어 비스무리하게 생긴 과자’를 사 오라는 아내의 지시에 그 정체불명의 과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고도 정확히 아내가 원했던 과자를 손에 건네주는 신공을 발휘했다.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했다면 이 정도의 굴욕은 감수해야 하며, 소나기는 피해가야 한다는 게 나의 오랜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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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장을 보러 갔다. 집안일에 소홀해서 늘 미안하긴 한데 아내 혼자 장을 봐 올 때면 더욱 그렇다. 장을 보는 행위는 선사 시대로 치면 식구들을 위해서 사냥을 하는 가장의 거룩한 의무가 아닌가? 번잡한 대형 마트의 주차장도 그렇고 계산대에 줄을 서서 결제를 하는 과정도 불편해 장을 보는 행위는 다른 사람과 미묘한 경쟁의 요소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가장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책무가 아닌가 싶다.
솔직히 아내 혼자 장을 보는 것을 지인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대형 마트라는 험난한 생존의 세계에 연약한 아내를 혼자 보낸 무심하고 한심한 남편이라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아내와 마트를 동행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카트를 몰고 이리저리 마트를 구경하다 보면 평소 그다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취미, 즉 사냥하는 사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물건이나 음식을 구경하고 장바구니에 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면서도 거룩한 행위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초밥을 고르다가 옆에 있는 생선과 회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식구는 비린내가 나는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영롱한 빛을 발하는 횟감에 눈길이 갔다. 다른 손질이나 준비가 필요 없이 그냥 포장만 뜯어서 먹기만 하면 되는 포장 회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데 희한하게도 아내의 눈에 그게 띈 모양이다.
그러나 회라는 음식이 딸아이의 열광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나도 회식 때문에 횟집을 가게 되더라도 회보다는 초고추장과 맛보이기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오는 스타일이라서 적극적으로 장바구니에 담자는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도 회를 눈여겨보더니 “한번 사볼까”라고 말하기에 익숙지 않은 먹거리에 대한 호기심도 채우고, 아내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는 자상한 현대인의 모범적인 남편상도 실현할 겸 그러자고 흔쾌히 동의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사냥한 회를 먹는데 첫 번째 점을 먹자마자 우리 세 식구는 알아챘다. 대형 마트의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진열하고 포장하는 기술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점과 앞으로는 이 먹거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예감 말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회로 버린 식욕을 돋우게 해줄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피 같은 돈을 주고 산 회의 처리에 있어서 나와 아내는 동상이몽을 꿈꾸었는데 아내는 주부가 가지는 일반적인 생각 즉 ‘쓸데없이 돈을 쓴 자책감’, ‘음식을 고루고루 먹지 않는 식구들에 대한 원망’, ‘버리지도 먹지도 못할 음식의 처리 방안에 대한 고심’을 했고 나는 내가 먼저 그 포장 회를 사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무기 삼아 이 기회에 이 사태의 주범인 아내를 문책하고 일벌백계함으로서 가장의 권위와 지배력을 드높이고자 하는 속셈을 가졌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화를 버럭 내는 것은 좋은 대응 전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나는 그들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체득한 바 있다. 그래서 조근조근 아내를 꾸짖었다. 현대의 현명한 소비자는 마트에 가기 전에 구매 목록을 미리 메모하는 등의 계획성 있는 쇼핑을 해야 하고,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특히 음식을 살 때는 가족 구성원의 식성을 미리 감안해야 하며, 더구나 회 같은 신선도가 생명인 먹거리를 살 때는 가정으로 가지고 가면 맛이 변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 즉 그 회를 사자고 선량한 소비 생활을 하는 남편을 꼬드긴 것은 당신이라고 재확인시켜줌으로써 이 모든 사단의 책임 소재가 아내에게 있음을 공식화했다.
나의 꾸짖음에 아내는 충분히 내가 예상한 해명과 책임 전가를 시도했고 나는 가볍게 아내의 해명을 기각했다. 웬일인지 딸아이도 내 의견을 좇아서 현명하지 못한 소비를 한 아내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딸아이는 다른 문제는 몰라도 금전적인 문제에 민감하며 매우 엄격하다. 딸은 우리 부부의 유일한 상속자이자 늙은 우리를 봉양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리의 열매는 참으로 달콤해서 그날 저녁 식탁에서 나는 공깃밥을 무려 세 공기나 먹어치웠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늦잠을 잤고 전날 과식을 한 탓인지 더부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주방으로 갔는데 뭐라 설명하기 곤란한 비릿하면서 식용을 억제하는 묘한 음식 냄새가 나를 에워싼다. 가스레인지를 보니 찌개의 종류인 것 같은데 냄새는 찌개가 아닌 미지의 음식이 막 완성되는 눈치다. 이윽고 아침 준비가 모두 되었고 우리 세 식구는 제자리에 착석했다. 그런데 아내는 조금 전에 내가 목격한 묘령의 음식을 오직 나를 위해서만 장만했다는 듯이 내 턱밑에 밀어준다. 
글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아내는 매우 뛰어난 요리가는 아니다. 장모님께서는 면을 대표하는 요리가 중의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친 분이라 유전자는 분명 요리가로서의 자질이 충분하겠지만 아내는 전업주부가 아닌 직장인이며, 우리 식구들이 음식을 매우 잘 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음식을 힘들게 한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나와 딸아이의 책임이 커서 어떤 음식이든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아침의 찌개는 군소리 없이 먹기에는 무리가 많았으며 그 양도 엄청났다. 훌륭한 요리가가 아닌 사람이 요리한 아방가르드한 음식을 조심스럽게 한 숟가락씩 떠먹는 나를 본 아내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며 나를 빤히 본다. 그러고는 정체 모를 찌개의 정체를 알려준다. 어제 먹다 남은 비싼 회를 버리기 아까워서 찌개로 만들어보았다고 한다. 자기는 비린내 나는 음식이 싫고, 딸아이는 매운 음식을 못 먹으니 나 혼자 다 먹으란다. 



고통스러운 아침 시간이 끝나가고 아내는 내가 먹다 남긴 찌개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소중히 거두더니 냉장고로 다시 넣는다. 그리고 “내가 수위를 표시해놨으니 아까운 찌개를 버릴 생각은 하지 마라”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날 저녁인가는 실험적인 그 음식을 참지 못하고 국물이 현격히 부족해 더는 먹기 어렵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했는데 아내는 물을 더 넣고 끓이면 되니 그런 걱정일랑 말라고 한다. 



절망한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 맛있는 음식을 나 혼자 먹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러니 너희 둘도 같이 이 놀라운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자”라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아내와 딸에 의해서 간단히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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