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외식을 나가려는데 아내의 슬리퍼가 부럽다. 낡아서 꼬질꼬질하고 뒷 굽이 나지막한 나의 것에 비해 아내의 슬리퍼는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외관에다 높으면서도 견고한 굽 덕분에 키가 작은 사람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너무 딱딱하지도 푹신푹신하지도 않은 착화감 또한 훌륭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듯하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집에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교에서 사용하는 슬리퍼가 이상한 방향으로 닳아서 신을 때마다 발등이 아프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니 아내가 신는 같은 브랜드의 제품으로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왜 나랑 같이 산 슬리퍼인데 당신 것만 그렇게 빨리 낡아지느냐?”란다. 
직장에서 실내와 실외를 구분해서 별도의 슬리퍼를 사용하는 경우와 주야장천 한 켤레만 신는 경우가 어떻게 물리학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맞춰서 해지는지 따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공격을 한다면 아내는 대뜸 ‘슬리퍼의 노화는 사용하는 슬리퍼의 개수가 문제가 아니고, 사용자의 보행 스타일 및 관리의 정도가 더 중요한 요인이다’라고 대응할 것이다. 급기야 ‘슬리퍼의 노후에 미치는 요인들에 대한 연구’ 심포지엄이 냉면집에서 개최될 것이다. 
주문한 냉면이 나오기 전에는 어느 정도 선방을 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 앞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아내에 비해, 논쟁 따위보다는 냉면의 쫄깃한 면발의 유지가 훨씬 중요한 나는 급격히 무너질 게 뻔하다. 더구나 제3자로서 공정성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할 딸아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마 편을 들 것이다.
앞으로의 뻔한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자, 위기에 빛을 발하는 나의 두뇌는 기가 막힌 꼼수를 떠올렸다. 아내에게 평등의 원리를 내세우면서 공세를 하는 것 대신에 딸아이에게 슬쩍 눈치를 주었다. ‘너는 엄마의 슬리퍼가 탐나지 않느냐?’ ‘너도 저 폼 나는 슬리퍼 갖고 싶지?’라는 메시지를 가득 담은 눈치 말이다.
딸아이는 아내와 혈맹으로 맺어진 우방국이지만 ‘팍스아내리카나’의 속국이라는 공통점은 가지고 있다. 나는 약소국이라는 동료의식에 호소를 했고 우리 가족의 안정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시 잠들고 있던 그녀의 ‘지름신 욕구’를 살짝 일깨워주었다. 나의 바람대로 딸아이의 입에서 “나도 하나 사줘”라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딸아이라는 잠재적인 적을 내 편으로 만들었고, 아내의 입장에서는 하나가 아닌 둘의 요구이니까 거절하기 힘들 테고 그 와중에 기지를 발휘해서 둘 중에 하나만 사도록 윤허한다면 나는 애초에 슬리퍼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나라는 기득권을 앞세워 간단히 딸아이를 따돌리면 될 일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아이들에게는 문방구에서 파는 삼디다스가 가장 적합하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우리들의 협공에 아내는 “어디 감히 벌 떼처럼 일어나느냐?”라는 호통을 내지른다. 민초들의 절실한 염원을 마치 민란으로 여기는 듯했다. 강력한 독재 정권을 상대로 한 기껏해야 낮과 곡괭이를 든 백성들의 난은 찻잔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았고 나와 딸아이와의 동맹은 단 30초 만에 막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대세가 넘어간 것을 간파한 딸아이는 ‘애초에 난 슬리퍼를 살 생각이 없었는데 아빠가 눈치를 주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수동적으로 동참할 뿐이었다고 말하는 비급한 변절자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설처럼 그들은 잠시의 오해로 인한 불화를 전환 위기로 삼아 더욱 굳건한 동맹 관계를 확립했고 나는 큰 뜻을 품었다가 실패한 후유증으로 냉면집에서 서비스로 준 ‘요구르트’도 마시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재에서 와신상담을 하고 있는 와중에 ‘꼬깔콘이 아니고 꼬깔콘과 비슷하게 생긴 과자와 오징어 비스무리하게 생긴 과자’를 사 오라는 아내의 지시에 그 정체불명의 과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고도 정확히 아내가 원했던 과자를 손에 건네주는 신공을 발휘했다.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했다면 이 정도의 굴욕은 감수해야 하며, 소나기는 피해가야 한다는 게 나의 오랜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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