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는 주로 서재에서 서식한다. 책도 읽고, 소파에서 낮잠도 자고, 글도 쓰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 야구 중계도 본다. 사실 두 여자(딸아이와 아내)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취향이 달라서 거실에 머무는 시간이 적기도 하다.
아쉬울 게 없는 서재에서의 칩거지만 단 하나, 굶주림에는 장사가 없다. 식사 시간에는 주로 딸아이가 와서 “지금 식사를 하시겠느냐” 묻거나 “식사를 하시오”라고 통보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이 주식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사란 것이 어느덧 틀에 박힌 일상의 습관이거나 의무감에서 이뤄지는 행위라면, 순수하게 호감으로 선탁해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이 ‘간식’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서재 생활은 간식에 치명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는 나의 아지트인 서재를 할렘처럼 생각해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손을 놓고 있는데, 음식 찌꺼기나 냄새마저 고약하다면 서재 철폐령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서재에 먹거리를 들이지 않는다.
서재 생활에 심취하더라도 늘 바깥세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다. 그래야 후각으로 그들이 어떤 간식을 준비하는지와 요리는 완성되었는지, 청각으로 그 양은 어느 정도 되는지와 간식을 얼마만큼 먹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물론 아내가 야구 중계소리가 신경 쓰이니 문을 꼭 닫으라는 요청을 하면 당연히 꼬~옥 닫아준다.
그들이 언제 간식을 먹는지 어떤 종류의 간식을 먹는지 그 양은 얼마나 되는지 서재에 앉아서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괜히 가장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의 식탐도 충족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 즉 카레라든지 치즈를 잔뜩 얹은 옥수수 비빔밥을 먹겠다고 쪼르르 나갔다가 괜히 체면만 구길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대체로 식사를 끝내고 30분 정도 뒤에 간식을 먹는다. 그때쯤에는 더욱 레이더를 정교하게 가동해야 하며, 그들이 완성된 간식을 텔레비전 앞의 탁자에 딱 올리자마자 염치없이 달려 나가서는 안 된다. 그들의 포만감이 3분의 1정도 충족되어서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눔의 미학을 고려할 수 있을 때여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진즉부터 준비한 자에게만 찾아오는 법.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 가령 어느 날 딸아이가 순댓국밥이 먹고 싶은데 취객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순댓국밥집에 행차하기가 거시기하다고 하면 냄비를 들고 가서 포장해 와야 하고, 그들이 새우 버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냉큼 운전하고 가서 사 와야 한다.
여느 때처럼 느긋하게 메이저 리그를 감상하는데 촉이 왔다. 가장 적절한 시간에, 너희의 간식을 뺏어 먹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표정과 몸짓으로 군웅이 할거하는 거친 광야인 거실로 나갔다. 그들이 먹으려고 하는 것은 골드키위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여인들의 간식을 뺏어 먹는 하이에나도 지켜야 할 상도가 있다. 칠거지악에 삼불거라는 예외가 있듯이 나도 삼불식을 지킨다. 우선 딸내미가 직접 장만한 간식이다. 아직 과도를 다루지 못하는 딸내미가 직접 깎은 과일은 그녀가 그걸 극도로 먹고 싶었음을 의미한다. 그 과일을 뺏어 먹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둘째,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뺏어 먹었다가는 그들의 식탐이 충족되지 못해 원망받을 수 있는 경우다. 셋째는 배스킨라빈스31의 체리쥬빌레 속 왕 체리. 그건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불행하게도 오늘은 작은 접시 위에 올라앉은 골드 키위를 보아하니 키위 두 개쯤을 딸내미가 직접 깎아서 마련한 간식이다. 삼불식 중에 무려 두 가지나 해당된다. 아내도 딸아이를 위해서 먹지 않고 있었다. 지킬 것은 지키는 매너남답게 조용히 물러나려 했는데 거실까지 나온 것이 괜히 머쓱해 딱 한 조각만 먹겠다고 했다. 예상대로 딸아이와 아내는 완강히 거부한다. 나는 그들의 거부 탓에 내가 과일 한 조각도 못 얻어먹고 돌아선다면 그들도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고, 가장으로서 가족 구성원에게 괜한 죄책감을 주기 싫으므로 한 조각만 먹겠으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의 합리적인 요구에 딸아이와 아내는 경계를 풀었다. 딸아이는 저게 접시에서 가장 작은 조각이라는 제 어미의 조언에 따라 그놈을 포크로 찍어 내 입에 넣어줬다. 물론 포크에 침을 묻혀서는 절대 안 된다는 지엄한 요구를 했다.
사실 그 골드키위는 우리 모친께 드리려고 사둔 것인데 어찌하다 보니 가져가지 않아서 우리 집 냉장고에 있었다. 딸아이도 제 할머니처럼 골드키위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 그뿐이 아니라 유년 때부터 제 할머니처럼 노란 시루떡을 좋아해서 재래시장에 가면 조공용으로 자주 사들고 집에 오곤 했다.
제 할머니와 식성을 닮은 딸아이에게서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가 느껴진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