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활용한 책읽기와 글쓰기

흔히 SNS를 인생의 낭비라고들 한다. 왜 아니겠는가? SNS 때문에 인생의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어두운 나락으로 추락하는 사람의 예를 우린 쉽게 매일 보다시피한다. 굳이 사고를 치지 않더라도 SNS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도 많다. 페이스북도 이런 문제제기를 비켜가지 못한다. 필자도 개인정보의 지나친 유출을 걱정해서 세번이나 가입과 탈퇴를 반복한 경험이 있다. 


내가 그러니까 세번째 가입을 했을 때 50대의 시인이자 페이스북의 인기남이 내게 해준 충고가 이랬다. '잘 활용하기만 하면 굉장히 좋은 매체예요. 너무 빠지지만 않으면요' 이게 정답이 아닐까 싶다. 너무 빠지지 않으면서 페이스북을 '잘 활용할 방법'을 생각해봤다. 


내가 페이스북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책읽기'와 '글쓰기'에서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SNS는 일반적으로 책읽기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적인 활동의 반대되는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많이들 생각한다. 


그러나 페이스북 친구에 작가와 출판사관계자가 하나 둘 더해지면서 좀 더 적극적이고 깊이 있는 책읽기가 가능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서가라면 평소 동경하던 작가와 페친이 되어서 이런저런 책과 주변 이야기를 가끔 주고받는 일이 설레지 않을까? 적어도 내게는 그런 경험이 즐거웠다. 심지어는 책을 창작하면서 겪은 뒷이야기와 배경을 해당 작가에게 직접 듣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 평소 존경하던 작가가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칭찬의 댓글을 남겨주었을 때의 기쁨은 SNS가 인생의 낭비라는 말이 항상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출판관계자와 친구가 페친이 되는 일도 독서가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출판관계자 자체가 문인인 경우가 허다하며 책의 출간과 관련된 흥미롭지만 책에서는 읽지 못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양한 신간의 출간계획과 이벤트를 좀 더 빨리 접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이 숨을 들이쉬는 행위라면 글을 쓰는 행위는 숨을 내쉬는 행위다. 페이스북은 꽤 훌륭한 글쓰기 연습장이 될 수 있다. 물론 SNS에 긴 글을 남기지 말라는 충고하는 사람도 많지만 트위터처럼 애초에 게시물의 길이가 정해지지 않은 이상 자신만의 호흡으로 긴 글을 남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리 길어도 글의 내용이 좋으면 독자(페친)들은 주목을 하고 읽는다. 페이스북으로 글쓰기를 하는 또 다른 매력은 글쓰기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새하얀 백지에 미지의 독자를 향해서 글을 쓰는 것보다는 실시간으로 독자가 기다리는 자신의 타임라인에 글을 써나가는 일은 '창작의 고통'이 훨씬 덜하다.


페이스북을 글쓰기 연습장으로 삼음으로써 얻는 가장 큰 이득은 즉각적인 독자의 피드백이다. 하다못해 페친들이 맞춤법을 하나 지적해주어도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 의외로 많은 베스트셀러가 사실 페이스북의 연재 글을 책으로 묶은 경우에 해당된다. 베스트셀러도 주목받지도 않았지만 필자가 출간한 가족 간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다룬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도 사실 내용의 대부분이 페이스북에 연재를 했고 많은 페친의 격려와 피드백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책읽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클럽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클럽이 있지만 <페친의 책장 https://www.facebook.com/friendbookshelf>을 추천한다. <페친의 책장>을 추천하는 이유가 되는 독서의 상황이 두 가지가 있는데 이들을 먼저 말하는 것이 좋겠다. 


서평이나 거창한 소개로 명사들의 책을 소개 받아서 사면 의외로 실패의 확률이 높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책이라는 것도 취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 때문에 명사가 추천한 책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에게도 재미나거나 감동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하거나 선물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그리고 애서가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나만의 바로미터가 있는데 티비에서 인터뷰할 때 그 사람의 발언이나 인물보다는 배경으로 주로 나오는 책장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은 애서가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 애서가들의 타인의 책장을 훔쳐보는 취미는 영원한 불치병이다. 많은 책 중에서 한두 권을 꺼내들고 추천하는 것은 의례적이고 다소 가식적이기까지 한데 의도치 않게 드러나는 책꽃이의 책들의 면면은 그 사람의 독서의 취향이다. 페이스북 독서클럽 <페친의 책장>은 위의 두가지 독서가들의 애로사항과 호기심을 잘 충족시켜준다.


특별히 어떤 책을 추천하려는 의도가 없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의 책장을 공개한다. 다른 사람의 책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독서가들에게 은밀한 또다른 취미생활이다. 즐겁고 또 즐겁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책장을 많이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읽고 싶은 책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렇게 해서 장만한 책은 실패의 확률이 의외로 낮다. 많은 사람의 책장을 살펴보면 독서 트랜드도 눈에 들어오고, 자생적인 책 고르기 능력이 갖춰지기 마련이다.


<페친의 책장>은 근거지가 인터넷이지만 오프라인의 독서모임도 매주 가지는데 이게 또 매력이 넘치는 독서 프로그램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조용한 찻집에서 만나 말 그대로 '천천히 자유롭게' 각자의 책을 읽는 모임이다. 정해진 규칙은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말기'가 유일하다. 정해진 책도 없고, 매주 참석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편안하게 각자 읽고 싶은 책을 2시간 동안 읽은 후,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다른 회원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간식을 먹고 헤어진다. 독서라는 것도 즐거워야 하는 취미생활인데 너무 엄격하고 엄숙한 프로그램은 오히려 독서의 즐거움을 반감시킨다. <페친의 책장>의 <느리게 읽기>는 얽매이기 싫어하지만 좀 더 밀도 있는 독서를 즐기기를 원하는 독서가에게 금상첨화 같은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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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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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1년 9월에 출간된 <오래된 새 책>은 나의 첫 책은 아니다. 첫 단독 저서다. 공저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이름이 오른 첫 책은 오마이뉴스에서 나온 <아버지를 팔아 산 핸드폰>이다. 간혹 나를 두고 글을 참 잘 쓴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약 그 칭찬이 아주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오마이뉴스에 올린 260건의 기사로 글쓰기 연습을 한 덕분이다. 나의 세 번째 책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를 내면서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글을 몇 개 넣었는데 당시의 글을 완전히 다시 써야 했으니,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즐겼던 15년전에 비해 진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오마이뉴스는 나의 훌륭한 글쓰기 연습장이었을뿐만 아니라 나의 첫 단독 저서인 <오래된 새 책>을 내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출판사에서 내 글을 보고 책을 내자고 제의를 해왔기 때문이다. 애초에 출판사(바이북스)에서 내게 제안한 기획은 ‘위인’에 관한 것이어서 고심 끝에 전공부야가 아니니 못 쓰겠고 다만 내가 책읽기와 헌책수집을 좋아하니 ‘헌책 수집’에 관한 책을 내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고 고맙게도 나의 제의를 수락해주어서 <오래된 새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오래된 새 책>은 희귀본을 사냥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그 책의 소중함을 말하는 책이었다. 희귀본을 자랑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좋은 책’을 소개함으로서 그 책들이 ‘새 책’으로 다시 부활하기를 기대하면서 쓴 목적이 더 크다. 제법 괜찮은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오래된 새 책>은 사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로쟈>님의 인터넷 서재 속의 게시판이름중의 하나였다. 물론 그 게시판은 절판되었다가 다시 재출간된 책들을 소개하는 코너였으며, 우선 로쟈님께 허락을 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어 부탁을 드렸는데 고맙게도 <오래된 새 책>이란 말에 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고 ‘재미나다’라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사실 부족한 점이 많아서 늘 남들에게 선뜻 내세우기가 부끄러웠기도 했는데 ‘희귀본의 부활’이라는 대의를 따지고 보면 절반이상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희귀본의 상당수가 독자들의 염원에 따라 재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선물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최근 재출간되었고 일약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일이다. 권정생 선생과 이오덕 선생이 수십년동안 주고받았던 눈물 겨운 사연과 우정이 가득 담긴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몇 년을 찾아 헤매야 했다. 희귀본을 간신히 구했는데 재출간되는 경우 소장가의 심정은 그리 나쁘지 않다. 물론 극소수의 소장가중의 한명이라는 뿌듯함이 다소 사라지긴 하겠지만 좋아하는 책의 버전을 더 추가한다는 기쁨과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가 좋지 않은가?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간신히 구한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구한 판본은 새로 출간된 새 책이 따로 있다고 해서 그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딸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집을 가는 그날 까지 소소한 일상을 사진으로 꼼꼼히 기록한 <윤미네 집>은 장정과 사진을 덧붙여 새로 나왔고 이 역시 사진집으로서는 드물게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이 사진집의 저자인 전몽각 선생은 순전히 아마추어 사진가이며 심지어 삼각대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이 땅의 모든 ‘아빠 진사’의 조상쯤 되는 분이다. 놀라운 사진기술도, 예술적인 가치도 미미한 이 사진집이 이토록 오랜 사랑을 받는 것은 순전히 자식에 대한 지극한 아빠의 사랑이 깊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원래 판본이 소프트 커버였는데 포토넷이란 출판사에서 하드커버로 멋지게 재탄생시켰다.


너무나 구하고 싶어서 다른 수집가가 구했다는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 벌렁거렸던 이윤기 선생의 <하늘의 문>은 원래 3권으로 구성되었는데 두툼한 단 권으로 다시 나왔다. 이 소설을 이윤기 선생이 다시 손을 봐서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결국 개정을 하지 못하고 이윤시 선생은 세상을 떠나셨다. 어쨌든 더 좋은 장정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고 소설가로서의 이윤기의 모든 역량이 동원된 이 책을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어를 유려하게 가장 잘 쓴다고 소문난 고종석의 <기자들>은 <빠리의 기자들>이란 제목으로 바뀌어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고종석 본인이 신문사 재직시절 프랑스 파리로 연수를 간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인데 당시 유럽의 정치 경제적 상황과 연수생 기자들의 로망스가 고종석의 글 솜씨가 어우러진 멋진 책이다.


내 인생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준 유일한 책이라고 볼 수 있는 영어어휘 학습서<Word Power made easy>의 번역서도 다시 세상에 나왔다. 영어단어가 무의미한 철자의 나열이 아니고 인간의 역사와 맞물려진 ‘작은 세계사’라는 기본 틀에 입각한 책인데 어휘를 설명한 글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철학의 문구처럼 깊고, 유려해서 굳이 영어공부를 하지 않고 해석 판만 읽어도 훌륭한 독서가 되는 놀라운 책이다. 


<오래된 새 책>을 읽고 ‘읽고 싶은데 읽을 수 없는 책’으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냐며 질타를 한 분이 적지 않았다. 이제는 그 노여움을 조금은 풀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아직도 <오래된 새 책>에는 ‘새 책’이 되기를 기다리는 귀한 책들이 적잖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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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이해인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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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4년 내내 개신교 서클 'IVF'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는 것은 현재도 그렇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방과 후에 강의실에 모여 예배도 드리고, 초빙 간사의 '말씀'도 듣고, 교제의 시간까지 가진 4년 내내 나는 '믿는 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고향마을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짐을 싸들고 올라탄 기차 옆자리의 늙수그레한 학생이 '좋은 서클'이니 입학하거들랑 가입해보라는 충고를 듣고 덜컥 가입한 것이 개신교 서클이었고 '주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시절 내내 그 동아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당구와 술에 탐닉하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건전하고 배울 것이 많겠다라는 생각으로 무신론자이면서 무려 4년간 정기적인 예배와 끊임없는 도제식의 일대일 개신교 강의를 참아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럭저럭 독실한 개신교 서클과 '예수를 믿지 않는 불순한 회원'간의 불안한 항해는 항구를 눈앞에 두고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졸업을 앞둔 추운 겨울 새벽, 그 개신교써클 내에서 나의 훈육을 담당했던 동기 놈이 요란스럽게 기숙사 내 방 문을 열고 나를 깨웠다. Q. T에 가잔다. 그게 뭐냐고 되물었더니 Quiet Time이라는 새벽 기도 모임이라고. 나는 잠을 잘 때 코를 골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융통성 없는 동갑 훈육선생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나를 아직 어둠기가 채 가시지 않은 교정의 소나무 밑으로 소환해갔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날이 내가 기도를 인도할 차례란다. 그러니까 모태신앙으로 단련된 개신교 고수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채, 불순물처럼 섞여 있는 엉터리 개신교 흉내쟁이의 기도를 음미하겠다는 말이다. 그날 나의 기도 인도는 그네들에게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최악이었겠지만 그날의 기도는 나로서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 중 하나였다. 내가 정작 간절히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를 한 순간은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밥 먹듯이 하던 시절, 집 뒤뜰에 나가 교회에서 구경한 대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제발 내일 구구단 검사를 하지 않도록 해줍십사'라고 통성기도를 했었다. 물론 평소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답답한 일이 생겨서 갑자기 기도를 해서 미안하며, 만약 이번 기도를 들어주시면 앞으로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오늘 문득 이해인 수녀님의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을 읽다가 '환자의 기도'라는 시에 눈길이 멈춘다.




주님 

제가 아프기 전에는 

당신을 소홀히 하다가

이렇게 환자가 되어서야 

열심히 당신을 부르는 제 모습이 

비겁하고 부끄럽고 염치없어

숨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1967년 종신 서원 이후 수녀원 입회 50년을 맞은 이해인 수녀가 낸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이토록 인간적이며 소탈하다. 구구단을 외우는 코흘리개들이 하는 순진무구한 하느님에 대한 '양심'을 입회 50년을 맞은 일흔의 노 수녀님의 시에서 만난 반가움이란 어찌 표현할까 모르겠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50년간 하느님을 모신 신앙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는 의지로도 읽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코흘리개들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노년까지 잃지 않는 이해인 수녀님의 꽃 같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2008년 암 발병 이후 두 번째로 나온 시집이고, 시의 내용이 '투병 생활'에 관한 것들이 많지만 굳이 '투병 시집'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투병을 다룬 시가 많지만 우울하지 않으며, 태어나고 자라는 이야기보다는 늙고 죽어가는 사연이 많지만 절망적이지도 체념적이지 않다.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의지하지만 주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돋보인다. 그래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와 산문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는 촛불이고 허전한 공간을 향기로 채워주는 꽃이다. 그래서 나는 '투병 시집'이 아니고 '동백꽃 시집'으로 부르고 싶다.


'꿈에 본 어머니'라는 시는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니에 대한 그림 움이 사무치게 느껴져서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지게 한다.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난 날은 

꿈에서도 행복하여 

깨어나기 싫어


생전보다 

더 통통하고 동그란 모습으로 

은은한 웃음 머금고

딸을 축복하는 엄마의 모습



12년 전 나의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가 눈에 선하다. 눈을 감고 의식이 없는 어머니 곁에서 꾸벅꾸벅 조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엄마'라고 외마디를 내셨다. 그제야 나는 나의 어머니도 몸서리치도록 그리운 누군가의 '딸'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단하디 고단했던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보고 싶었던 사람은 어머니의 '엄마'였구나.


몹쓸 병을 얻어 이년 전 세상을 뜬 누이의 마지막 모습도 눈에 그려진다. 갑잡스러운 쇼크로 얼굴이 퉁퉁부어서 힘겹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데, 깊은 잠보다 더 깊은 의식불명의 상태라는데, 미처 뜨여지지 않는 눈으로 뭔가를 찾는 의지가 역력했다. "지금 엄마를 찾는 거지? 엄마 보고 싶은 거지?"라고 묻는데 누이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의 어머니와 누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엄마의 모습은 "은은한 웃음 머금고 딸을 축복하는"모습이었을 터이다. 


그렇게 누이를 보내고 홀로 화장터의 뜨거운 화구에 들어갔을 때 우리 가족은 자동차 안에서 추위를 달랬었다. 이해인 수녀님은 당신도 암과 싸우면서도, 수녀원의 동료 수녀님과 친구를 떠나보내면서 가족보다 더 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가령 '떠난 벗에게'라는 시가 그렇다.




친구야 얼마나 쉬고 싶었으면

흔적도 없이 그렇게 부서져

하얀 가루가 되었느냐?

네 어여쁜 몸이

불가마 속에서 타오를 적에

겁이 많은 너는 얼마나 뜨거웠느냐?

혼자만 갑갑한 곳에 갇히어

얼마나 외로웠느냐?



사람에 대한 사랑이 기초하지 않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무의미하고 폭력적이다. 아픈 것을, 슬픈 것을 애써 신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도 공감하기 힘들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모든 평범한 사람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 수녀님을 하느님의 곁으로 더 향하는 징검다리가 되었음을 알겠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100편과 생활 이야기 100편이 담긴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의 넘치는 사랑을 감당키 어려워 '사랑받는 것도 힘든 일이야'라는 탄식을 자아내는 수녀님은 사실 매서운 추위에서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동백꽃처럼 사람을 사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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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희귀본을 수집하는 재미로 살았던 때의 이야기다. 거의 3년을 찾아 헤매던 희귀본을 손에 넣었다. 감격에 겨워서 내게 그 책을 양도한 판매자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신영복 선생의 《엽서》 이야기가 나왔다. 《엽서》는 희귀본 수집 업계에서 수집가로서의 신분증과 같은 책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수집가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책이란 뜻이겠다. 


그런데 A는 《엽서》가 반드시 재출간이 될 것이며 자신은 그때 구매할 것이고 절대로 비싼 값에 절판된 구판을 사지 않겠단다. 덧붙여서 책이란 게 ‘텍스트’만 확보해서 읽으면 되지 비싼 값에 절판된 판형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당시만 해도 E-BOOK이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나도 격하게 동의를 했고, 재출간이 되면 사서 읽으면 되지 비싼 값에 구판을 사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독서의 본질에서 벗어난 그런 저급한 수집놀이도 하지 않을 것이며, 희귀본이라고 해서 얼토당토않은 비싼 가격에 사지도 않고 오직 책만 열심히 읽겠다는 서로의 신념을 치하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며칠 뒤에 개인 간 헌책 거래 사이트에 신영복 선생의 《엽서》가 판매 리스트에 올라왔다. 가격은 대략 7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예약 댓글을 남기느라 손가락이 얽히고설켰는데 결국 1순위가 되진 못했다. 물론 그 책을 사겠다고 야밤에 남긴 예약 댓글의 행렬 속에서 A의 이름과 연락처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나보다 좀 더 절박했는지 자정이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같은 서울이니 당장 달려가겠다고 써놓았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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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부친인 김 아무개 씨는 소작농의 자식으로서 온갖 고생은 다 겪었다. 김 아무개 씨의 부친은 마을에서 처음으로 단발령을 받아들여서 상투 대신 성인 남자의 보편적인 헤어스타일인 하이칼라를 선보일 정도로 신문명에 관심이 많았지만 타고난 가난은 어쩌지 못하고 김 아무개 씨에게 가난을 대물림했다.


김 아무개 씨는 정규 교육은 거의 못 받고 온갖 농사일에 시달렸는데 소년 시절부터 마을의 대소사에 부친 대신 동원되었다. 마을의 온갖 대소 사중에서 그가 가장 힘겨워한 일은 상여 매기였다. 어른들과 키가 맞지 않아서 어떨 땐 상여를 지탱하는 끈이 어깨의 허공으로 다녔지만 또 어떨 땐 상여의 무게가 그의 가녀린 어깨로 집중되어 땅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 신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상여를 끈으로 매고 온갖 험난한 길을 온몸으로 버텨야 하는 상여꾼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여 소리꾼은 맨몸에 설렁설렁 걷기만 할 뿐 그 어떠한 힘을 쓰지 않았다. 상여 소리라는 것이 두고두고 쓰지, 변하거나 망자에 따라서 다르게 할 필요가 없으니 한 번만 익혀서 소리꾼이 된다면 평생 편하게 상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흥이 나면 상여에 올라타고 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 뿐더러, 어느 순간 상여를 멈추게 하고 상주들로부터 절도 받고, 망자의 노잣돈이라는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것 역시 소리꾼의 몫이었다. 김 아무개 씨는 소리꾼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상여소리를 배우려고 했지만 그 동네의 소리꾼은 그가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는지 가르쳐달라는 소리는 가르쳐주지 않고 버럭 화만 내면서 김 아무개 씨를 쫓아낼 뿐이었다.


김 아무개 씨는 잠시 낙심을 했지만 다른 동네에도 소리꾼이 있겠다 싶어서 무작정 길을 나섰다. 인근의 여러 마을을 헤맨 끝에 그는 마침내 소리를 가르쳐주겠다는 스승을 만났다. 그렇지 않아도 궁색한 살림에서 훔친 콩 두어 되로 수업료를 지불했다.


본래 목청이 좋고 상여소리에 대한 동기 부여가 남달랐던 김 아무개 씨는 상여꾼들과 상주들을 애달프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상여 소리를 갖추었다.

김 아무개 씨가 특별히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수십 년간 상여 소리꾼 노릇을 한 할배가 바람을 맞아서 유명을 달리했고 김 아무개 씨는 냉큼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근에서 최연소 상여소리꾼에 취임한 그는 그로부터 근 50년간 무수한 망자를 구성진 목소리로 달래 저승길로 데려다주었다. 


그 무수한 망자 중에는 나의 조부모와 아버지도 포함되었다. 그의 상여 소리는 마치 망자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는 나의 할아버지가 되었고 할머니도 되었으며 나의 아버지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려주었다.

김 아무개 씨는 무수한 망자를 음택으로 모셨지만 정작 마을에서는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그가 마침내 유명을 달리했을 때 그의 상여를 든 이들은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가 힘겨워 보이는 열댓 명의 노인뿐이었다.


문상을 온 김 아무개 씨의 아들의 친구들이 대신 상여꾼이 되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장지가 김 아무개 씨의 집에서 멀지 않은 나지막한 산 아래였는데 불행하게도 김 아무개 씨가 반백년 동안 상여소리꾼 노릇을 할 때 그의 자리를 탐내는 젊은이가 전혀 없었고 김 아무개 씨의 아들은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에 타동네서 소리꾼을 초빙할 여유도, 의도도 없었다. 


김 아무개 씨가 망자들을 모시고 다닌 마을 골목골목을 거쳐서 마침내 장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승길을 위로한 것은 상여 귀퉁이에 매달린 일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녹음된 소리였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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