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2011년 9월에 출간된 <오래된 새 책>은 나의 첫 책은 아니다. 첫 단독 저서다. 공저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이름이 오른 첫 책은 오마이뉴스에서 나온 <아버지를 팔아 산 핸드폰>이다. 간혹 나를 두고 글을 참 잘 쓴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약 그 칭찬이 아주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오마이뉴스에 올린 260건의 기사로 글쓰기 연습을 한 덕분이다. 나의 세 번째 책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를 내면서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글을 몇 개 넣었는데 당시의 글을 완전히 다시 써야 했으니,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즐겼던 15년전에 비해 진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오마이뉴스는 나의 훌륭한 글쓰기 연습장이었을뿐만 아니라 나의 첫 단독 저서인 <오래된 새 책>을 내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출판사에서 내 글을 보고 책을 내자고 제의를 해왔기 때문이다. 애초에 출판사(바이북스)에서 내게 제안한 기획은 ‘위인’에 관한 것이어서 고심 끝에 전공부야가 아니니 못 쓰겠고 다만 내가 책읽기와 헌책수집을 좋아하니 ‘헌책 수집’에 관한 책을 내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고 고맙게도 나의 제의를 수락해주어서 <오래된 새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오래된 새 책>은 희귀본을 사냥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그 책의 소중함을 말하는 책이었다. 희귀본을 자랑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좋은 책’을 소개함으로서 그 책들이 ‘새 책’으로 다시 부활하기를 기대하면서 쓴 목적이 더 크다. 제법 괜찮은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오래된 새 책>은 사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로쟈>님의 인터넷 서재 속의 게시판이름중의 하나였다. 물론 그 게시판은 절판되었다가 다시 재출간된 책들을 소개하는 코너였으며, 우선 로쟈님께 허락을 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어 부탁을 드렸는데 고맙게도 <오래된 새 책>이란 말에 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고 ‘재미나다’라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사실 부족한 점이 많아서 늘 남들에게 선뜻 내세우기가 부끄러웠기도 했는데 ‘희귀본의 부활’이라는 대의를 따지고 보면 절반이상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희귀본의 상당수가 독자들의 염원에 따라 재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선물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최근 재출간되었고 일약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일이다. 권정생 선생과 이오덕 선생이 수십년동안 주고받았던 눈물 겨운 사연과 우정이 가득 담긴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몇 년을 찾아 헤매야 했다. 희귀본을 간신히 구했는데 재출간되는 경우 소장가의 심정은 그리 나쁘지 않다. 물론 극소수의 소장가중의 한명이라는 뿌듯함이 다소 사라지긴 하겠지만 좋아하는 책의 버전을 더 추가한다는 기쁨과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가 좋지 않은가?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간신히 구한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구한 판본은 새로 출간된 새 책이 따로 있다고 해서 그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딸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집을 가는 그날 까지 소소한 일상을 사진으로 꼼꼼히 기록한 <윤미네 집>은 장정과 사진을 덧붙여 새로 나왔고 이 역시 사진집으로서는 드물게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이 사진집의 저자인 전몽각 선생은 순전히 아마추어 사진가이며 심지어 삼각대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이 땅의 모든 ‘아빠 진사’의 조상쯤 되는 분이다. 놀라운 사진기술도, 예술적인 가치도 미미한 이 사진집이 이토록 오랜 사랑을 받는 것은 순전히 자식에 대한 지극한 아빠의 사랑이 깊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원래 판본이 소프트 커버였는데 포토넷이란 출판사에서 하드커버로 멋지게 재탄생시켰다.


너무나 구하고 싶어서 다른 수집가가 구했다는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 벌렁거렸던 이윤기 선생의 <하늘의 문>은 원래 3권으로 구성되었는데 두툼한 단 권으로 다시 나왔다. 이 소설을 이윤기 선생이 다시 손을 봐서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결국 개정을 하지 못하고 이윤시 선생은 세상을 떠나셨다. 어쨌든 더 좋은 장정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고 소설가로서의 이윤기의 모든 역량이 동원된 이 책을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어를 유려하게 가장 잘 쓴다고 소문난 고종석의 <기자들>은 <빠리의 기자들>이란 제목으로 바뀌어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고종석 본인이 신문사 재직시절 프랑스 파리로 연수를 간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인데 당시 유럽의 정치 경제적 상황과 연수생 기자들의 로망스가 고종석의 글 솜씨가 어우러진 멋진 책이다.


내 인생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준 유일한 책이라고 볼 수 있는 영어어휘 학습서<Word Power made easy>의 번역서도 다시 세상에 나왔다. 영어단어가 무의미한 철자의 나열이 아니고 인간의 역사와 맞물려진 ‘작은 세계사’라는 기본 틀에 입각한 책인데 어휘를 설명한 글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철학의 문구처럼 깊고, 유려해서 굳이 영어공부를 하지 않고 해석 판만 읽어도 훌륭한 독서가 되는 놀라운 책이다. 


<오래된 새 책>을 읽고 ‘읽고 싶은데 읽을 수 없는 책’으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냐며 질타를 한 분이 적지 않았다. 이제는 그 노여움을 조금은 풀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아직도 <오래된 새 책>에는 ‘새 책’이 되기를 기다리는 귀한 책들이 적잖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