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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이해인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1월
평점 :
나는 대학4년 내내 개신교 서클 'IVF'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는 것은 현재도 그렇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방과 후에 강의실에 모여 예배도 드리고, 초빙 간사의 '말씀'도 듣고, 교제의 시간까지 가진 4년 내내 나는 '믿는 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고향마을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짐을 싸들고 올라탄 기차 옆자리의 늙수그레한 학생이 '좋은 서클'이니 입학하거들랑 가입해보라는 충고를 듣고 덜컥 가입한 것이 개신교 서클이었고 '주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시절 내내 그 동아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당구와 술에 탐닉하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건전하고 배울 것이 많겠다라는 생각으로 무신론자이면서 무려 4년간 정기적인 예배와 끊임없는 도제식의 일대일 개신교 강의를 참아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럭저럭 독실한 개신교 서클과 '예수를 믿지 않는 불순한 회원'간의 불안한 항해는 항구를 눈앞에 두고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졸업을 앞둔 추운 겨울 새벽, 그 개신교써클 내에서 나의 훈육을 담당했던 동기 놈이 요란스럽게 기숙사 내 방 문을 열고 나를 깨웠다. Q. T에 가잔다. 그게 뭐냐고 되물었더니 Quiet Time이라는 새벽 기도 모임이라고. 나는 잠을 잘 때 코를 골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융통성 없는 동갑 훈육선생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나를 아직 어둠기가 채 가시지 않은 교정의 소나무 밑으로 소환해갔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날이 내가 기도를 인도할 차례란다. 그러니까 모태신앙으로 단련된 개신교 고수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채, 불순물처럼 섞여 있는 엉터리 개신교 흉내쟁이의 기도를 음미하겠다는 말이다. 그날 나의 기도 인도는 그네들에게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최악이었겠지만 그날의 기도는 나로서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 중 하나였다. 내가 정작 간절히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를 한 순간은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밥 먹듯이 하던 시절, 집 뒤뜰에 나가 교회에서 구경한 대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제발 내일 구구단 검사를 하지 않도록 해줍십사'라고 통성기도를 했었다. 물론 평소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답답한 일이 생겨서 갑자기 기도를 해서 미안하며, 만약 이번 기도를 들어주시면 앞으로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오늘 문득 이해인 수녀님의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을 읽다가 '환자의 기도'라는 시에 눈길이 멈춘다.
주님
제가 아프기 전에는
당신을 소홀히 하다가
이렇게 환자가 되어서야
열심히 당신을 부르는 제 모습이
비겁하고 부끄럽고 염치없어
숨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1967년 종신 서원 이후 수녀원 입회 50년을 맞은 이해인 수녀가 낸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이토록 인간적이며 소탈하다. 구구단을 외우는 코흘리개들이 하는 순진무구한 하느님에 대한 '양심'을 입회 50년을 맞은 일흔의 노 수녀님의 시에서 만난 반가움이란 어찌 표현할까 모르겠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50년간 하느님을 모신 신앙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는 의지로도 읽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코흘리개들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노년까지 잃지 않는 이해인 수녀님의 꽃 같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2008년 암 발병 이후 두 번째로 나온 시집이고, 시의 내용이 '투병 생활'에 관한 것들이 많지만 굳이 '투병 시집'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투병을 다룬 시가 많지만 우울하지 않으며, 태어나고 자라는 이야기보다는 늙고 죽어가는 사연이 많지만 절망적이지도 체념적이지 않다.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의지하지만 주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돋보인다. 그래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와 산문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는 촛불이고 허전한 공간을 향기로 채워주는 꽃이다. 그래서 나는 '투병 시집'이 아니고 '동백꽃 시집'으로 부르고 싶다.
'꿈에 본 어머니'라는 시는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니에 대한 그림 움이 사무치게 느껴져서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지게 한다.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난 날은
꿈에서도 행복하여
깨어나기 싫어
생전보다
더 통통하고 동그란 모습으로
은은한 웃음 머금고
딸을 축복하는 엄마의 모습
12년 전 나의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가 눈에 선하다. 눈을 감고 의식이 없는 어머니 곁에서 꾸벅꾸벅 조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엄마'라고 외마디를 내셨다. 그제야 나는 나의 어머니도 몸서리치도록 그리운 누군가의 '딸'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단하디 고단했던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보고 싶었던 사람은 어머니의 '엄마'였구나.
몹쓸 병을 얻어 이년 전 세상을 뜬 누이의 마지막 모습도 눈에 그려진다. 갑잡스러운 쇼크로 얼굴이 퉁퉁부어서 힘겹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데, 깊은 잠보다 더 깊은 의식불명의 상태라는데, 미처 뜨여지지 않는 눈으로 뭔가를 찾는 의지가 역력했다. "지금 엄마를 찾는 거지? 엄마 보고 싶은 거지?"라고 묻는데 누이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의 어머니와 누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엄마의 모습은 "은은한 웃음 머금고 딸을 축복하는"모습이었을 터이다.
그렇게 누이를 보내고 홀로 화장터의 뜨거운 화구에 들어갔을 때 우리 가족은 자동차 안에서 추위를 달랬었다. 이해인 수녀님은 당신도 암과 싸우면서도, 수녀원의 동료 수녀님과 친구를 떠나보내면서 가족보다 더 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가령 '떠난 벗에게'라는 시가 그렇다.
친구야 얼마나 쉬고 싶었으면
흔적도 없이 그렇게 부서져
하얀 가루가 되었느냐?
네 어여쁜 몸이
불가마 속에서 타오를 적에
겁이 많은 너는 얼마나 뜨거웠느냐?
혼자만 갑갑한 곳에 갇히어
얼마나 외로웠느냐?
사람에 대한 사랑이 기초하지 않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무의미하고 폭력적이다. 아픈 것을, 슬픈 것을 애써 신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도 공감하기 힘들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모든 평범한 사람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 수녀님을 하느님의 곁으로 더 향하는 징검다리가 되었음을 알겠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100편과 생활 이야기 100편이 담긴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의 넘치는 사랑을 감당키 어려워 '사랑받는 것도 힘든 일이야'라는 탄식을 자아내는 수녀님은 사실 매서운 추위에서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동백꽃처럼 사람을 사랑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