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도서관 - 책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2025 경기히든작가 선정작
인자 지음 / 싱긋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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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사람의 노후는 도서관을 이용하는가 아닌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 만큼 세금의 효용성을 체감하게 해주는 공공 시설은 드물다. 아울러 출근할 직장이 없는 사람에게 도서관 만큼 따뜻한 보금자리도 드물다. 동네 노인정에서 화투를 하거나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정치인 욕하는 것도 즐거운 소일거리이지만 도서관에서 보내는 하루만큼은 아니다. 도서관은 책만 읽는 장소가 아니다. 영화도 볼 수 있고 다양한 분야의 명사의 강연을 공짜로 들을 수도 있다. 더구나 냉난방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여름엔 더 없이 훌륭한 피서지이고 한 겨울 한파가 무섭지 않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은 놀랍게도 비데가 설치되어 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곳이다.

 

이런 도서관을 삶의 무대로 삼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웃기고도 짠한 풍경들을 기록한 책이 인자 작가의 에세이 <삶은 도서관>이다. 20년 넘게 광고·홍보 일을 하다가 마흔이 훌쩍 넘어 공공도서관 노동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저자가, 책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첫 에세이이자 ‘2025 경기히든작가산문 부문 선정작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나에게는 도서관 만한 집필실이 없다. 디지털 열람실에서는 개인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고 최소 수만권의 참고 자료가 곁에 있으며 한달에 몇 만원 드는 논문검색 사이트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나는 개인 노트북도 사용할 수 있고 도서관 자체 데스크탑도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열람실을 애용하는데 한 일주일만 다니다보면 서로 얼굴을 다 익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각자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자격증을 준비하는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지도 알게 된다.

 

조용한 도서관 생활이 약간 권태스러워질때마다 어김없이 빌런이 등장해서 무료함을 달래준다. 어떤 중년 이용자는 매일 제일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매일 영화를 보면서 마치 부모님 장례식장만큼이나 서럽게 운다. 오랜 동료 의식으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 어떤 남성은 프린트를 하고서는 분명 자기집에서 한 것과 폰트가 다르게 인쇄되고 글씨가 흐리다며 죄없는 도서관 공익 요원에게 항의한다. 참다못한 한 의인이 그 그렇게 까다로워서야 어디라며 혀를 차며 그럴거면 당신 집에 가서 프린트 하든가라며 쏘아붙이기도 한다. 그래도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신기한 일이다.

 

어느 도서관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이상하게도 전화가 오면 통화하면서 나가고, 남녀가릴 것 없이 그냥 열람실에서 시원하게 코를 풀며, 코고는 사람이 항상 사운드를 채워주며 운이 좀 나쁘면 인자 작가처럼 코딱지 빌런을 만난다. 물론 인자 작가가 만난 초등학생 코딱지 빌런은 그저 자기 세계에 집중하면서 생긴 일이고 점잖게 지적하면 당장 멈춘다. 이 외에도 열람실에서 혼자말 하는 사람, 한숨 푹푹쉬는 사람, 마우스 딸깍 거리는 사람등등 다른 이용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않더라도 도서관 책을 빌리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인간의 이상한 행태를 만나곤한다. 어떤 맞춤법에 미친 이용자는 매 쪽마다 출판사 편집자처럼 첨삭 부호를 마구 휘갈겨 놓았다. 나름 좋은일 해놨따고 흡족해 할텐데 더 큰 문제는 첨삭이 딱히 맞지도 않다는 것이다.

 

가끔 이 모든 빌런과 소요사태에도 표정 변화가 전혀 없는 디지털 열람실 담당 공익요원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그는 하루 종일 온갖 이용자를 다 겪었을테니 나보다 훨씬 더 웃기고 화나는 상황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흔하디 흔한 노인정과 동네 공원에서 푸는 썰과는 차원이 다른 학생이 아니면서 도서관이라는 시설을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극소수만의 썰이니 얼마나 재미날까? 나의 이런 궁금증과 호기심을 명쾌하게 해결해 준 고맙고 반가운 책이 인자 작가가 쓴 <삶은 도서관>이다. 광고 홍보인으로 일하다가 47세에 도서관 직원이 된 작가의 유쾌하고 쌉쌀한 도서관 사람들 이야기다. 역시 초반부터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불 꺼진 열람실에서 알콩달콩 애정 행각을 벌이는 고등학생 연인의 에피소드도 그렇고 똥이 급한 한 외부인과 화장실 시비가 붙어 경위서를 작성한 이야기도 그랬다.

 

오전 열한 시, 도서관 로비에서 한 외부인이 화장실 사용을 요청했으나...... 그럼 똥을 싸란 말이냐고 항의하여...... 이곳에 똥을 싸시면 안 된다고 응대하자......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도서관 직원을 꿈의 직업으로 여기지만 인자 작가의 글을 읽다 보니 세상의 빌런은 도서관에 다 모이는 것 같다. 혼자만 읽겠다고 만화책을 서가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가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를 꺼내듯이 꺼내보는 소년, 커피는 마시고 싶은데 매번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서가에 몰래 숨겨두는 남자, 물은 역시 스뎅 사발로 마셔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매번 도서관에 가져오는 어르신 등등

 

그렇다. 도서관에 가면 책을 좋아하는 지성과 품위가 있는 낭만적인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실상은 매우 독특한 행동 특성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그 이유를 고찰해 봤다. 아마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소중한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자칫 빌런들의 놀이터가 아닌 따뜻한 인간미 맛집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인자 작가를 비롯한 도서관 노동자들이다.

 

<삶은 도서관>은 도서관에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우리 곁 이웃을 둘러싼 따뜻한 이야기 모음집이라고 읽힌다. 다만 책과 도서관이 무대여서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더 흥미롭게 읽힐 뿐이다. 마치 흥신소처럼 책 이름을 정확히 기억 못 하는 이용자를 위해 탐정처럼 정확하게 그 책을 찾아주는 이야기를 읽다가 십수 년 전 내가 등록하게 될 자동차 번호에 4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 있다며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던 시청 직원이 생각난다. 다행히 치명적인 사고 없이 그 차를 11년이나 운행했는데 가끔 민원인의 일을 자기 일로 고민하던 고마운 그 직원이 생각난다. 인자 작가는 아마도 많은 도서관 이용자에게 십여 년간 잊히지 않는 추억과 따뜻한 정을 선물한 사람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글을 잘 썼고 글을 만지는 일을 하다가 뒤늦게 도서관 공무직을 시작한 인자 작가에게 직장 도서관은 책을 쉽게 접하고 읽을 기회가 많은 곳이 아니다. 이용자가 아니라 직원이기 때문이다. 도서관 직원은 책을 읽는 직업이 아니고 책을 다루는 직업이다.

 

내가 진짜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지점에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용자들의 진지한 열정을 볼 때, 읽고 싶었던 신간이 들어왔다며 아이처럼 설레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무한하고 벅찬 긍정의 에너지를 얻는다. 유모차를 끌고 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동화책을 고르는 엄마들을 볼 때, 나는 일종의 위대함을 느낀다.

<삶은 도서관>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책이다. 도서관 이용자들의 흥미로운 에피소드, 도서관 직원의 황당한 고충, 가족 이야기, 글쓰기 이야기 등등이 모두 녹아 있는데 희한하게 책을 덮고 나니 두 가지 생각으로 또렷해졌다. 참 재미난 책이구나! 참 따뜻한 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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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5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15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1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5-11-16 10:51   좋아요 0 | URL
아.네네 작가님 지적이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재쇄하게 되면 감사히 반영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미생물로 쓴 소설들 - 페스트에서 코로나19까지 문학이 그려낸 감염과 치유의 과학
고관수 지음 / 계단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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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문학 책을 고르고 읽고 소장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한 분야를 평생 파고든 저자가 쓴 책이다. 믿을만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가능한 새로운 관점을 토대로 쓴 책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 고관수 선생이 쓴 미생물로 쓴 소설들은 평생 곁에 두고 읽을만한 책이다. 책상에 앉아 종이와 연필만으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여서 수 없는 귀중한 지적 자산이다. 고관수 선생은 미생물을 전공하고 평생 미생물을 가르치고, 미생물에 관한 책을 써 온 저자이다. 미생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치 기함과도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나는 여간해서 읽지 않는 들어가는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헤르만 헤세의 로스할데이야기가 이어진다.

 

부끄럽지만 나도 헤르만 헤세를 좋아해서 그의 작품 코너를 따로 모아둔 책장 한쪽이 있는데도 아직 읽지 못한 소설이었다. 무슨 소설인가 싶어 궁금했는데, 가족이라는 현실과 예술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예술가의 정신적 고뇌를 다룬 것이라고 한다. 이 방면이라면 달과 6펜스도 생각나고, 최근에 읽은 에밀 졸라의 작품도 한가락 하는 작품이다.

 

어쨌든 로스할데의 주인공은 화가로서 성공했지만, 아내와는 애정이 식을 대로 식은 상태다. 마치 달과 6펜스의 천재적 화가 스트릭랜드처럼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타히티로 떠나듯이, 에밀 졸라의 작품에 나오는 열정적인 화가 랑티에가 피리 근교 세느 강변으로 옮겨가듯이, 로스할데의 주인공도 인도로 떠나려는 순간 둘째 아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숨지고 만다.

 

아들의 병명은 뇌수막염. 헤세는 마치 자신이 이 병을 앓은 것처럼, 아니면 곁에서 뇌수막염 환자를 지켜본 것처럼 사실적으로 죽어가는 아들의 병세를 길게 묘사한다. 이 구절을 소개하는 고관수 선생은 감염질환을 일으키는 미생물학자로서 강의에서 종종 뇌수막염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소년이 마침내 뇌수막염에 굴복하여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묘사한 소설 덕분에 뇌수막염이라는 질병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는 고관수 선생의 설명은 둔기에 맞은 것처럼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효능성을 이토록 묵직하게 설파하다니 놀랍다.

 

미생물로 쓴 소설들은 소설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감염병의 실체와 역사적 흐름,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다룬다. 간혹 한두 작가의 지병과 문학작품의 관계를 다룬 책은 있었지만,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수많은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감염병을 광범위하게 논한 책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런 면에서 미생물로 쓴 소설들은 좋은 소설을 음미하는 새로운 레시피를 추가한 문학사적 공헌을 한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페스트, 제인 에어, 크눌프, 마의 산, 레 미제라블, 드라큘라, 발가락이 닮았다, 천 개의 파랑등 유명 작품이나 덜 알려진 숨은 명작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전염병 이야기에 빠지고 또 질병의 사회사까지 물 흐르듯 이어진다.

 

따지고 보면 문학작품, 특히 고전에 질병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가 즐겨 읽는 고전이 쓰이던 시대는 페스트, 콜레라, 결핵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니 질병은 단골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또 주인공이 급작스럽게 질병으로 사망하는 설정은 작품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질병은 인생의 덧없음과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나 역시 레 미제라블을 사회적 약자의 교육 기회 부족, 빈부 격차, 기득권 남용을 고발한 소설로 읽었는데, 고관수 선생 덕분에 빅토르 위고가 가난한 사람들이 위생·영양 상태가 나빠 더 병에 취약했다는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 소설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고관수 선생에게 후속작을 부탁하고 싶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졸라의 작품속 화가의 어린 아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알료사와 친했던 소년 일류샤를 앗아간 질병까지 이어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따지고 보니 내가 읽은 고전 중 질병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고전 작가들은 의학 지식이 부족하여 질병 자체를 미스터리로 여겼다. 질병을 통해 인간이 알 수 없는 신의 섭리와 운명을 탐구했다면, 질병을 살피는 것이 곧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라 할 수 있다. 미생물로 쓴 소설들은 그 중요한 단서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는, 소설 처럼 재미있는 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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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2025-09-25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박균호 2025-09-25 11:06   좋아요 0 | URL
네 재미나요
 

책을 17권이나 내다보니 친하게 교류하는 출판사가 여러 곳 있다. 그래서 내가 자주 놀러 가서 노는 디씨인사이드 독서갤러리에서 눈여겨본 키두니스트 작품을 출판사에 소개했더랬다. 덕분에 출판사에서도 좋게 보고 계약하고 출간했다. 최근에 다른 출판사에서 또 책을 냈던데 무척 반가웠다. 어려운 고전을 쉬운 말로 소개하는 게 그간 내가 해온 일인데 키두니스트 작가는 유머 넘치는 만화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늘 부럽고 존경스러운 작가다.

 

텍스트를 도식화하는 작업은 아마도 일본이 최강국이 아닐까 싶다. 고전을 만화로 소개하고, 어려운 학문 분야를 도감으로 펼쳐낸 결과물이 일본에는 차고 넘친다. 나는 이런 일본 출판 문화가 참 부러웠던 차였다. 그래도 우리나라에도 젊고 유머 넘치고 그림 잘 그리는 고전 애호가 키두니스트 작가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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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9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저도 참 좋아하는데 냉정편 나온건 놓쳤네요. 덕분에 챙겨갑니다

박균호 2025-07-29 19:57   좋아요 1 | URL
실은 저도 아직 ㅠㅠ
 

아나운서 출신 국회의원 배현진이는 소정의 절차에서 소정이 간단한정도라고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소정(所定)정해진 바라는 뜻이다. 소정의 절차는 정해진 절차라는 뜻이지 배현진이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간단한뭐 이런 뜻이 아니다.


아나운서 출신에게 우리말 교육을 정확하게 시켜주는 모습을 보고 반듯하고 교양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다. 나는 어휘력이 곧 한 사람의 교양과 교육의 정도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표라고 확신한다.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다’ -비스켄슈타인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52561&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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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9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나운서 출신인데 저걸 저렇게 안다는건 참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하여튼 저 동네는 수준이 참.... 얼마전 유튜브에서 전원책이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걸 봤는데 너는 책을 읽었는데 왜 생갈꼬라지가 그것밖에 안되는지 정말 묻고싶더라구요. ㅎㅎ

박균호 2025-07-29 18:17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게요 소를 작은 것으로만 아나봐요 ㅎ
 

지금은 거의 은퇴하다시피 했지만, 한때 나는 ‘일단 읽으면 도저히 책을 안 사고는 배기지 못하는’ 서평을 쓰려고 애썼다. 내 글솜씨가 수려하지도 않고, 나 자신이 유명 인사도 아니기에 그런 서평을 쓰기 위해 내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별거 있나. 우선 작가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내 십 년지기, 이십 년지기라 여긴다. 즉, 작가에 대한 애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 책이 정말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다. 작가에 대한 애정과 그 책의 성공을 바라는 간절함, 이 두 가지가 내가 서평을 쓸 때 늘 염두에 두는 마음이다.
스피드건 수치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야구를 향한 투수의 열정과 간절함처럼, 서평가에게도 글솜씨를 초월한 책에 대한 마음이 있다.

오늘, 나에 대한 애정과 내 책에 대한 간절함이 담긴 서평을 보았다. 내가 아는 가장 열정적인 독서가,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고관수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서평이다. 새로 조성한 가족묘 잔디에 물을 주고 오는 길이었다.


출판계와 작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서평은, 뜨거운 날씨에 잔디에 뿌려진 한 줄기 물처럼 출판계와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밑거름이자 격려가 된다. 정말 고마운 서평이다.

 이하 고관수 선생 서평>

나는 박균호라는 작가를 좀 안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된 이후로 오프라인으로는 딱 한 차례 만나봤지만, 책을 통해 나름 여러 차례 교류한 사이다. 박균호 선생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딴에는 가깝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낸 책을 읽고 쓰는 이 글이 찬사 일변도일 것이라 예측할지 모르겠다. …… 그렇다! 난 이 책에 사심 가득 담아 이 책이 왜 읽을 만한 책인지를 굳건히 설득하려 한다. 다만 그 이유가 단순히 작가를 알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소개하고 있는 책 서른일곱 권(물론 곁들이고 있는 책은 이보다 훨씬 많다)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 책을 맨먼저 언급하는 것은 좀 우쭐대고 싶어서다),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를 비롯해 열 권 남짓. 작가로 치면 그래도 꽤 된다. 전시륜이나 강창래, 안우광, 민병산과 같은 지금도 낯설게 여겨지는 우리나라 작가 말고는 쇼펜하우어, 스티븐 크라센 정도의 외국 작가 말고는 그래도 한 권 이상은 접한 작가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정도면 나도 박균호 선생의 책을 읽을 자격이 된다고 손을 들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데 책은 그냥 읽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란 것을 이 책의 서른일곱 꼭지의 글을 읽으면 서른일곱 차례 깨닫는다. 박균호 선생은 내가 읽은 책에서는 내가 읽지 못한 것을 읽고 있고, 내가 읽은 작가의 책에서는 내가 읽은 책을 넘어선 통찰을 더불어 내놓고 있다. 왜 난 왜 이 소설을 이렇게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지? 정도는 대수롭다. 읽은 것은 분명함에도 전혀 기억에 없는 내용이 불쑥불쑥 나타나 곤혹스럽다.

하지만 내게 그런 곤혹스러움을 주는 것은 내게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점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그 책을 두 번 읽은 것과 같은 효과를 주니까 말이다. 애초에 내가 읽었던 것에 보태어 남이 읽은 느낌을 그대로 얹어 나는 그 책을 보다 깊고 넓게 알게 되었다. 이건 《이런 고민, 이런 책》 한 권을 읽었다고 기록할 게 아니라 이러저런 책을 모조리 한 차례 더 읽었다는 기록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나와 박균호 선생이 책을 대하는 태도는 좀 다르다(박균호 선생이 책 수집가라는 면을 제외하고도). 박균호 선생은 소설가 김영하의 말을 빌어 “사놓은 책 가운데 책을 읽는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나는 철저히 읽기 위해 책을 사고, 빌린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비록 그 독서의 깊이가 어찌 되었든 일단은 읽을 책이란 얘기다. 읽지 않은 채 읽히기만을 기다리는 책은 거의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나는 읽었던 책을 좀처럼 다시 읽지 않는다. 이 행태가 나도 싫어서 언제부턴가는 일부러 한 달에 한 권은 읽었던 책을 읽자고 다짐을 하고 지켰던 적도 있다(그것도 지금은 그런 다짐을 져버렸다). 물론 다른 목적 때문에 책의 부분을 다시 읽거나, 혹은 가끔 전편을 다 읽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책을 좋아하고, 어딜 가는 책이 내 가방 속에 들어있지 않거나 손에 들려 있지 않으면 불안해 마지않는 점만큼은 ‘똑같다’!

이 책에는 이전 책에서 아직은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박균호 선생의 따님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등장한다(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알고는 있지만 책에서도 밝히지 않고 있으니 나도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박균호 선생의 카톡 프로필 사진도 차지하고 있는 그 딸은 박균호 선생 가족의 이음매 같은 역할을 하고, 또 반성적 사고의 매개가 되고, 또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하는 존재다. 그런 모습을 읽고, 지켜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재미이고, 또 내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소소한(?) 재미는 글 꼭지마다 달고 있는 ‘소소한 한마디’라는 글귀다. 이 글귀는 그 글 꼭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삶의 지혜,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생활의 팁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게 그 글에서 다르고 있는 소설에 대한 비평 등에서 이야기하는 거창한 것들이 아니란 점이 흥미롭고 웃음지게 한다. 이를테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보탠 ‘소소한 한마디’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성공하려면 잘 먹고 충분한 잠을 자라.”다. 이런 식의 교훈을 도출해내는 과정도 재미있다. 글을 중간쯤 읽으면 이번 글의 ‘소소한 한마디’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디서 《돈키호테》를 읽고 이런 교훈을 얻으라는 글을 읽을 수 있겠는가? 바로 박균호 선생의 글에서다!

나는 고전을 많이 읽지 않았었다. 최근에 고전을 좀 읽게 된 계기를 제공한 지분의 팔구 할은 박균호 선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는 책들이 몇 권 더 생겼다. 그래도 이쯤이면 나는 박균호 선생의 꽤 충실한 독자의 축에는 끼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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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7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와 책에 대한 애정이 좋은 리뷰의 기본이라는 점 동의합니다. 그런 리뷰를 받은 박균호님 기쁨도 공감이 가네요. 좋은 책에 좋은 독자 참 좋네요

박균호 2025-07-27 10:2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에곤 실례 2025-07-27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리뷰를 받게 되면 잠도 안 오겠어요 ㅎㅎ
이 리뷰 보고 저도 주문했어요.

박균호 2025-07-27 22: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