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과 오늘 출판사로부터 흥미로운 연락을 받았다. 2014년에 낸 <아주 특별한 독서>와 2015년에 낸 <수집의 즐거움>의 초판이 다 팔렸다는 소식이다. 출판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팽겨둔 책이다. 초판이 다 팔렸다니 반갑고 고마운 일이긴 한데 쓸쓸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저자마저 잊고 지내는 책을 소리소문없이 구매해 준 독자들을 만나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기도 하다. 내가 없는 사이 고생한 내 불쌍한 책들도 고맙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소문도 있었지만 2011년에 낸 <오래된 새 책>을 읽은 독자들은 나를 마치 ‘책 전문가’로 생각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읽을 만한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았다. 일일이 답을 하는 것도 귀찮은 데다 그동안 내 독서 생활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내가 생각하는 읽을 만한 책의 목록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낸 책이 <아주 특별한 독서>다. <아주 특별한 독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대로 독서가라면 한 번쯤은 궁금해할 만 한 여러 작가가 낸 삼국지,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문학 전집, 언어별로 신뢰할만한 번역가, 다양한 분야의 개론서 등을이야기했다. 

책에 관한 시시콜콜한 주제를 좋아하는 독자는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기대는 했지만 설마 초판이 다 팔릴지는 몰랐다. 겨우 초판이 다 팔린 것이 뭐가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요새 출판계 실정은 쉽지는 않은 일이다. <수집의 즐거움>도 역시 시시콜콜한 주제를 다룬 책이다. 

거창하게 책 제목에 수집이라는 단어를 넣었지만, 하다못해 청첩장이라든가 연필을 넘어서 괴담 수집가도 소개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야말로 ‘시시콜콜’ 그 자체다. <수집의 즐거움>을 내면서 알게 된 것은 ‘1인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즐거움’이었다. 출판사 사장과 나는 온종일 메신저로 머리를 맞대고 책을 팔 궁리를 했고, 시시콜콜한 온갖 종류의 마케팅 활동을 하였다. 

우리들의 시시콜콜한 마케팅은 거의 3달 가까이 이어졌고 마침내 제 갈 길로 보내주었다. 장년의 두 남자가 책 몇 권 팔겠다고 머리를 짜내고 이것저것 안구에 습기가 찰 만한 생계형 영업을 한 것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대형출판사와는 나눌 수 없는 기억이기도 하다. ‘1인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즐거움’을 선사한 <수집의 즐거움>은 내가 낸 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다. 

속옷회사와 협업한 한정판 콜라의 사진을 사용한 표지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야하기도 하다. 남자들은 사실 여자들의 나체보다는 속옷을 입은 모습을 더 야하게 느낀다. 얼마나 야한가? 얼핏 보면 그냥 콜라병 사진일 뿐이지만 자세히 보면 섹시한 여자 팬티로 보이니까 말이다. 은근히 야한 <수집의 즐거움>의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나와 동고동락했던 출판사 사장은 서점에 깔린 몇 권 되지 않은 것만 제외하고 출판사에 남아 있던 10권의 <수집의 즐거움>을 보내주었다. 

이건 마치 집 나간 자식의 유품을 받은 듯한 슬픔이 느껴졌다. 명색이 희귀본 수집가인 내가 내 책을 수집하게 되었고, 절판본이 새 책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내 책이 절판되었다. 집필하면서 만났던 여러 수집가의 추억들, 책을 팔겠다고 한 온갖 잡다한 마케팅은 이 책이 절판되더라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해당 물체가 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끝났다.

<아주 특별한 독서>는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낸다고 한다. 작가로서 품 안의 자식을 무덤에 묻는 것보다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물가로 향하는 어린아이가 걱정되는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간신히 초판을 다 팔았는데 또다시 위험한 숲으로 향하는 출판사를 말리고 싶었다.

출판사의 의지가 강하니 말릴 도리는 없었다. 초판 교정을 다시 보는데 글쓰기 실력 향상을 원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무수히 등장하는 “나는”이라는 말과 접속사만 지워도 당신의 글은 한 단계 위로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교정을 보고 제목도 새로 정했다.

내가 5분 만에 정한 “북 소믈리에가 권하는 맛있는 책”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수집의 즐거움>'에는작별 인사를 <북 소믈리에가 권하는 맛있는책>'에는 격려를 보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9-07-10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책도 이제 슬슬 내심이 ㅎㅎ

박균호 2019-07-10 09:06   좋아요 1 | URL
네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ㅎ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stella.K 2019-07-10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은근 자랑이신데요?ㅎㅎ
저는 제 책이 팔리고 있는지 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구요.ㅠ
<오래된 새책>은 정말 좋은 책이죠.
아마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을 알아보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그때 이후 책을 못 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보다 소심하여...ㅠㅋ

박균호 2019-07-10 14:02   좋아요 0 | URL
초판 발행 부수가 얼마 안되서 자랑거리는 아니랍니다.^^
졸저를 좋게 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안 팔리는 책을 계속 내고 있지만 계약이 2건이나 생겼네요.
아무래도 <출판계약 따내는 방법>을 집필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것도 자랑으로 생각하시려나..ㅠㅠ
.

2019-07-10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0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 - 내 맘대로 읽어도 술술 읽히는 독서의 비밀
변대원 지음 / 북바이북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적은 책이다. 유명인사가 휴가 기간에 읽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책을 냉큼 주문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5권짜리 대하소설인데 분량도 문제이지만 가격도 비쌌다. 바둑이라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관한 책이기도 했다. 책이라면 충동구매를 일삼는 내게는 이 모든 것들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과연 배송되어 온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잊혀가는 아름다운 순수한 우리말들이 가득했고 바둑에 관한 몰랐던 지식도 많았다. 스토리 전개도 좋았다. 보석 같은 책이라고 생각을 했고 연신 감탄을 했더랬다. 일에 치여서 한 달 만에 2권째를 읽었는데 3권으로 들어서면서 내 기준으로는 스토리 전개가 느슨해졌고 초반의 쫄깃한 재미마저도 줄어 들어가고 있었다. 


‘놀이’가 ‘일’로 바뀌기 시작했다. 웃기는 것은 내가 쓴 책에서 재미없는 책은 그만 읽고 던져버리라고 독자들에게 충고했지만 정작 본인은 이미 흥미를 잃은 책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유명인사가 읽고 감동을 한 책을 나도 읽었다는 자부심과 여러 책을 쓴 저자의 가오는 쉽게 포기 못 할 유혹이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더 읽지 못하는 책을 붙잡고 4개월을 보냈다. 책의 적은 책이라고 한 이유다. 그 4개월 동안 다른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침내 더 견디지 못하고 ‘짐’을 내려놓았던 날의 ‘쾌감’을 잊지 못한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을 던져버리자마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새로운 책을 닥치고 읽기 시작했다. 


마치 수십 년 동안 감옥에서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가끔 ‘짐’이었던 책을 보면 ‘죄책감’이 들기는 한다. 변대원이 쓴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는 나의 죄책감을 말끔히 씻어준다. 이 책은 아직 독서에 취미를 들이지 못하거나, 열심히 읽긴 하는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독서의 유용함을 진지하게 설파하거나 여학교 기숙사 사감선생처럼 엄격하게 훈육하는 독서법을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독서의 ’재미‘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하면 책을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지를 말하는 책이다. 교과서처럼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잔소리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이 책에는 자신의 독서 생활에 대한 질문지를 제시하고 그 결과로 자신의 독서 생활 현황을 파악하게 하며 각자의 상황에 맞는 독서법을 제시한다.


변대원이 말하는 독서법은 음식을 급하게 삼키지 않고 잘근잘근 씹어 먹어서 책이 가지고 있는 영양분을 꼼꼼하게 섭취하게 해준다. 재독과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책을 함부로 다루기를 원한다. 필사를 추천한다. 필사는 책을 가장 천천히 읽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필사를 문장력을 향상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만, 필사야말로 책을 씹어 먹어서 그 책이 가지고 있는 영양분과 맛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책에 메모하고 기록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는 저자의 말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책은 모시는 존재가 아니고 이용하고 즐기는 도구가 아니던가?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를 읽다 보면 몇 달 동안 내게 짐이었던 책을 던졌을 때의 쾌감이 느껴졌다. 이토록 자상하고 세심한 독서론이라니!


저자의 세심함을 확인시켜 주고 싶다. 저자가 추천하는 책에 메모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좋은 구절은 초록 색연필로 줄을 긋는다.

다시 읽고 싶은 구절이 있으면 상단 모서리를 접는다.

큰 울림을 준 구절이 있으면 하단 모서리를 접는다.

특별히 좋은 구절은 빨간 색연필로 줄을 긋는다.

특별한 키워드에는 동그라미를 친다.

글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은 파란 펜으로 적는다.

당장 적용해야 하거나 중요한 내용은 빨간 펜으로 적는다.


모든 독자들이 이 메모 방법을 실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토록 꼼꼼하게, 진지하게, 철저하게 독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실천해 온 사람의 책은 꼭 한 번 읽어 봐야 한다. 적어도 책을 읽고 싶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9-06-15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없는 책은 결국 포기하게 되는데
포기할 것이라면 가급적 빨리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것 말고도 읽을 책은 많으니까요.
그래도 포기할 거면서 끝까지 뭔지 모르게 붙들게 되는 책이 있기는 하더라구요.

그 보다 전 완독에 대한 강박이 있더라구요.
재미없으면 안 읽으면 그만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중간에 건너 뛰거나 발췌독을 하면 왠지 다 읽은 것 같지 않고 찝찝하더라구요.
마치 서자 취급한 것 같아서...ㅠ

박균호 2019-06-15 20: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돈 주고 산 책인데 중간에 멈추고 더 이상 읽지 않으면 본전 생각이 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하고...ㅎㅎ
 

 

2019년 1월 3일 오전 10시 불쾌한 아침이었다. 간밤에 높은 나무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데 아래에는 늑대를 닮은 맹수가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노리고 있는 꿈을 꾸었다. 꿈이 하루의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전의 중간쯤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 번호였다.

 

 

내심 반가웠다. 드문 경우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요양원에 계신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정서인데 뜬금없이 요양원에서 오는 전화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요양원 직원에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문자로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을 만큼 놀라게 되는 전화다.

그날 예외적으로 요양원에서 오는 뜬금없는 전화가 반가웠던 이유는 조만간 요양원 거주자의 방을 옮기게 되면 예전에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던 할머니들과 같은 방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요양원 직원은 어머니께서 식사하시고 토하셔서 약을 드렸는데 ...약마저 토하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통화하는 도중에 숨은 쉬시는데 의식이 없으셔서 119에 연락했다고 한다. 하도 차분하게 말씀을 하셔서 그다지 큰일이 아닌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연수를 받고 있던 청주의 모 대학에서 어머니에게 달려가려고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는 중에 119 응급 대원의 전화를 받고서야 어머니가 매우 위중한 상태라는 것을 실감했다. 심폐소생술 시술 여부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어머니를 소생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구급대원이 말했다. 고마웠다. 

 

 

어머니가 수송된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셨다. 이마에 손을 대니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데 어머니는 눈을 질끈 감고 계셨다. 얼굴은 평온하신데 이 세상이 몸서리가 나게 싫어지셨는지 눈에 힘을 세게 주고 감아야 나올 수 있는 깊이로 감겨 있었다.

어머니 생애가 참 고단하시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자식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셨는가 생각되어서 서운한 생각마저 들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한 딸아이 자랑을 듣고 싶지 않으셨나. 햇볕이 따뜻한 봄날 딸기 그릇을 받쳐 들고 나와 함께 산책하고 싶지 않으셨나.

 

 

아버지 제사상에 올렸던 배추전과 파전을 주섬주섬 챙겨서 어머니를 뵌 것이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를 뵙고 오는 길에 배추전과 파전을 담았던 플라스틱 용기를 빠뜨리고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역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금방 다시 올 텐데 그때 가지고 오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했다. 그때 다시 돌아갔다면 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을 터라고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보다 더 앞선 가을쯤이었다. 요양원에 찾아간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항상 머리맡에 두고 지키던 소지품 함을 한참이나 뒤적거리시더니 5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주신다. 어머니를 찾은 지인이 주고 간 돈을 나를 주시려고 챙겨둔 것이었으리라. 손녀에게 줄 용돈이냐고 여쭈었더니 나에게 주시는 것이란다.

 

 

어쩐지 그 지폐는 아껴두고 싶었다. 지갑에 넣어두고 돈을 현찰을 쓸 일이 생겨도 현금지급기를 찾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지폐는 간직했다. 그러다가 어찌하다 보니 지갑 안에 5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 더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지폐를 지갑 안에 넣어 버렸던 것.

2장의 지폐 중에 어느 것이 어머니께서 주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그 2장의 지폐를 사용해버렸다. 언젠가는 또 어머니께서 이번처럼 또 지폐 한 장을 주시겠거니 생각했다. 그 지폐가 살아생전 어머니께서 내게 준 마지막 돈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다는 상상조차 하기 무서웠고 어머니는 오래 사실 줄 알았고 오래 사시기를 고대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야 알았다. 내가 어머니를 보살핀 것이 아니고 내가 돌아가시는 그때까지 내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오늘 장을 본 아내가 어린아이 주먹만 한 딸기를 사 왔다. 그 딸기를 먹으면서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맛나게 잡수셨겠느냐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온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눈물이 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눈물이 난다. 어머니가 맛보지 못하는 음식을 먹고, 보지 못하는 풍경을 보는 것이 힘들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3-15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5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3-15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못 뵙는 동안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래도 편히 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은 때가 되면 떠나는 존재들이잖아요.
살아있는 사람 좋자고 떠나실 분을 못 떠나가 막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저 그곳에서 편히 계실 거라는 것에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산사람은 또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인생이구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균호 2019-03-15 15:10   좋아요 1 | URL
네 편히 가셨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스텔라님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19-03-15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5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니 2019-11-26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따뜻합니다. 알라딘에 책 구매하러 들어왔다가 님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모르는 분이지만 글이 좋아서 남깁니다. 좋은 글 많이 쓰세요^^

박균호 2019-11-26 20:04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고맙습니다.

2020-08-06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2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종삼정집
홍승진.김재현.홍승희.이민호 엮음 / 북치는소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나는 독서와 책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시집 읽기를 권함’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실상은 나 자신조차 시집 읽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집 읽기를 권함’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싶다. 시에 대한 좁은 지평 탓으로 내가 낸 여러 권의 독서 에세이에는 시집을 이야기하는 꼭지가 드물다. 재미난 것은 그래도 유독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고 그 시를 2권의 책에서 연이어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김종삼의 시가 좋아서 2번이나 인용을 했다.


  장편(掌篇)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 짜리 두 개를 보였다


이 시의 제목 장편(掌篇)은 장편소설을 말할 때 사용하는 장편(長篇)이 아니고 ‘짧은 이야기’를 뜻한다. 과연 짧은 시다. 길이가 짧다고 해서 여운이 짧은 시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김종삼의 시는 비정(hard-boiled)처럼 보인다. 도무지 시인의 감정을 표시하지 않는다. 무심하게 관찰자 시점에서 보이는 광경을 기술하는 마치 사관처럼 ‘기록’할 뿐이다. 그런데도 한번 읽으면 도무지 잊히지 않는 것이 김종삼의 시다. 한눈에 들어오는 짧은 몇 줄의 시로 수십 년을 붙잡는 여운과 공감 그리고 감동을 주는 것이 김종삼의 시다. 
 
 김종삼의 시를 읽다 보면 시라는 문학 장르가 어디까지 위대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여운을 줄 수 있는지, 어디까지 공감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이 겪는 유혹 즉 내가 지금 얼마나 슬픈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지금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시도가 김종삼의 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편(掌篇)

어지간히 추운 날이었다

눈발이 날리고 한파 몰아치는 꺼먼 날이었다

친구가 편집장인 아리랑 잡지사에 일거리 구하러 가 있었다

한 노인이 원고를 가져왔다

담당자는 맷수가 적다고 난색을 나타냈다

삼십이매 원고료를 주선하는 동안

그 노인은 연약하게 보이고 있었다

쇠잔한 분으로 보이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고료를 받아든 노인의 손이 조금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노인의 걸음거리가 시원치 않았다


이십 여년이 지난 어느 추운 날 거리에서 그 당시의 친구를 만났다 문득 생각나 물었다

그 친군 안 됐다는 듯

그분이 方仁根씨였다고. 



이 시를 읽고 나서도 김종삼과 그의 친구가 안타까워한 방인근(方仁根)이 누군지 몰라서 검색을 해봤다. 그의 생애에 관한 설명을 읽을 것도 없이 말년으로 보이는 그의 사진만 보아도 김종삼이 오랫동안 기억에 담아 둔 소설가 방인근의 궁핍함이 체감되었다.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식당을 찾은 어린 소녀를 말하는 시가 늘 낮은 곳과 서민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은 최민식의 사진을 떠올리게 하듯이 말이다. 시인 김종삼은 이 시를 통해서 방인근 개인의 궁핍함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개인으로서 빛나는 청춘이 있었고, 문인으로서 발자국을 남긴 방인근이라는 개인의 처연한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비롯한 문인과 문학의 어려움을 말하고자 함이었다고 믿는다. 셀 수 없는 기록물과 문학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문인의 삶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들어왔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저술도 김종삼의 이 시 만큼 궁핍한 문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서술하지는 못했다. 시라는 것이 이토록 힘이 센 장르인지 김종삼의 시를 통해서 새삼 통감한다. 
 
 ‘북 치는 소년’출판사에서 나온 <김종삼 정집>은 시집치고는 엄청난 분량과 가격이라 설명이 좀 필요하겠다. 우선 정집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전집이 아니고 정집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기존 김종삼 전집 시집에서 빠진 작품을 보완하였고 작가의 작품을 모두 모은 것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원전 비평적 작업, 주해와 함께 낱말 풀이까지 더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이 1000쪽이 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종삼 시인의 원문을 찾아서 온갖 대학 도서관을 찾아 헤맨 14명으로 구성된 편찬위원들의 노고가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의 장정과 디자인 그리고 내지의 품격이 훌륭하다는 점은 장서가인 나에게는 큰 매력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사들이 시험문제를 낼 때는 ‘이원목적분류표’라고 해서 구체적인 문제출제계획서를 우선 작성해야 하는 것이 권장된다. 어떤 단원에서 어떤 능력을 알기 위해서 어떤 난이도로 출제할 것인지를 사전에 정하고 그에 따라서 문제를 내는 것이 좋은데 사실 이를 준수하는 교사는 많지 않다. 우선 시험문제를 내고 그에 맞춰서 이원목적분류표를 사후에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나로 말하자면 출제를 먼저하고 이원목적분류표를 사후에 작성하는 부류에 속한다. 반성하면서도 여간해서 이를 바로잡기가 어렵다. 책을 집필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에는 기획서와는 별도로 ‘작가의 말’이 원고에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장군이 전쟁에 나서기 전에 출사표를 던지듯이 작가는 원고를 집필하기 전에 작가의 각오나 계획을 밝히고 그대로 원고를 써나가야 한다고 본다. 
 
 역시 불행히도 작가로서의 나도 ‘작가의 말’을 사후에 작성한다. 여러모로 ‘야매’ 인생이다. 오늘 연말에 나올 신간에 대한 최후 일정으로 ‘작가의 말’을 썼다. 한 권의 책을 내면서 최악의 ‘창작의 고통’을 겪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제목과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말’만 따로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새 책에 대한 <작가의 말>을 소개하면 이렇다. 



보물찾기 놀이를 좋아했다. 기민하지 못해서 보물을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지만 보물찾기 놀이는 언제나 즐겁고 작은 스릴이 넘쳤다. 평소에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한적한 모퉁이가 보물찾기 놀이가 시작되면 그곳은 보물섬이 되었다. 보물을 숨겨둔 사람도, 보물을 발견한 사람도 모두가 행복해지는 놀이다.
 
 나는 고전 읽기를 보물찾기 놀이로 생각한다. 고전이란 주로 남들이 좋다고 해서 읽는 책이다. 선생님이 숨겨둔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야산의 한 구석을 자세히 살펴보듯이, 우리는 고전을 읽으면서 이 책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감동하였는지를 찾게 된다. 시작은 수동적이었지만 고전을 읽으면서 부모 세대가 느낀 감동을 고스란히 발견한 독자도 있을 터이고,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던 나처럼 남들이 좋다는 고전에서 감동이나 공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남들이 다 찾은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고전이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고전이 태어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자기에게 맞는 고전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한 번의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다시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또 다른 보물섬이 언제 어디라도 우리에게 나타나니까 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고전에 대한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리의 재료가 요리사에 따라서 다른 요리로 태어나듯이 고전은 독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감동과 공감이 발견된다. 이 책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저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 고전이 이토록 다양한 형태와 시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 책 읽기에 정답과 정도가 있다면 얼마나 시시한 일인가?
 
 가능한 각 고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흔한 요리 재료로 남다른 요리를 선사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이 책을 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신선한 자극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토론이나 논의의 주제가 될 만한 주제를 끌어내려고 애썼다. 독서의 다양성을 고려해서 잘 알려진 고전과 낯설게 생각될 고전의 목록을 안배했다. 누구나 알 법한 고전에서 흔치 않은 주제를 끌어내고 싶었고, 아는 사람이 드물 것 같은 고전에서 누구나 알 법한 주제로 친근함을 주고 싶었다. 이 책으로 한 권의 고전이라도 더 읽고, 한 가지 생각이라도 더 해진다면 저자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8-10-01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거 장정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서문>인가 하는...
작년인가 읽어 봤는데 생각 보다 별로더라구요.

그나저나 책이 또 나오는가 봅니다.
참 부지런하십니다.
이번엔 고전에 관한 책인가 보죠?
부럽습니다.^^

박균호 2018-10-02 11:21   좋아요 1 | URL
아...스텔라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시 책에 관한 지식이 아주 풍부하세요.
고전에 관한 책이긴 한데 재미난지는 모르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