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과 오늘 출판사로부터 흥미로운 연락을 받았다. 2014년에 낸 <아주 특별한 독서>와 2015년에 낸 <수집의 즐거움>의 초판이 다 팔렸다는 소식이다. 출판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팽겨둔 책이다. 초판이 다 팔렸다니 반갑고 고마운 일이긴 한데 쓸쓸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저자마저 잊고 지내는 책을 소리소문없이 구매해 준 독자들을 만나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기도 하다. 내가 없는 사이 고생한 내 불쌍한 책들도 고맙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소문도 있었지만 2011년에 낸 <오래된 새 책>을 읽은 독자들은 나를 마치 ‘책 전문가’로 생각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읽을 만한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았다. 일일이 답을 하는 것도 귀찮은 데다 그동안 내 독서 생활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내가 생각하는 읽을 만한 책의 목록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낸 책이 <아주 특별한 독서>다. <아주 특별한 독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대로 독서가라면 한 번쯤은 궁금해할 만 한 여러 작가가 낸 삼국지,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문학 전집, 언어별로 신뢰할만한 번역가, 다양한 분야의 개론서 등을이야기했다. 

책에 관한 시시콜콜한 주제를 좋아하는 독자는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기대는 했지만 설마 초판이 다 팔릴지는 몰랐다. 겨우 초판이 다 팔린 것이 뭐가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요새 출판계 실정은 쉽지는 않은 일이다. <수집의 즐거움>도 역시 시시콜콜한 주제를 다룬 책이다. 

거창하게 책 제목에 수집이라는 단어를 넣었지만, 하다못해 청첩장이라든가 연필을 넘어서 괴담 수집가도 소개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야말로 ‘시시콜콜’ 그 자체다. <수집의 즐거움>을 내면서 알게 된 것은 ‘1인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즐거움’이었다. 출판사 사장과 나는 온종일 메신저로 머리를 맞대고 책을 팔 궁리를 했고, 시시콜콜한 온갖 종류의 마케팅 활동을 하였다. 

우리들의 시시콜콜한 마케팅은 거의 3달 가까이 이어졌고 마침내 제 갈 길로 보내주었다. 장년의 두 남자가 책 몇 권 팔겠다고 머리를 짜내고 이것저것 안구에 습기가 찰 만한 생계형 영업을 한 것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대형출판사와는 나눌 수 없는 기억이기도 하다. ‘1인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즐거움’을 선사한 <수집의 즐거움>은 내가 낸 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다. 

속옷회사와 협업한 한정판 콜라의 사진을 사용한 표지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야하기도 하다. 남자들은 사실 여자들의 나체보다는 속옷을 입은 모습을 더 야하게 느낀다. 얼마나 야한가? 얼핏 보면 그냥 콜라병 사진일 뿐이지만 자세히 보면 섹시한 여자 팬티로 보이니까 말이다. 은근히 야한 <수집의 즐거움>의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나와 동고동락했던 출판사 사장은 서점에 깔린 몇 권 되지 않은 것만 제외하고 출판사에 남아 있던 10권의 <수집의 즐거움>을 보내주었다. 

이건 마치 집 나간 자식의 유품을 받은 듯한 슬픔이 느껴졌다. 명색이 희귀본 수집가인 내가 내 책을 수집하게 되었고, 절판본이 새 책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내 책이 절판되었다. 집필하면서 만났던 여러 수집가의 추억들, 책을 팔겠다고 한 온갖 잡다한 마케팅은 이 책이 절판되더라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해당 물체가 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끝났다.

<아주 특별한 독서>는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낸다고 한다. 작가로서 품 안의 자식을 무덤에 묻는 것보다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물가로 향하는 어린아이가 걱정되는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간신히 초판을 다 팔았는데 또다시 위험한 숲으로 향하는 출판사를 말리고 싶었다.

출판사의 의지가 강하니 말릴 도리는 없었다. 초판 교정을 다시 보는데 글쓰기 실력 향상을 원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무수히 등장하는 “나는”이라는 말과 접속사만 지워도 당신의 글은 한 단계 위로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교정을 보고 제목도 새로 정했다.

내가 5분 만에 정한 “북 소믈리에가 권하는 맛있는 책”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수집의 즐거움>'에는작별 인사를 <북 소믈리에가 권하는 맛있는책>'에는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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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07-10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책도 이제 슬슬 내심이 ㅎㅎ

박균호 2019-07-10 09:06   좋아요 1 | URL
네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ㅎ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stella.K 2019-07-10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은근 자랑이신데요?ㅎㅎ
저는 제 책이 팔리고 있는지 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구요.ㅠ
<오래된 새책>은 정말 좋은 책이죠.
아마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을 알아보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그때 이후 책을 못 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보다 소심하여...ㅠㅋ

박균호 2019-07-10 14:02   좋아요 0 | URL
초판 발행 부수가 얼마 안되서 자랑거리는 아니랍니다.^^
졸저를 좋게 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안 팔리는 책을 계속 내고 있지만 계약이 2건이나 생겼네요.
아무래도 <출판계약 따내는 방법>을 집필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것도 자랑으로 생각하시려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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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0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