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이해인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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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4년 내내 개신교 서클 'IVF'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는 것은 현재도 그렇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방과 후에 강의실에 모여 예배도 드리고, 초빙 간사의 '말씀'도 듣고, 교제의 시간까지 가진 4년 내내 나는 '믿는 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고향마을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짐을 싸들고 올라탄 기차 옆자리의 늙수그레한 학생이 '좋은 서클'이니 입학하거들랑 가입해보라는 충고를 듣고 덜컥 가입한 것이 개신교 서클이었고 '주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시절 내내 그 동아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당구와 술에 탐닉하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건전하고 배울 것이 많겠다라는 생각으로 무신론자이면서 무려 4년간 정기적인 예배와 끊임없는 도제식의 일대일 개신교 강의를 참아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럭저럭 독실한 개신교 서클과 '예수를 믿지 않는 불순한 회원'간의 불안한 항해는 항구를 눈앞에 두고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졸업을 앞둔 추운 겨울 새벽, 그 개신교써클 내에서 나의 훈육을 담당했던 동기 놈이 요란스럽게 기숙사 내 방 문을 열고 나를 깨웠다. Q. T에 가잔다. 그게 뭐냐고 되물었더니 Quiet Time이라는 새벽 기도 모임이라고. 나는 잠을 잘 때 코를 골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융통성 없는 동갑 훈육선생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나를 아직 어둠기가 채 가시지 않은 교정의 소나무 밑으로 소환해갔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날이 내가 기도를 인도할 차례란다. 그러니까 모태신앙으로 단련된 개신교 고수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채, 불순물처럼 섞여 있는 엉터리 개신교 흉내쟁이의 기도를 음미하겠다는 말이다. 그날 나의 기도 인도는 그네들에게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최악이었겠지만 그날의 기도는 나로서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 중 하나였다. 내가 정작 간절히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를 한 순간은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밥 먹듯이 하던 시절, 집 뒤뜰에 나가 교회에서 구경한 대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제발 내일 구구단 검사를 하지 않도록 해줍십사'라고 통성기도를 했었다. 물론 평소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답답한 일이 생겨서 갑자기 기도를 해서 미안하며, 만약 이번 기도를 들어주시면 앞으로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오늘 문득 이해인 수녀님의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을 읽다가 '환자의 기도'라는 시에 눈길이 멈춘다.




주님 

제가 아프기 전에는 

당신을 소홀히 하다가

이렇게 환자가 되어서야 

열심히 당신을 부르는 제 모습이 

비겁하고 부끄럽고 염치없어

숨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1967년 종신 서원 이후 수녀원 입회 50년을 맞은 이해인 수녀가 낸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이토록 인간적이며 소탈하다. 구구단을 외우는 코흘리개들이 하는 순진무구한 하느님에 대한 '양심'을 입회 50년을 맞은 일흔의 노 수녀님의 시에서 만난 반가움이란 어찌 표현할까 모르겠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50년간 하느님을 모신 신앙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는 의지로도 읽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코흘리개들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노년까지 잃지 않는 이해인 수녀님의 꽃 같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2008년 암 발병 이후 두 번째로 나온 시집이고, 시의 내용이 '투병 생활'에 관한 것들이 많지만 굳이 '투병 시집'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투병을 다룬 시가 많지만 우울하지 않으며, 태어나고 자라는 이야기보다는 늙고 죽어가는 사연이 많지만 절망적이지도 체념적이지 않다.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의지하지만 주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돋보인다. 그래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와 산문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는 촛불이고 허전한 공간을 향기로 채워주는 꽃이다. 그래서 나는 '투병 시집'이 아니고 '동백꽃 시집'으로 부르고 싶다.


'꿈에 본 어머니'라는 시는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니에 대한 그림 움이 사무치게 느껴져서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지게 한다.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난 날은 

꿈에서도 행복하여 

깨어나기 싫어


생전보다 

더 통통하고 동그란 모습으로 

은은한 웃음 머금고

딸을 축복하는 엄마의 모습



12년 전 나의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가 눈에 선하다. 눈을 감고 의식이 없는 어머니 곁에서 꾸벅꾸벅 조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엄마'라고 외마디를 내셨다. 그제야 나는 나의 어머니도 몸서리치도록 그리운 누군가의 '딸'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단하디 고단했던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보고 싶었던 사람은 어머니의 '엄마'였구나.


몹쓸 병을 얻어 이년 전 세상을 뜬 누이의 마지막 모습도 눈에 그려진다. 갑잡스러운 쇼크로 얼굴이 퉁퉁부어서 힘겹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데, 깊은 잠보다 더 깊은 의식불명의 상태라는데, 미처 뜨여지지 않는 눈으로 뭔가를 찾는 의지가 역력했다. "지금 엄마를 찾는 거지? 엄마 보고 싶은 거지?"라고 묻는데 누이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의 어머니와 누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엄마의 모습은 "은은한 웃음 머금고 딸을 축복하는"모습이었을 터이다. 


그렇게 누이를 보내고 홀로 화장터의 뜨거운 화구에 들어갔을 때 우리 가족은 자동차 안에서 추위를 달랬었다. 이해인 수녀님은 당신도 암과 싸우면서도, 수녀원의 동료 수녀님과 친구를 떠나보내면서 가족보다 더 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가령 '떠난 벗에게'라는 시가 그렇다.




친구야 얼마나 쉬고 싶었으면

흔적도 없이 그렇게 부서져

하얀 가루가 되었느냐?

네 어여쁜 몸이

불가마 속에서 타오를 적에

겁이 많은 너는 얼마나 뜨거웠느냐?

혼자만 갑갑한 곳에 갇히어

얼마나 외로웠느냐?



사람에 대한 사랑이 기초하지 않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무의미하고 폭력적이다. 아픈 것을, 슬픈 것을 애써 신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도 공감하기 힘들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모든 평범한 사람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 수녀님을 하느님의 곁으로 더 향하는 징검다리가 되었음을 알겠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100편과 생활 이야기 100편이 담긴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의 넘치는 사랑을 감당키 어려워 '사랑받는 것도 힘든 일이야'라는 탄식을 자아내는 수녀님은 사실 매서운 추위에서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동백꽃처럼 사람을 사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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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희귀본을 수집하는 재미로 살았던 때의 이야기다. 거의 3년을 찾아 헤매던 희귀본을 손에 넣었다. 감격에 겨워서 내게 그 책을 양도한 판매자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신영복 선생의 《엽서》 이야기가 나왔다. 《엽서》는 희귀본 수집 업계에서 수집가로서의 신분증과 같은 책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수집가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책이란 뜻이겠다. 


그런데 A는 《엽서》가 반드시 재출간이 될 것이며 자신은 그때 구매할 것이고 절대로 비싼 값에 절판된 구판을 사지 않겠단다. 덧붙여서 책이란 게 ‘텍스트’만 확보해서 읽으면 되지 비싼 값에 절판된 판형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당시만 해도 E-BOOK이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나도 격하게 동의를 했고, 재출간이 되면 사서 읽으면 되지 비싼 값에 구판을 사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독서의 본질에서 벗어난 그런 저급한 수집놀이도 하지 않을 것이며, 희귀본이라고 해서 얼토당토않은 비싼 가격에 사지도 않고 오직 책만 열심히 읽겠다는 서로의 신념을 치하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며칠 뒤에 개인 간 헌책 거래 사이트에 신영복 선생의 《엽서》가 판매 리스트에 올라왔다. 가격은 대략 7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예약 댓글을 남기느라 손가락이 얽히고설켰는데 결국 1순위가 되진 못했다. 물론 그 책을 사겠다고 야밤에 남긴 예약 댓글의 행렬 속에서 A의 이름과 연락처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나보다 좀 더 절박했는지 자정이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같은 서울이니 당장 달려가겠다고 써놓았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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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부친인 김 아무개 씨는 소작농의 자식으로서 온갖 고생은 다 겪었다. 김 아무개 씨의 부친은 마을에서 처음으로 단발령을 받아들여서 상투 대신 성인 남자의 보편적인 헤어스타일인 하이칼라를 선보일 정도로 신문명에 관심이 많았지만 타고난 가난은 어쩌지 못하고 김 아무개 씨에게 가난을 대물림했다.


김 아무개 씨는 정규 교육은 거의 못 받고 온갖 농사일에 시달렸는데 소년 시절부터 마을의 대소사에 부친 대신 동원되었다. 마을의 온갖 대소 사중에서 그가 가장 힘겨워한 일은 상여 매기였다. 어른들과 키가 맞지 않아서 어떨 땐 상여를 지탱하는 끈이 어깨의 허공으로 다녔지만 또 어떨 땐 상여의 무게가 그의 가녀린 어깨로 집중되어 땅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 신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상여를 끈으로 매고 온갖 험난한 길을 온몸으로 버텨야 하는 상여꾼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여 소리꾼은 맨몸에 설렁설렁 걷기만 할 뿐 그 어떠한 힘을 쓰지 않았다. 상여 소리라는 것이 두고두고 쓰지, 변하거나 망자에 따라서 다르게 할 필요가 없으니 한 번만 익혀서 소리꾼이 된다면 평생 편하게 상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흥이 나면 상여에 올라타고 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 뿐더러, 어느 순간 상여를 멈추게 하고 상주들로부터 절도 받고, 망자의 노잣돈이라는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것 역시 소리꾼의 몫이었다. 김 아무개 씨는 소리꾼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상여소리를 배우려고 했지만 그 동네의 소리꾼은 그가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는지 가르쳐달라는 소리는 가르쳐주지 않고 버럭 화만 내면서 김 아무개 씨를 쫓아낼 뿐이었다.


김 아무개 씨는 잠시 낙심을 했지만 다른 동네에도 소리꾼이 있겠다 싶어서 무작정 길을 나섰다. 인근의 여러 마을을 헤맨 끝에 그는 마침내 소리를 가르쳐주겠다는 스승을 만났다. 그렇지 않아도 궁색한 살림에서 훔친 콩 두어 되로 수업료를 지불했다.


본래 목청이 좋고 상여소리에 대한 동기 부여가 남달랐던 김 아무개 씨는 상여꾼들과 상주들을 애달프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상여 소리를 갖추었다.

김 아무개 씨가 특별히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수십 년간 상여 소리꾼 노릇을 한 할배가 바람을 맞아서 유명을 달리했고 김 아무개 씨는 냉큼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근에서 최연소 상여소리꾼에 취임한 그는 그로부터 근 50년간 무수한 망자를 구성진 목소리로 달래 저승길로 데려다주었다. 


그 무수한 망자 중에는 나의 조부모와 아버지도 포함되었다. 그의 상여 소리는 마치 망자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는 나의 할아버지가 되었고 할머니도 되었으며 나의 아버지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려주었다.

김 아무개 씨는 무수한 망자를 음택으로 모셨지만 정작 마을에서는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그가 마침내 유명을 달리했을 때 그의 상여를 든 이들은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가 힘겨워 보이는 열댓 명의 노인뿐이었다.


문상을 온 김 아무개 씨의 아들의 친구들이 대신 상여꾼이 되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장지가 김 아무개 씨의 집에서 멀지 않은 나지막한 산 아래였는데 불행하게도 김 아무개 씨가 반백년 동안 상여소리꾼 노릇을 할 때 그의 자리를 탐내는 젊은이가 전혀 없었고 김 아무개 씨의 아들은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에 타동네서 소리꾼을 초빙할 여유도, 의도도 없었다. 


김 아무개 씨가 망자들을 모시고 다닌 마을 골목골목을 거쳐서 마침내 장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승길을 위로한 것은 상여 귀퉁이에 매달린 일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녹음된 소리였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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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10년 전의 그나마 순수했던 디씨인사이드 ‘도서갤러리’를 먼저 이야기할지, 아니면 적어도 내게는 북스피어출판사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기억되는 <아발론 연대기>를 우선해서 이야기해야 할지 , 그도 아니면 지독한 난독증에 시달리던 지난 한 달간을 제일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니까 대략 10년 전 당시까지만 해도 디씨인사이드의 도서갤러리는 서로 도타운 정을 나누던 따뜻한 도서 커뮤니티였다. 오순도순 책에 대한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는 따뜻한 공간이었고 책에 대한 고수도 상당히 많았다. 우리가 책에 대해서 티격태격하거나, 도저히 해결 못하는 궁금증이 생겼을 때 , 불쑥 나타나 위기에 빠진 중생들을 현란한 책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를 열광케 한 gksrud이란 유저가 그 대표적 인물.


그러니까 2006년 조용하던 도갤이 떠들썩할만한 빅뉴스가 떴는데 기존에 <아서왕 이야기>라고 알고 있던 대작이 <아발론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새로 나온다는 소식. 아서왕의 일대기를 켈트신화를 바탕으로 완성한 판타지 소설이다. 이 8권으로 구성된 이 대작을 ‘아웃사이더’라는 출판사가 무리를 해가면서 겨우 겨우 4권까지 내다가 결국 두 손을 들고 폐업을 해버렸다.


당시 아웃사이더의 직원이었던 김홍민과 직원 몇 몇은 의기투합하여 <북스피어>라를 회사를 차리고 그 대업을 계속 이어가는 패기를 발휘했다. 외부에서 투자를 받는 한편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결국 <아발론 연대기>로 이름을 바꾼 8권 전집을 완전히 발간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망한 출판사가 완성하지 못한 대업을 직원들이 회사를 새로 차려서 완성한 희귀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도서갤 유저들은 화려한 장정과, 멋진 표지 디자인을 가진 완성된 <아발론 연대기>에 열광했고 모두의 로망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북스피어>라는 출판사는 내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었다. 개인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그리고 과학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아발론 연대기>는 시대를 앞서가는 화려한 디자인과 장정을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새로 설립된 <북스피어>가 책임이 질 이유가 없는 <아웃사이더>판 <아서왕 이야기 1권~4권>을 구매한 독자를 위해서 새로 나온 <북스피어>판으로 보상업그레이드 해주는 보기 드문 미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북스피어>의 대표인 김홍민씨가 교정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 이벤트지 실상은 독자를 공짜로 부려먹기’위해서 기획한 ‘독자 교정자 제도’에도 열광을 했고 실제로 많은 도서갤의 유저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스스로 무급 교정 일을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제 8권 말미에 이른바 ‘독자 교정자 제도’에 참여했던 이름을 기재해준 꼼꼼함과 교정에 참여한 답례로 <아발론 연대기>를 선물한 배려는 <북스피어>를 여느 다른 출판사와는 차별되게 인식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출판계의 인사들은 자주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과 하소연을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면 그에 대항해서 더 재미난 책을 만들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을 비롯한 책이 그나마 잘 나갔던 시절에 없던 경쟁자와 맞서서 싸울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며 어찌되었던 살아남기 위해서 책을 더욱 매력적이고 재미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지난 한 달간 나는 소설 한 권을 항상 지니고 다녔지만 당체 읽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복잡한 사정도 있었거니와 어쩐지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스마트 폰과 인터넷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라는 책을 발견했고 이 책의 저자가 10년 전 우리를 열광케 한 <북스피어>출판사의 사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과학소설을 즐기지 않아서 <아발론 연대기>도 감탄과 경외만 했을 뿐 그 비싼 가격에 대한 부담도 되고 해서 사지도 못한 처지였다. 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때 그’ <북스피어>가 여태껏 살아 있다는 게 신기했고 반가웠다.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던 게다. 그러나 10년 전 출현할 때부터 이미 범상치 않은 출판사와 그 사장이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출판인생과 주변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니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주문을 했고 받자마자, 들고 다니던 소설책을 집어 던지고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나절 만에 다 읽어내려갔다. 역시 기대대로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내용이 가득했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보다 더 재미났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책이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재미’를 중요한 가치로 인정해야만 한다. ‘재미’라는 것이 굳이 ‘고급지지 못한’것과 동일선상에서 볼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나는 늘 아쉬웠던 것이 정작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문것이었다. 그래서 ‘열린책들’의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를 보석처럼 아끼는데 실로 오래간만에 책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를 만나니 감개무량하다. 이 책에서 ‘야매 출판인’ 김홍민은 매우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계층에게 자신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비전을 이야기 한다.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가 대형출판사 사장의 진솔한 출판이야기라면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책과 관련된 모든 계층을 향해서 자신의 ‘험난한’경험을 통해서 얻은 ‘영업비밀’을 과감없이 ‘재미나게’ 말하는 책이다. 


특히 ‘버려지는 띠지에 숨겨 놓은 것’, ‘독자들이 빌려준 5000만 원’ 이야기 등과 같은 북스피어만의 독특한 마케팅방법뿐만 아니라 심지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반드시 4의 배수인 이유와 판권 페이지에 대한 설명까지 포함하는 책과 관련된 스프레이식 지식의 향연를 자랑한다.

출판이나 독자들을 위한 제언뿐만 아니라 과거 편집자로 일하는 재미난 일화도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그렇다.


모 잡지사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첫 직장이었고, 나는 경력이 전무한 편집자였다. 모든 일에 미숙하던 시절,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필자들의 원고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엄연히 마감 시한이 정해져 있건만 열에 두셋은 당연하다는 듯 시한을 넘기기 일쑤였다. 대개 유명한 필자들이라 나로서는 감히 독촉 전화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집부로 전화가 한 통 왔다.


 상당히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체면을 좀 지켜드리자는 차원에서 이분의 이름은 생략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하는데, 글쎄 이러시는 거다. "홍민 씨. 홍민 씨는 왜 나한테 독촉 전화를 안 해? 나는 독촉 전화를 자꾸 받아야 글이 써지는데 당신이 가만히 있으니까 한 글자도 안 써지잖아. 앞으로는 나를 좀 못살게 굴어줘. 제발. 내가 전화하지 말라고 해도 무시하고 전화해야 돼."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사고방식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홍민씨가 북스피어 독자 잔혹사라고 부르는 독자 교정이벤트는 사실 독자들에게는

환장하게 참가하고싶었던 재미난 기회였다. 2005년 당시 <아발론 연대기>교정작업에 ‘운이 좋게’ 참가했던 도갤러 <후훗...>씨의 참가 소감을 읽어 보자. 물론 10년전에 작성된 글이다.


<교정 작업 체험기>

제목대로 교정작업 다녀왔습니다. (휘잉~~~) 아마 제가 가장 마지막에 교정보는 사람이 될 것 같더군요. 이번에 이 책을 내는 '북스피어'라는 출판사, 범우사 바로 '위'에 위치해 있더라구요. 서울 안이고 지하철 역에서 가까이 있기는 한데... 찾아가기에는 좀 까다로웠습니다. 


제가 맡은 부분은 7권이었습니다. 8권 전질에 일곱번째라. 그닥 큰 임팩트가 가는 부분은 아니었는데, '성배'와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읽고 교정할 부분 찾아 기록하고, 물어보고... 정확히 한답시고 국어사전, 옥스포드 영영사전 등 이것저것 꺼내들고 들이대보기는 했는데... 휴우... 완성된 책이 아니라 출력된 원고로 하는 것이라 몰입도가 떨어져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찾기가 엄한 오류 몇 개를 잡으니 뿌듯함까지 느껴지는게... 한 권 분량 잡고 아홉 시간 가까이 걸리더군요.


 (두 번 보느라) 책은... (스포일러는 생략하고...) 상당히 잘 나왔더군요. 일단 표지야... 짤방 보시는 대로 상당히 럭셔리하고... 잘 모르실 '내용' 부분으로 넘어가자면... 울나라 번역본의 가장 큰 문제가 쓸데없이 문장이 길어지는 '만연체'와 번역자의 '문어적 어투' (~한 바이다.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쓸데없이 어려운 '한자어 차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원전이 있느니 만큼 중반부 이후 조금 늘어지는 듯한 인상은 있었습니다만, 문장이 정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최소한 '반지의 제왕' 류의 번역으로 뒷통수 맞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문장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도 흐름이 유지될 정도로 짧게 배치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본문 중에도 문어체 사용을 줄이고 구어체를 구사하여 처음 접하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겠더군요. 한자어는, 정말로 대용할 것이 없는 몇몇 단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쉬운 한자어로 바꾸어 표현하였구요. 


'역사물'이라 은근히 긴장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혀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야, '로마제국 쇠망사' 읽고 나서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일반 판타지나 무협 소설 읽을 정도의 reading skill만 있으면 수월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자의 햏력이 상당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전과 1:1 비교를 해보고 싶을 정도로. gksrud님께서 이미 이전 글에 (목요일) 리뷰를 하셨지만, 각주가 정말로 참신하였습니다. 


원전의 각주에 역자주를 첨가한 형태였는데, 심리학 부분까지 건드린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고무적이더군요. 교정 보면서도 '이런 부분이 참 재미있다'는 식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이미 '아더왕 이야기'의 형태로 이전에 읽어보신 분도 각주 하나만 보고서도 따로 구매할 만 하겠더군요. 내용 중에도 많지는 않지만 삽화가 첨가되어 있습니다. 이런 글에다가 책의 장점만 주구장창 늘어놓으면 괜히 '~빠' 다, 뭐다 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기는 한데...  사실, 그닥 큰 단점은 보이지 않더군요.


 '대충대충' 나오는 요즘 책들에 비하자면 노력의 흔적도 보이고, 그닥 좋지는 않은 환경인데도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주인공급(?) 기사의 수가 많다 보니 이름 외우기가 아햏햏하다는 점과 주인공따라 사건이 왔다갔다 해서 조금 정신없던 점, 중반부 이후에 지루하게 전개되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건 원전에서 먼저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살포시 무시하고요. (아, 혹여나 하는 이야기지만, 제가 보기에는 참  좋았다는 겁니다.


 주관 뚜렷하신(?) 도갤햏자님들께서 훗날 책 접하고서 '나 후훗이한테 낚시 당해써' '후훗, 왜 그진말해써' 라고 하면 저, 자방합니다. ㅡ.-;;;) 그런데, 아더왕 이야기에 상당한 양의 기독교적 색채가 입혀져 있었습니다. 원전을 미리 접하지 못한 터라 몰랐는데- 제가 맡은 부분이 성배와 관련한 부분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천축국에 불경 얻으러 가는 손오공 일행의 모험담같은 느낌이 들어버리니... 권선징악적인 내용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문맥 속에 숨겨진 (역자주에 자세한 설명이 첨가되어 알게 되었지만)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거세(ㅡ.-;;;)하는 부분에선 섬찟함이 살짜쿵 느껴지더군요. 


(본문에서는 '넓적다리를 찔렸다'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적 사관에 의해 윤색된 것이라고 하네요. 에구... 스포했다 ㅡ.-;;;) 이번 도서가 이 출판사의 첫 사업이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이벤트를 계획하고 계시더군요. 이것도 스포일 수 있으므로 말씀드릴 수는 없구요. 아이디어가 참신했습니다. 완성본은 12월 12일 경에 일반 출시될 모양입니다. 권당 가격은 잠정 만 천원. 조금 비싼 감이 있기도 하지만 무려 권당 400페이지 이상인데다 소장가치로 따지자면 저 가격이 과히 비싸겠다 생각이 되지는 않더군요. 


시집 한권에도 칠천원씩 하니... 아, 첫 물량 방출 때 할인계획 있다네요. 찜하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그리고 기존에 발행되었던 '아더왕 이야기' 소장하신 분은 교환 및 별도 할인 계획도 있다고 하니...충전 200% 요 사업이 잘 되면 이후 그걸 종잣돈으로 SF 등으로 출판 범주를 확대할 계획도 가지고 계신 것 같더군요. 에셉 팬이라면 제목을 알만한 마이너 소설도 재발간 계획 있다니까... 기대충만. 마지막으로... 저는 먼저 나왔는데,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실 관계자 분, 수고하시라는 말도 못해드렸군요. 혹여, 이 글 보시면 수고하시라는 말 꼬옥 전합니다.   


세줄 요약... 1. 아발론 연대기 교정작업 갔었다. 2. 표지깔쌈. 내용양호, 각주왔다, 삽화뽀샤시, 이벤기대, 12월 12일 발간예정 3. 아더왕과 엑스칼리버에 목마른자, 질러라... 지름신은 이럴 때 도래하는 거시다. 문제제기!!! '할게요' 가 맞나요, '할께요'가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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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6-20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더왕이야기를 좋아해서 <아발론연대기>박스세트를 구입했던 일인인데요,,
이 책이 북스피어에서 나왔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ㅎㅎ
책장님 페이퍼 읽고 찾아보니 8권 말미에 도와주신 분들이라고 나와있는데,
교정부분에 13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네요.
어느분이 후훗님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사와 학생들이 많구요...흑묘라는 분도 있군요
책은 언제 사놓았는지 기억이 까마득한데....아직 한권도 못 읽었습니다..ㅠㅠ..
뭐 언젠가 볼 날이 있겠지요...

페이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박균호 2015-06-20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반갑습니다. 흑묘라는 분은 당시 고려대 심리학과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뭘 하고 지내는지 참궁금하네요...
 

직장인들의 습관은 참으로 놀랍다. 1년 중 대부분을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하다가 최근 얼마간 한 시간 이른 시간에 퇴근을 하는데 많지도 않은 잉여 시간이 낯설고 어색하다. 단지 한 시간의 여유를 주체를 못하다가 결국 미용실을 들리기로 했다. 물론 나는 깔끔함과 멋스러움을 추구하는 도시남자답게 아무 미용실이나 다니지 않는다. 소정의 엄격한 선정 기준에 의거해서 미용실을 선택한다. 내가 미용실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떤 경우에도 기다릴 필요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 상가에는 총 세 곳의 미용실이 있는데 나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곳은 2곳에 불과하다. 탈락된 한 곳은 다른 미용실보다 우리 집에서 대략 5미터와 10미터 정도 더 가깝다는 이유로 최우선 협상대상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1분 1초를 계획하고, 시간을 정복한 남자인 나를 무려 15분이나 둥그런 파마 모자를 쓴 아줌마들 틈바구니 속에서 방치한 그날로 여지없이 퇴출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머지 두 곳의 미용실을 번갈아 가면서 이용했다. 예산을 균등하게 집행함으로서 지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상가 2층에 자리 잡은 미용실이 나의 거래처에서 제외되는 비운을 맞았는데 백수로 보이는 남편이 러닝셔츠 바람에다 담배를 문 채로 나의 머리를 감겨주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우리 집에서 가장 멀어서 무려 25m나떨어진 미용실을 항상 이용했다. 그런데 지난 대선 당일 저녁 평소처럼 미용실 문을 열고 일순간의 지체도 없이 거울 앞의 의자에 앉았는데 그 아주머니 미용사는 오랜 고객을 영접할 생각도 않고 친구로 보이는 다른 아줌마와 설전을 벌인다.


친구 아주머니가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아무개 후보를 찍었다고 하니까 ‘그럼 전라도에 가서 살아라. 라고 호통을 친다.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그렇게 단순하고 불합리한 이유를 대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혹여 헤어컷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그럼 전라도에 있는 미용실에 가보든가’라고 혼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그곳도 발길을 끊었고 결국 애초에 나를 15분간이나 소파에 방치했던 미용실을 다시 찾아야 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예쁜 미용실 아주머니와 보조비용사는 무려 2년이나 외도를 한 나를 반갑게 받아들였다. 오늘도 그 미용실을 갔는데 원장아주머니는 포도를 한 송이 거의 다 먹어가는 찰나였고, 보조 미용사 아가씨는 청소를 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텔레비전의 막장드라마에 마음이 뺏긴 상태였다. 의외로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그 분들은 굉장히 심심해했다는 게 확실하다. 어린 시절 나를 서로 가지고 놀겠다고 다투던 누나들의 눈초리로 두 미용사가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세 군데의 미용실 중에서 유일하게 보조 미용사를 보유한 장점을 살려 본격적으로 커트를 하기 전 세팅 작업에만 5분이 소요되었다. 원장 아주머니도 심상치 않았다. 어른이 된 이후 단 한 번도 헤어스타일이 바뀐 적이 없는 나를 두고 어떤 스타일로 자를 것인지, 구레나룻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뒤통수 머리는 얼마만큼 길게 자를 것인지에 관한 매우 세부적인 오더를 내려주기를 요구했다. 물론 나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적당히 잘라주세요.” 


나의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적중해서 원장 아주머니는 일생일대의 대작품을 만들어 내기로 작정한 분 같았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자기 통제하에 두셨고 가위질은 0.0001미리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기세다. 아마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만들 때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원장 아주머니가 얼마나 나의 헤어스타일에 집중을 했는지는 뜬금없는 동네 아줌마가 방문한 순간에 알 수 있었는데 인사를 건네는 순간 원장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면서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오느냐고 화를 내신다. 아니, 화장실 문도 아니고 정문은 묵직한 유리문이고 뒷문은 레이스가 달려 있는 개방된 상태인데 뭘 어떻게 노크를 하라는 말인가? 그리고 언제부터 미용실을 들어갈 때 노크를 하라는 소셜 에티켓이 형성되었단 말인가?


그 동네 아주머니는 아티스트의 미칠 듯한 예술혼을 불사르는 순간에 몰입을 방해한 괘씸죄에 해당된 것이다. 나는 원장아주머니의 미칠 듯한 몰입을 꾸벅꾸벅 졸음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방해하는 누를 끼치기 싫어서 단한 번도 눈을 감지도, 고개를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보조미용사 아가씨도 우리의 투혼에 동조해 원장 아주머니가 잘라낸 나의 머리카락이 단 일초도 내 이마와 목에 머무르지 않도록 스펀지를 열심히 이리저리 놀렸다.


마침내 우리의 예술 작품이 탄생했고 온몸의 기를 모두 소진한 원장 아주머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보조 아가씨는 완성된 예술작품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하여 나를 의자에 앉힌 채로 거품을 머리에 마구 풀더니 두피 마사지를 시작했다. 순간 나는 이렇게 럭셔리한 서비스는 주머니에 든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해결이 안 될 것 같은 걱정에 사로잡혔다.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내에게 한도가 넉넉한 신용카드나 집안의 비상금을 모조리 긁어오도록 지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무려 5분여간의 머리 감김이 진행되었고 머리 건조도 어디 시골동네의 허접한 미용실처럼 드라이기로 대충 볏짚 말리듯이 허투로 하지 않았다. 원장아주머니의 작품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드라이기를 예술적으로 다루었다. 머리가 건조되었다고 예술작품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곳은 허접한 동네 미용실이 아니다. 보조미용사 아가씨는 기계의 솜씨는 믿지 못하겠다며 맨손으로 나의 헤어스타일을 빚기 시작했다. 마치 도공이 도자기를 정성껏 매만지듯이 보조아가씨는 한 올 한 올의 방향과 휘어짐의 정도를 결정하였고 기존의 촌스러운 가르마가 아닌 앞으로 쭉쭉 내려 뻗는 청담동 스타일을 완성시키고야 말았다. 공장에서 기계로 대충 찍어낸 스타일이 아니고 무려 ‘수제’ 헤어스타일이다. 


다행이 우리 집에서 돈뭉치를 들고 올 필요가 없었다. 원장아주머니는 내 머리에 담긴 예술혼은 돈으로 따질 수 없다며 평소대로 단돈 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차도남 스타일의 세련된 예술작품을 갖춘 나는 10미터를 활보하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시청 중이었는데 나를 힐끔 보더니 “집에 다 와 간다면서 어딜 다녀오기에 이렇게 늦었어”라고 한마디 한 다음 이내 돌아눕는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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