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습관은 참으로 놀랍다. 1년 중 대부분을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하다가 최근 얼마간 한 시간 이른 시간에 퇴근을 하는데 많지도 않은 잉여 시간이 낯설고 어색하다. 단지 한 시간의 여유를 주체를 못하다가 결국 미용실을 들리기로 했다. 물론 나는 깔끔함과 멋스러움을 추구하는 도시남자답게 아무 미용실이나 다니지 않는다. 소정의 엄격한 선정 기준에 의거해서 미용실을 선택한다. 내가 미용실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떤 경우에도 기다릴 필요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 상가에는 총 세 곳의 미용실이 있는데 나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곳은 2곳에 불과하다. 탈락된 한 곳은 다른 미용실보다 우리 집에서 대략 5미터와 10미터 정도 더 가깝다는 이유로 최우선 협상대상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1분 1초를 계획하고, 시간을 정복한 남자인 나를 무려 15분이나 둥그런 파마 모자를 쓴 아줌마들 틈바구니 속에서 방치한 그날로 여지없이 퇴출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머지 두 곳의 미용실을 번갈아 가면서 이용했다. 예산을 균등하게 집행함으로서 지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상가 2층에 자리 잡은 미용실이 나의 거래처에서 제외되는 비운을 맞았는데 백수로 보이는 남편이 러닝셔츠 바람에다 담배를 문 채로 나의 머리를 감겨주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우리 집에서 가장 멀어서 무려 25m나떨어진 미용실을 항상 이용했다. 그런데 지난 대선 당일 저녁 평소처럼 미용실 문을 열고 일순간의 지체도 없이 거울 앞의 의자에 앉았는데 그 아주머니 미용사는 오랜 고객을 영접할 생각도 않고 친구로 보이는 다른 아줌마와 설전을 벌인다.


친구 아주머니가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아무개 후보를 찍었다고 하니까 ‘그럼 전라도에 가서 살아라. 라고 호통을 친다.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그렇게 단순하고 불합리한 이유를 대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혹여 헤어컷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그럼 전라도에 있는 미용실에 가보든가’라고 혼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그곳도 발길을 끊었고 결국 애초에 나를 15분간이나 소파에 방치했던 미용실을 다시 찾아야 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예쁜 미용실 아주머니와 보조비용사는 무려 2년이나 외도를 한 나를 반갑게 받아들였다. 오늘도 그 미용실을 갔는데 원장아주머니는 포도를 한 송이 거의 다 먹어가는 찰나였고, 보조 미용사 아가씨는 청소를 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텔레비전의 막장드라마에 마음이 뺏긴 상태였다. 의외로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그 분들은 굉장히 심심해했다는 게 확실하다. 어린 시절 나를 서로 가지고 놀겠다고 다투던 누나들의 눈초리로 두 미용사가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세 군데의 미용실 중에서 유일하게 보조 미용사를 보유한 장점을 살려 본격적으로 커트를 하기 전 세팅 작업에만 5분이 소요되었다. 원장 아주머니도 심상치 않았다. 어른이 된 이후 단 한 번도 헤어스타일이 바뀐 적이 없는 나를 두고 어떤 스타일로 자를 것인지, 구레나룻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뒤통수 머리는 얼마만큼 길게 자를 것인지에 관한 매우 세부적인 오더를 내려주기를 요구했다. 물론 나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적당히 잘라주세요.” 


나의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적중해서 원장 아주머니는 일생일대의 대작품을 만들어 내기로 작정한 분 같았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자기 통제하에 두셨고 가위질은 0.0001미리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기세다. 아마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만들 때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원장 아주머니가 얼마나 나의 헤어스타일에 집중을 했는지는 뜬금없는 동네 아줌마가 방문한 순간에 알 수 있었는데 인사를 건네는 순간 원장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면서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오느냐고 화를 내신다. 아니, 화장실 문도 아니고 정문은 묵직한 유리문이고 뒷문은 레이스가 달려 있는 개방된 상태인데 뭘 어떻게 노크를 하라는 말인가? 그리고 언제부터 미용실을 들어갈 때 노크를 하라는 소셜 에티켓이 형성되었단 말인가?


그 동네 아주머니는 아티스트의 미칠 듯한 예술혼을 불사르는 순간에 몰입을 방해한 괘씸죄에 해당된 것이다. 나는 원장아주머니의 미칠 듯한 몰입을 꾸벅꾸벅 졸음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방해하는 누를 끼치기 싫어서 단한 번도 눈을 감지도, 고개를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보조미용사 아가씨도 우리의 투혼에 동조해 원장 아주머니가 잘라낸 나의 머리카락이 단 일초도 내 이마와 목에 머무르지 않도록 스펀지를 열심히 이리저리 놀렸다.


마침내 우리의 예술 작품이 탄생했고 온몸의 기를 모두 소진한 원장 아주머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보조 아가씨는 완성된 예술작품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하여 나를 의자에 앉힌 채로 거품을 머리에 마구 풀더니 두피 마사지를 시작했다. 순간 나는 이렇게 럭셔리한 서비스는 주머니에 든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해결이 안 될 것 같은 걱정에 사로잡혔다.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내에게 한도가 넉넉한 신용카드나 집안의 비상금을 모조리 긁어오도록 지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무려 5분여간의 머리 감김이 진행되었고 머리 건조도 어디 시골동네의 허접한 미용실처럼 드라이기로 대충 볏짚 말리듯이 허투로 하지 않았다. 원장아주머니의 작품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드라이기를 예술적으로 다루었다. 머리가 건조되었다고 예술작품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곳은 허접한 동네 미용실이 아니다. 보조미용사 아가씨는 기계의 솜씨는 믿지 못하겠다며 맨손으로 나의 헤어스타일을 빚기 시작했다. 마치 도공이 도자기를 정성껏 매만지듯이 보조아가씨는 한 올 한 올의 방향과 휘어짐의 정도를 결정하였고 기존의 촌스러운 가르마가 아닌 앞으로 쭉쭉 내려 뻗는 청담동 스타일을 완성시키고야 말았다. 공장에서 기계로 대충 찍어낸 스타일이 아니고 무려 ‘수제’ 헤어스타일이다. 


다행이 우리 집에서 돈뭉치를 들고 올 필요가 없었다. 원장아주머니는 내 머리에 담긴 예술혼은 돈으로 따질 수 없다며 평소대로 단돈 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차도남 스타일의 세련된 예술작품을 갖춘 나는 10미터를 활보하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시청 중이었는데 나를 힐끔 보더니 “집에 다 와 간다면서 어딜 다녀오기에 이렇게 늦었어”라고 한마디 한 다음 이내 돌아눕는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