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인 나는 늘 학생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나는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에디슨의 격언을 귀에 박히도록 듣고 자란 세대다. 적어도 공부에서만큼은 이 격언이 우리 세대에서는 유효했다.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위치가 학생들의 학력과 연관이 높다. 


야구 팬들 사이에 ‘야잘잘’이란 말이 있다. ‘야구는 잘하는 선수가 잘한다’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대선수는 90% 이상이 타고나는 것이고 일부가 노력으로 발전된다는 것이 정설이고 주위를 둘러봐도 사실인듯하다. 


글쓰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름난 문필가의 부모 또한 문필가인 경우가 허다하다. 글쓰기 재주의 유전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너무 절망하지 마시라. 타고난 글재주가 없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기는 이르다.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주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한 권쯤은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굴곡이 많은 시대를 거친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이 책으로 낼 수 있을 만큼 사연이 많다고 여긴다. 문학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신춘문예의 경쟁률은 치열하며 글쓰기 강좌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내 경험에 비추어 우선 책을 내자면 ‘돈 버는 일’을 제외하고 뭔가에 몰입하는 삶을 10년쯤은 살아야 한다. 뭔가에 미쳐야 한다. 나의 경우는 헌책과 희귀본 수집에 몰입했다. 특정 분야에 몰입하다 보면 일반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다양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들이 책을 쓰는데 더 없이 좋은 소재가 된다.


나의 첫 책 <오래된 새 책>은 형편없는 글 솜씨와 완성도가 높지 않은 편집, 그리고 처음 책을 내는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언론사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책을 낸 지 열흘 만에 초판이 소진되었다. 다들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뭔가에 몰입해서 ‘이상한’ 경험을 하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호기심과 재미를 느낀다. 


책을 내자면 글 솜씨보다 ‘독특한 경험’이 우선이다.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으면 미진한 글 솜씨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국인이 어설프게 한국어를 말하더라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해서 이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지 글 솜씨가 아니다. 


글을 쓸 때도 다른 사람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독서 만담>을 읽고 재미난다는 독자가 많은데 나의 이런 문체는 사실 한 독자의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

3년 전 무심결에 어떤 글을 썼는데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지금까지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재미났어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 한마디로 나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생각하는 글의 코드를 알게 되었다. 내 글의 ‘정체성’을 댓글 한 줄로 정했다. 자신의 글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 SNS에 글을 게시해보라. 독자들의 반응을 알 수 있고 하다못해 틀린 맞춤법을 지적해주는 고마운 친구도 있다. 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꾸준히 보여주는 것은 글쓰기 선생을 모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만의 자아도취에 빠져서 ‘단군이래 최대 불황인 출판계를 부활시킬 불후의 명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쓰레기’로 취급받는 사태를 방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책을 쓰겠다고 원고지 1천 매를 단박에 채워나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소액을 저금하듯이 편의점의 포인트를 모으듯이 자신의 블로그나 SNS에 한 꼭지씩 올리는 것을 권한다. <독서 만담>의 원고도 그렇게 완성되었다.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전질로 한꺼번에 사면 기가 죽어서 읽기 힘들다. 서점에 갈 때마다 한 권씩 사서 읽는 것이 좋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블로그에 잡지에 연재하듯이 한두 편씩 공개해보자.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집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지식을 넓히기 위함이 아니다. 어휘력을 늘이기 위해서고, 자신의 기호에 맞는 표현법을 모방하기 위해서다. 소설가를 희망한다면 다른 사람의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법을 체득한다. 극적인 전개가 이루어지는 공식을 배운다. 


<독서 만담>은 책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내 서재가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올 수 없었다. 소개할만한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찾는 것보다는 고개를 한 번 돌려서 자신의 서재의 면면을 살펴보는 쪽이 편리하다. 훌륭한 서재는 책을 쓰는 연장이다. 책은 펜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서재와 경험으로 쓰는 것이다. 


맞춤법도 중요하다. 문서작성 프로그램의 맞춤법 기능을 믿지 마시라. 

부산대학교에서 개발한 '한국어 맞춤법/문법검사기를 이용해서 틀린 맞춤법을 상당 부분 걸러낸다. 이 사이트가 없었다면 아마 나의 편집자는 내 원고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것이다. 


꾸준히 글을 쓰고 SNS나 블로그에 연재를 하다 보면 분명 기회는 온다. 출판사는 늘 좋은 원고에 목말라 있다. 섣불리 출판사에 원고를 기고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자신만의 길을 걷다 보면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온다. 


글을 쓸 때 억지로 짜내서는 안 된다. 대가가 아닌 이상 억지로 짜낸 글은 독자들로부터도 외면 받는다. 단숨에 써나간 글이 독자들도 단숨에 읽힌다. 글이 안될 때는 산책도 좋고 차라리 넋 놓는 편이 낫다. 문학이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이지 ‘짜내는’ 것이 아니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머릿속으로 차분히, 꾸준히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구성을 해봐야 한다.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그때 펜을 들어야 한다.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이지 써야 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독서를 열심히 하고, 서재를 충분히 일궈놓으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 설비를 마친 것과 다름없다. 일상 속에서 자기가 쓸 원고를 늘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훌륭한 글감으로 다가온다. 


늘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낼 수 있도록 세밀한 눈을 가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순간’은 찾아온다. 깨어 있는 눈을 가진 사람 많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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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뵈 2017-02-17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ᆢ막 책 주문 했답니다~ ^^

박균호 2017-02-17 09:02   좋아요 1 | URL
네 모쪼록 즐겁게 읽으시길

물감 2017-02-1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읽었습니다!
대중이 좋아하는 코드를 감 잡는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ㅎㅎ

박균호 2017-02-17 22:25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7-02-1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만담, 잘 읽었습니다.
잡식성책장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박균호 2017-02-18 06:20   좋아요 1 | URL
네 제가 감사하지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순오기 2017-03-09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자기 인생에 책 한 권 쓰고 싶은 사람은 꼭 읽어봐야 될 책인데요!^^

2017-03-09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3-0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되새요

skysar77 2017-03-12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사람많이 가 아니고 사람만이

박균호 2017-03-12 14:16   좋아요 0 | URL
네 그렇네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