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를 업어서 키운 누나와 통화를 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2년에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2019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다. 내가 어머니를 병간호한 17년 동안 단 한 번도 4명의 누나에게 어머니에 관하여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나는 내가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와 어머니의 관계에서 기꺼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타자를 끼워 넣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17년 동안 내 생각을 실천할 만큼 소신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또 다른 사람을 그토록 배려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식으로서는 서열 5위에 불과한 내가 어머니가 치료받을 병원을 옮기고, 거처를 옮기고, 자잘한 수술을 받으면서도 누나들에게 상의도 하지 않았고 도와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버릇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딱 한 번 누나들에게 전화를 돌릴 적이 있었다. 요로염증 때문에 생긴 증상을 백혈병으로 오진한 의사가 곧 운명하실 테니 가족들에게 연락하시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어머니의 일을 누나들과 상의하지 않았을까. 왜 그랬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나를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백내장이 심해져 거의 실명에 이른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모시고 가서 중풍 환자는 수술 도중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수술을 꺼리는 의사를 붙잡고 통사정해서 수술했고 수술을 기다리는 3시간 동안 노심초사하면서도 누나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를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데 굳이 누나들에게 연락해서 슬픔을 배가시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본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 누나들이 새삼 고맙다. 형만 한 아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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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9-01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쉽지 않은 시절이셨게습니다. 그래도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의젓하게 버텨준 박균호님께 누님들도 고마워하셨을 것 같습니다.

박균호 2022-09-01 13:30   좋아요 1 | URL
음...그래도 어머니가 살아계셨을때가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감은빛 2022-09-02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책이 잘못된 주소(연서로16길 3)로 배송되었다는 연락이 왔어요. 주소를 잘못 적으신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적으셨는데 오배송 된 것인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가 바로 찾으러 가기 어려워서 오후 늦게나 찾을 수 있을텐데 그때까지 누가 가져가지 않고 잘 있어야 할텐데요.

박균호 2022-09-02 09:55   좋아요 0 | URL
아 주소를 잘 못 입력 했나 봐요 ㅠㅠ 죄송해요. 무사히 받으셔야 할텐데요

감은빛 2022-09-03 08:11   좋아요 1 | URL
어제 밤에 책 찾아왔어요. 다행히 아무도 안 건드렸더라구요. 잘 읽을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