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인터넷에서 주꾸미 양념 구이를 산 모양이다. 그걸 반찬 삼아 저녁을 먹으라는데 한 눈에도 매워 보였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허기 때문에 허겁지겁 집어 먹는데 주꾸미 한 마리를 먹을 때마다 대접으로 물을 들이켜야 숨을 쉴 수 있겠더라.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그래도 매운 중독 맛 때문에 꾸역꾸역 다 먹긴 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물을 한 주전자는 마셔야 했다.

아내는 놀랍게도 그 매운 주꾸미 양념구이를 열 봉지는 넘게 비축해두고 있었다. 역시 함양박씨 33대 종부다운 큰 손을 자랑한다. 물론 나는 그 폭탄 덩어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음날 역시 운동을 마치고 허겁지겁 배가 고파서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어제 그 주꾸미를 또 먹으려는지 그릇에 담아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내는 마치 흥이 잔뜩 오른 래퍼처럼 나에게 “이거 먹을래? 이거 하나도 안 매워”라고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순간 몸은 뱀을 만난 개구리처럼 파르르 떨며 거부를 했지만, 아내의 간절한 표정을 보니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먹을래? 에 대한 답변을 들을 의사가 전혀 없는 것처럼 ‘하나도 안 매워’라는 애원을 마침표도 없이 나에게 던졌기 때문이다.
아내의 그 불쌍한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고아들이 굶주림에 지쳐서 자신들을 데리고 가서 숙식만 제공하고 일을 시키는 어른들을 향해서 이렇게 구걸하는 장면 말이다. “제발요, 저는 하루에 한 끼 밖에 안 먹고요. 놀랄 만큼 적게 먹고 일을 잘해요”
독이 든 성배임을 알았지만, 묵묵히 아내가 건네준, 아내가 먹다가 지쳐서 건네준, 더 먹지는 못하지만 버리기엔 아까운, 그 주꾸미 그릇을 사약을 받는 선비의 심정으로 받았다. 그 쭈꾸미가 절대로 맵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다만 나는 보았다. 아내가 조금 전 주꾸미구이 비빔밥을 제조할 때 내가 고추장보다 더 무서워하는 ‘치즈’를 듬뿍 넣는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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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5-16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수라도 삶아서 넣어보세요 좀 덜 매울거예요 ㅎㅎ

박균호 2021-05-17 05:14   좋아요 0 | URL
네네 감사해요

바람돌이 2021-05-16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식을 인터넷으로 또는 홈쇼핑으로 주문하면 생기는 문제.... 전 다 못먹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매일 같은 것만 먹을 수는 없으니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잊어버리고 해서요.
그래도 사랑으로 한번 견뎌보시라고 하고싶군요. 결국 아내님이 혼자서 저걸 다 드시게 되면 아마 그 원한이 상당히 오래갈듯하니 말이죠. 언제든 가정의 평화가 더 중요한법이랍니다. ^^

박균호 2021-05-17 05: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확실히 좀 그렇더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