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이 아빠딸그림책 시리즈
이갑규 지음 / 한림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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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방방이로 뛰어 들어간다.

‘친구들과 폴짝폴짝 뛰어놀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손짓하여 부른다.

망설이던 아빠는 방방이 안으로 들어가

‘폴짝폴짝 뛰다가’ 자신도 모르게‘흥분해버려서’

방방이를 종횡무진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마침내 아빠는, 의도치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모두 내쫓아 버리고

아이들의 항의에 다른 엄마아빠들도

“아이들 노는데 뭐 하는 거냐며” 따지기 위해

방방이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그렇게 어른들로 가득 찬 방방이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한 페이지에 한 두 문장이 다이지만

마치 동시를 읽는 마냥 글이 압축적이고 리듬감 있다.

점층적으로 변해가는 어른들의 표정과 몸짓, 몸이 기억하고 있다가 기지개 한편으로 구현되는 갖가지 포즈들이 밖에서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보다 더 다양하고 가지각색이다.

 

양 페이지에 걸쳐 방방에서 노는 어른들과 방방 밖에서 다시 무리를 지어 새롭게 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 모두 보여주면서

그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어른도 그들을 거쳐 지금이 되었음을,

사람은 누구나 ‘노는 동물’임을,

잘 노는 것으로 행복을 가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어른이 된 우리가 지금 논다고 하는 이 행위들이 진짜 노는 것이 맞는지 의심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그렇다면 나는 최근 언제 노는 것처럼 놀았었던지,

그게 기억이 안 날정도로 오래되었다면 지금 내가 혹시 행복에서 멀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미친척하고 아이들과 함께 방방이로 뛰어 들어가 놀아볼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나 무리야, 라며 접고 나서도

<방방이>의 어른들이 한없이 부러워 그림책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어른과 아이를 갈라놓는 무형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그들의 표정이 내게 덮어씌워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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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읽은 책

 

 

 

 

 

 

 

 

 

 

 

 

 

 

이번주에는 어쩌다보니 드라마 같은 소설들만 읽었다.

<마녀 식당으로 오세요> 는 단막극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육아의 여왕>은 쉽고 재미는 있었지만, 방송작가 출신 작가들의 소설이 좀 그런 편이라 이제는 저자를 보고 좀 걸러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좀 드는데, 과장이 심하다. 대신 읽는 맛이 있달까, 오디오가 지원되는 느낌이랄까, 그런 장점도 있지만.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의 정원>을 봤다

요즘은 참 영화를 챙겨보게 된다. 두시간이면 끝나는 장점이 좋다. 뭘 꼭 끝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영화 한편은 봤다는 성취감이라도 없으면, 매일 챗바퀴 도는 일상이 너무 지루하다.

안타깝게 이번 주의 영화는 졸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내가 기특할 정도로 지루했다.

 

그리고 그림책 <방방이>

너무 잘읽었다. 봐도 봐도 재밌다. 좋은 그림책의 장점은 앉은 자리에서 몇번이고 다시 볼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그림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그런데 다시 만난 그림책이 정말 좋은 그림책이어서 기뻤다.

따로 리뷰를 달 예정이다.

 

이번 주에 읽을 책. <라면의 황제>를 읽고 있다. <거의 맞음>도 엄청 기대된다. 부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할텐데.

그리고 <방방이>의 저자 이갑규의 그림책들을 좀 찾아 읽어 보겠다. 역시 기대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쓸수 있는 한 주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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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히려 과도한 연명 치료 때문에 생의 마지막 시간을 불필요한 고통으로 보내는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말라가듯 죽는 것. 오히려 이 편이 고통스럽지 않아요. 원래 죽는 순간은 아프지 않고 괴롭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큰 병원의 의사들은 이걸 모르고 죽음은 패배라는 생각에 최후의 순간까지 과도한 연명치료를 하는 겁니다.(49p.)

차갑게 식은 아버지와 대면한 것은 경찰의 시신 안치소였어요. 그게 내 인생 최초로 본 사체였습니다. 나는 많은 것이 분했어요. 슬프다기 보다는 분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인데도 육친의 죽음을 전혀 짐작할 수 었었다는 무력함이 우선 분했어요. 그리고 수년 동안 대학병원 정신과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았는데, 왜 이런 결과가 됐는지도 분했습니다. 의료라는 것도 이 정도로 무기력한 것인가 싶어서 말이죠. (60~61p.)

그렇다면 ‘죽음‘이란 어디까지나 1인칭, 그 사람 개인만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죽음으로 인해 충격을 받는 건 언제나 타자니까요.

유감스럽게도 나는 ‘내가 죽어서 충격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물론 ‘내가 죽어서 잘 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고요. 죽음이란 언제나 2인칭 혹은 3인칭입니다. 2인칭의 죽음은 대개 충격이고 슬프죠.(62~63p.)

사소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자살自殺‘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자살로 죽은 가족이 있는 사람 중에는 이 ‘죽일 살殺‘ 이라는 문자에 상처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죽이다‘ 가 죄라서 그런 건가요?)

그래요. 일본에서는 ‘스스로 죽을 권리‘는 허용되지만 ‘살인‘은 죄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에 ‘살‘이라는 문자는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시마네현에서는 이미 그런 움직임이 있습니다. 2013년부터 ‘자살 대책 종합계획‘이라는 행정 정책이 ‘자사 대책 종합계획‘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어요. 가족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해요. 시마네현의 장애복지과는 "‘자사‘에는 열심히 살려고 했으나 무력감이나 절망 끝에 죽었다는 어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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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두권과 영화 한편을 보았다.

<나는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는 흥미로웠지만 책의 두께만큼 역시나 부족했다. 

 

<비밀의 숲-테라비시아>는 책으로 읽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싶었다.

 

지난 금요일 탈상을 했다.

거짓말처럼 49일을 내리 울었는데

거짓말처럼 49일이 지나니 눈물이 뚝 그쳤다.

외삼촌 말씀마따나 엄마의 영혼은 이승을 떠나 할머니에게로 갔나보다.

그렇게 엄마가 내곁에 없다고 생각하니 또 눈물이 고인다.

그래도 이제는 고인 눈물을 꾹 삼켜버릴 수가 있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이번주에 읽을 책.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몇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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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수 없는 비밀>을 봤다. 이제는 타임슬립라니 좀 식상한 감이 있지만,

하이틴 로맨스가 나에게 지나치게 풋풋한 감이 없진 않지만,

그 유명한 피아노 베틀과 아름다운 선율들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들일 영화였던 것 같다.

 

아이들과 <코코>를 봤다.영화관에 들어갈때부터 울고 나올 줄은 알았지만

정말 셋이 들어가서 나만 울고 나올 줄은 몰랐는데.

한없이 엄마가 그리워서 그랬다.

남은 둘이야 엄마가 곁에 있으니

아직 슬픔이 무언지 모를 나이다.

 

고미숙 작가의 <동의보감-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를 읽고 있다.

영화는 두편이나 봤는데, 책은 잘 안 읽힌다.

이번주는 이 책을 마저 읽고,

기다리고 있는 책이 있다. <나는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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