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조난자들>을 읽었다.

탈북민이 쓴 탈북자들의 이야기.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와서 읽게되었는데.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음 아프기도 하고.

독후감을 쓰고 싶은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번주에는 정말 꼬박꼬박 최소 30분 이상은 책을 읽어야지. <지.대.넓.얕2>를 읽고 있는데, 자꾸 잠이 온다. ㅎㅎ

<지연된 정의>가 배달되어 왔다. 기대 만땅! 하지만, 급하게 말고, 아껴서 읽고 싶다.


장마라는 것은 가끔 책읽을 시간을 선물한다. 

한 여름 중에 나름 좋은 시절이다.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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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중년의 나이에 시도해 보는 산행에 사춘기의 딸이 동행을 하면서 재발견한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관계를 잔잔하게 풀어가는 회상록이다.

 고도 4200m의 그랜드 티턴과 세계 7대 정상의 아콩가를 우여곡절 끝에 정복하는 동안의 시시각각의 모험과 고통을 이겨내면서 겪는 체험, 또 자연과 인간이 가깝게 접근해 가면서의 묘미가 나이가 들어가는 아버지와 어른이 되어가는 딸의 삶에 아름답게 녹아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품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딸을 보면서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해하며 귀여웠던 추억들을 돌이켜보는 애잔함과 애틋해하는 과정을 읽어가며 중년이라는 불확실한 높이에서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케 한다.

 저자는 그 산에서 영원을 먹고사는 정신의 상징을 보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건 백설의 대우주 속에서는 두 점에 불과한 부녀의 마주친 눈빛?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체온? 되돌이킬 수 없는 먼 옛날의 가족 간의 추억? 정상에서 자연과 화해하고 하나가 됨을 느꼈을 때의 짜릿함? 무엇을 본 것일까...

 

 운이 좋은 남자는 첫아이를 딸을 얻는다.(스페인 속담인데 이글을 내게 깨우치려고 은정이가 이 책을 선물했나?)

 이 외로운 산들로부터 무엇을 드러낼 수 있을까?(에밀리 브론테)

 

 내가 산을 바라보자 산은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산이었다.

 힘든 무브를 하기 직전 앞을 바라보다가 이해를 하게 되는 그 절묘한 순간, 그 순간에 왜 산에 오르냐는 질문에 적절한 답이 있을까?

 환희는 탐험하는 몸의 노력과 그 뒤에 이어지는 더 힘겨운 노력 사이의 짧은 휴식 시간에 오는 것 같다.

 저자는 하산 중에 말한다. “우리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절대로 희미해지지 않을 기억을 가져왔고 우리 영혼의 한계를 넘는 생각을 두고 왔다.”라고.

 

 모험은 그냥 모험이 아닌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심오하게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특히 부모로서의 모험보다 더 미묘하고 더 심오한 것은 없음을 저자 노먼은 딸을 보면서 가슴 깊이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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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셜리스트인 마오쪄뚱(모택동)과 실용주의자였던 저우언라이(주은래), 덩샤오핑(등소평)의 두 사상적 대결 사이에서 비롯된 문화혁명의 현장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육일심은 중국을 장악했던 일본이 패망하면서 들이닥친 소련군에 의해 만주개척단(일본인이 중국 본토를 일본화 시키기 위해 일부 일본인을 반 강제적으로 만주로 이주시킴)으로 형성된 마을이 몰살당하면서 전쟁고아가 된다. 샤오이뻔궤즈(중국인이 일본인을 칭하는 모욕적인 욕)라는 온갖 멸시를 받으면서 여러가지의 희비를 겪으며 성장하여 결국 한 인간으로 꿋꿋이 일어서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고아로 떠돌던 주인공은 무자비한 중국인에 끌려가 혹독한 생활을 하다가 노예로 팔리던 중 한 중국인에 의해 육일심이라는 중국 이름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된다. 아낌없는 사랑과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평탄한 중국인으로써 뿌리를 내려간다. 그러나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누명을 쓰고 노동개조소에서 비인간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한다. 한편 헤어졌던 누이가 극도로 잔인하고 가난한 중국인에 끌려가 노예 같은 혹독한 삶을 살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하는 애절함을 겪기도 하고 처자식의 죽음을 상처로 안고 안정된 사회인으로써 살아가는 일본인 생부를 만나 중국인 양부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인간적인 과정을 그린 인간사이다. 일본과 중국의 거대한 톱니바퀴 틈에서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무력함과 나약함, 그러나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강한 인내심과 의지력도 볼 수 있었다. 이 작은 가슴 안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의 그 많은 근본들 -사랑, 깊은 이성, 이해심, 자애, 애잔함, 노력, 끈기, 그런가하면 간교함, 잔인성, 악독함-이 인간 내면에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음도 느꼈다.

 

이 책의 흐름을 잇고 있는 제철소 건설이야기 속에서 몰랐던 중국의 경제와 정치의 새로운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철의 강조성을 주장하며 밀어부쳤던 제철소 건설은 사실 모택동이 실권을 쥐고 있던 주석 하국봉을 밀어내고자 했던 정치적 음모의 한 방책이었다는 점, 제철소 건설과정에서 중일우호를 앞세워 일본의 자금을 교묘한 방법으로 끌어들이던 중국.(자국의 대불방식이 현금지불이라는 점으로 비용을 터무니없이 낮추어 놓고 막상 계약 체결시에는 5년 연불로 씀으로써 유리한 입장을 끝내 고수했다.) 경제적 강국 일본도 이런 억지논리에 두 손을 든 적이 있었던 과거와 민족의 일치와 애국을 중시하는 일본도 중국에 버려진 내 국민을 방치할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오점의 흔적이 있따는 것도 새삼 알았다.

 

모택동이 갑자기 죽으며 권력을 장악한 부인 강청과 4인방이 숙청되는 문화혁명의 10년간 주은래 총리의 박해, 등소평의 피신, 호요방과 하국봉의 정치적 힘겨루기도 잠깐씩 다루어진 폭 넓은 소설이다.

과연 중국은 대륙의 크기만큼이나 민족성을 간파하기도 힘들거니와 역사 역시 장구하여 단순히 일컬어질 수 없는 무궁무진함과 막강한 저력도 느껴졌다.

 

일본인 혈통이라는 불리함을 가진 육일심과 아버지가 노동개조소(감옥)에서 자살한 반혁명분자인 딸로써 살아가야하는 부인 강월매 부부가 딸 연연의 장래를 염려하면서도 양부 곁에 남기로 결정함은 대지의 아들로서 살아온 깊은 자존심과 성장의 시간이 묻어있는 조국의 믿음 때문이었을까? 나라면 과연 어찌했을까? 아픔과 상처를 지닌 곳,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양부. 그 동안 아들에게 졌떤 빚을 갚고자 하는 생부의 애절함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이루어놓은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뿌리칠 수 있었을까?

요즘의 사회적 붐을 일으키고 있는 차이나드림에 앞서 읽어보았는데 뜻밖에도 더 많은 훈을 얻은 소중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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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28살을 눈앞에 둔 여류 잡지사의 여기자와 암울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성장하여 사회적인 명성을 떨친 - 그러나 그는 늘 삶의 쓸쓸함과 덧없음을 풍기는 스산한 겨울 분위기를 벗어버리지 못한다. - 유부남인 미술가와의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두 지성인이 사회적인 윤리나 관습, 열정적인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여주인공의 일기를 빌어 그려내고 있다. 결국 가족들과의 도덕성조차도 예술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남성의 결단으로 사회적인 통념을 극복하지 못하는 보수적(?), 고전적(?) 결말을 맺는다. 여주인공 희원은 시인으로 등단함으로써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함을 빌어 이 사랑을 지속시키려하나 일방적인 상대의 의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희원이 새 삶을 시작하면서 지난 일 년 간의 과거를 흘려보내는 예식으로써 자신의 사랑의 흔적인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내일이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 그 남자는 건강하고 쾌활하고, 아마는 성실하다.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의 이름은 앞으로의 내 삶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자에게 있어서 결혼은 하나의 레테(망각의 강)다. 우리는 그 강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 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을 채워 가야한다.

 나는 지금 그 강가에서 나를 건네줄 사공을 기다리고 있다. 내 귓전에는 느릿느릿 저어오는 그의 노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리라. 앞서의 수많은 여인들이 희망과 기쁨으로 또는 탄식과 눈물 속에 건너간 이 뱃길을 가리라. 강 이편의 그 무엇에도 연연함이 없이.

 그리하여 나는 이제 그 홀가분한 출발을 위해 지난 세월과 마주하고 섰다. 내가 새삼 이 일기장을 펴드는 것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미혼 시절을 향한 허심한 목례, 여기에 담겨진 기억들을 망각의 불속으로 던져버리기 위한 마지막 작별의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은 현란한 애증의 그림자를 벗어버리지 못했지만 이윽고는 똑같은 빛깔로만 떠오르게 될 시간들이여. 한때는 내 삶에 버금가는 소중함이었지만 이제는 끝 모를 침묵과 어둠속으로 살아져 가야 할 기억들이여. 기쁠 수도 슬플 수도 없는 노래여.

 

 그리스 신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리비디아라는 소도시에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샘물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흐르는 물은 므메모쉬네(기억의 샘물), 왼쪽으로 흐르는 물은 레테(망각의 샘물)이다. 그 두 샘물이 어우러져 하나의 시내를 이루는데 이 시내의 이름이 바야흐로 LIFE(인생)! 어찌 사랑과 이별을,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려고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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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월이 한 주 밖에 안남았다. 6월은 너무 바빠서 책을 거의 못읽었다.

7월은 좀 나아질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책은 1~2월에 가장 많이 읽게 되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세여자>와 <안네의 일기>를 읽었다.

내가 과연 어렸을 적에 이 책을 읽었던가 싶도록 <안네의 일기>는 새로웠다.

예쁘고 똑똑하고 안쓰러운 안네를 보면서 비슷한 또래의 영아와 윤아 생각에 마음이 적잖이 아팠다.

나 뿐 아니고 읽는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 아이는 정말 뛰어난 언론인이나 문인이 될 수도 있었는데.

(하긴 일기 한권을 이토록 유명하게 만들었으니 이미 문인이라고는 할 수도 있겠다.)

 

이번 주는 <지대넓얇 2>와 영화 두편을 보려고 한다. <조선명탐정>과 <울지마, 톤즈>

예전부터 이태석 신부님 이야기는 꼭 한 번 아이들과 함께 들어보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일 때는 영화라는 매체가 꽤 유용한 편인데, 이번에도 틀린 선택이 아니길 바란다.

<조선명탐정>은 시리즈로 만들어질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터라, 늘 한번쯤 보고 싶었는데

마침 <톤즈>영화 바로 옆에 있길래 눈에 띄어 업어왔다.12세 관람가이니 아이들과 같이 볼수 있겠군.

 

이번 주도 건강하게. 무사히. 부디.

그걸로도 충분하지만,

조금 더 소망해도 좋다면,

책 읽을 시간이 좀 더 허락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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