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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빛 1 ㅣ 환상문학전집 34
메리 도리아 러셀 지음, 형선호 옮김 / 황금가지 / 199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은 사람이면 더 이상 공상과학소설을 단순한 오락물이라고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더 이상 소설의 한 하위장르로서 SF가 성취할 수 있는 문학적 가능성에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메리 도리아 러셀의 <영혼의 빛 The Sparrow>, 그리고 그 후속편 <신의 아이들 Children of God>은 외계 행성 라캐트(Rakhat)의 두 종족, 루나와 자나타간의 갈등과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의 중심에 휘말린 인간들의 대서사시이다.
<영혼의 빛>과 <신의 아이들>의 주인공은 예수회 신부이자 언어학 교수 에밀리오 산도즈. 그의 친구인 천문학자 지미 퀸은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2019년 외계 행성으로부터의 전파를 포착한다. 그 전파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21년, 예수회는 네 명의 예수회 신부, 에밀리오 산도즈, 마크 로비쇼, D.W. 야브로, 앨런 페이스를 천문학자 지미 퀸, 인공지능 분석가 소피아 멘데즈, 의사인 앤 에드워즈와 그의 남편 토목공학자 조지 에드워즈와 함께 18광년 거리에 위치한 라캐트 행성으로 비밀파견한다.
<영혼의 빛>은 그로부터 약 40년 후인 2059년, 열 손가락의 근육이 모두 절단된 참혹한 상태로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안고 라캐트 행성의 한 루나족 아동을 살해한 죄목과 함께 홀로 지구로 돌아온 에밀리오 산도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는 절망에 빠져 있으며 밤마다 악몽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예수회에서 탈퇴하기를 고집한다. 라케트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후속편인 <신의 아이들>은 간신히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고 삶의 평화를 얻기 시작한 산도즈가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교황의 승인 하에!) 강제납치되어 라캐트 행성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2078년 라케트에 도착한 산도즈는 그 사이 일어난 변화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라케트의 거대한 변화는 38년 전 산도즈 일행의 도착과 함께 시작되었던 것이다. <신의 아이들>이 <영혼의 빛>과 함께 번역-출판되지 않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실로 애석한 일이다. <영혼의 빛>에서 시작된 사건들은 <신의 아이들>에서야 비로소 완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모험과 극한의 고난을 거치고, 그로부터 살아 돌아온다는 점에서 에밀리오 산도즈는 수많은 신화 속의 영웅들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이 단순히 한 신부의 종교적 체험 이상으로 확장되어 일반성을 획득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서이다. 생생하게 묘사되는 산도즈 주변인들의 극적인 일생 또한 그에 공헌한다.
왜 인간은 단순히 그 곳에 지능을 갖춘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십 광년 거리에 있는 외계 행성에 가고자 하는가? 그러한 생명체가 우주 안에 존재하는지를 발견하는 것이 왜 우리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인가? 이러한 질문은 불가피하게 인간의 존재 의미라거나, 삶의 가치와 같은 다른 오래된 질문들과 얽히게 된다. 공상과학소설과 종교적 질문의 결합이 기이하게 호소력을 지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전직 인류학 교수인 저자 메리 도리아 러셀은 인류학 외에도 생물학, 유전학, 해부학, 지리학 등의 분야에서의 자신의 지식을 잘 살려 설득력 있으면서도 흥미로운 배경과 호소력 있고 매력적인 인물들을 창조했다. 이 대 서사시의 엔딩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독서 후에 여러 번 다시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