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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ㅣ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 르네상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이름 자체마저 어째 포스트모던하게 들리는(!) 보르헤스라면 거의 "라틴 문학"보다도 더 유명한 말이며, <돈키호테>를 세르반테스 다음으로 잘 알려진 라틴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학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그런 유명한 작가가 쓴 책이 나오면 도저히 읽어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책 한 권에서 대작가의 특별한 작품창작 비결이 공개될 것처럼 제목을 짓는 것은 물론 출판사의 상술이니, 그런 것을 기대해서는 곤란하겠다. 작가 자신조차도 그런 것을 과연 책 한 권으로 엮어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알고 있는지 수상쩍거니와 (대부분의 작가들은 늘 종이와 펜을 들고 고뇌하지 않는가, 비결이 있다면 몇 시간만 일필휘지하고 나가 놀 수 있을 텐데!), 정말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 비결이라는 건 더욱더 공개할 수 없는 보물일 것이 아니겠는가.
설령 그런 다소 허황한 기대를 품고 책을 샀다가 대뜸 튀어나오는 시, 시, 시, 이야기에 기겁을 했다면, (보르헤스가 시도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의 시들은 더욱 그러하니) 후다닥 페이지를 넘겨 마지막 장의 이런 구절을 읽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좋겠다.
"... 이제 시간을 건너뛰어 내가 제네바에 갔던 때의 이야기이다. 그 때 나는 매우 불행한 젊은이였다. 젊은이들이란 불행함에 지극한 애착을 갖는 듯 하다. 그들은 불행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대개는 그 원을 이룬다. 그 때 나는 분명 무척이나 행복한 인간인 한 작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월트 휘트먼의 시를 읽은 것은 1916년이었음에 분명하다. 그의 시를 읽은 후 나는 무척 창피했다. 왜냐하면 그 때에도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서 더욱 더 불행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늙어서 철이 든 노작가의 솔직한 이런 고백은 정말이지 유머러스하다. 아마 이 말을 하면서 자신도 도스토예프스키에 너무 빠져서 휘트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정말이지 어쩔 뻔 했는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지구 정반대라는 아르헨티나에 사는 이 작가가 갑자기 무척 친근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장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끈질기게 튀어나오는 중세 영어나 라틴어, 스페인어 등은 대담하게 무시하면서) 더욱 재미있는 고백이 이어진다.
"내가 처음 단편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독자들을 속여먹으려고 용을 썼다. 스타일에 무지하게 신경을 썼으며, 그래서 때로 정작 하려던 이야기들은 수많은 덮개 아래로 숨겨져버리고 말았다. ...... 그렇게나 많은 이상한 형용사들 하며 비유들을 남발하지만 않았었더라도 ...... 이제 나는 (그런 경로를 거쳐) 뭔가 지혜를 얻었다기보다는 아마도 좀 정신을 차린 것 같다. ..." (위의 두 인용은 제가 대충 번역한 것이므로 책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노년의 보르헤스는 확실히 젊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해진 모양이다.
이 책의 원제, <이 詩作의 기술 This Craft of Verse>이 시사하듯이, 이 책의 내용은 사실 거의 90%가 시에 대한 것이다. *시란 무엇인가, *은유란 어떤 것인가, *시와 서사시, *시의 번역, *시의 의미, *표현과 암시, 이런 주제들이 차례차례로 다루어지므로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과 실제 책의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시에 대한 그의 입장을 정확히 몇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문학이론 용어를 몰라 아쉬운데, 이 강연(이 책은 보르헤스가 1967-1968년 사이에 강연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에서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시는 반드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느끼는 것이며, 시에서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그 시의 의미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직접적이고 우선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보르헤스는 문학이론가가 아니므로 이런 주장을 체계적으로 논변한다기보다 그냥 자기 생각에 그렇다는 식으로 말한다. 청중석 앞좌석에 주르르 앉아 이런 보르헤스의 주장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을 오만가지 문학 전공교수들을 상상해 보면 무척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좋아서 여러번 읽는 나로서는 보르헤스가 직접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무척 뿌듯했다. 보르헤스는 더 나아가 말의 기원을 상징에서 찾으면서 "단어들은 공유된 기억의 상징일 뿐"이며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언어가 수행할 수 있는 최대치는 오직 '암시'일 뿐이라고 한다.
보르헤스의 시는 모르더라도 시 읽기를 좋아하거나, 보르헤스의 소설을 한 번쯤 즐거이 읽은 적이 있어 그 작가가 시나 소설 일반에 대해 뭐라 말할까 궁금증을 품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