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와 단식가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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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수퍼마켓에서 배달된 과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굽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준다. 하므로 그녀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하거나 쉴 새 없이 먹어대는데, 보통은 그 두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 먹을까? 그녀의 책장은 각종 요리사전으로 가득하고, 외로움은 늘 새로운 요리를 탐닉하게 한다. 언제나 그녀의 주방은 뭉실뭉실 연기를 내뿜고, 그녀는 방금 자신이 실험한 요리에다 멋진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리고 그것들 쟁반에 덜어 302호의 여자에게 끊임없이 갖다 준다.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서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귾어질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약간 상쇄시켜 주는 것 같다. 어떻하면 한모금의 물마저 단신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가는 단식에 대한 연구서와 체험기로 가득하고, 그녀는 방바닥에 탈진한 채 드러누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하여 쓰기를 즐긴다. 흔히 그녀는 단식과 저술을 한꺼번에 하며, 한번도 채택되지 않을 원고들을 끊임없이 문예지와 신문에 투고한다.

3

어느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게까지 미친다. 그래서 바싹 마른 302호를 잡아 스플레를 해 먹는다. 물론 외로움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호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의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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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 2005-06-26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제목이 '요리사와 단식가'였죠 영화때문에 늘 '301 302'로 먼저 기억하게 돼요.. 요즘 시에 필~ 받으신 거 같아요 ^^

검둥개 2005-06-2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에 필 받기는요, 시 베껴다 쳐넣는 것만 해도 딸린답니다.
스노드랍님의 멋진 리뷰에 필 받은 거라니까요 ^^

marine 2005-06-26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에 혹시 황신혜와 방은진 나오지 않았나요? 내가 "산부인과" 와 헷갈리나?

히나 2005-06-2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그 영화 맞아요 얼마전에 극장에서도 다시 하더라구요.
열음사 대표 딸 이서군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었죠.
흠.. 이서군 감독은 요즘 뭐하나..

검둥개 2005-06-26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러고보니 301:302에랑 산부인과에 동일배우들이 나왔네요. 맞죠? ^^

딸기엄마 2005-06-2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바보 도트는 소리) 그 영화가 이 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거였군요. 세상은 넓고 몰랐던 건 지천에 널렸어요 정말~

검둥개 2005-06-2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그치만 인생도 꽤 긴 편이니 그래도 천천히 배우면 되죠. ㅎㅎㅎ 대부분은 또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