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기사를 쓰는 요령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누가 보아도 대체로 그럴 듯하게

따라서 어느 누구에게도 진실이 아니도록...

현실은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로 요약이 불가능하다.

그 안에 알맹이는 쏙 빠져 있는 것 같다.

TV의 뉴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일 경우(그럴 경우가 대부분이다)

앵커가 하는 말이 사실이겠거니, 기자가 하는 말이 사실이겠거니 쉽게 믿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KBS, MBC, SBS 3개 방송사의 9시 뉴스는 내용도 관점도 너무나 똑같아서

어떤 높은 사람이 오늘은 이런 뉴스를 이런 방향으로 내보내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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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에서 '가족의 탄생'을 한 20분 정도 보았다. 20분 정도밖에 보지 못한 것은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영화가 재미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 그리고 이것은 조금이라도 비아냥이 섞인 말이 아니다. 일요일도 일요일이 아닌 날들처럼 바쁜 요즘이다.

아무튼 거기서 고두심에게 새삼 놀라고 말았다. 고두심은 자기 아들뻘인 남자의 아내 역할을 하는데 그리고 뻔뻔스럽게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시누 집에 눌러살게 되는데 나이가 들었으돼 젊은 남자의 연인임이 극히 자연스러운 이 무심씨는 이 참으로 부담스러운 시추에이션에 낭창낭창한 버드나무 가지처럼 유연하고 센스 있게 적응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나는 무심씨와 그 역할을 하는 고두심 여사에게 홀딱 반하게 되어 버린다. 고두심씨는 TV 드라마에선 주로 어려운 상황에서 가정을 이끌어가는 굳세고 대쪽같은 어머니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는 다소 퇴폐적이고 한쪽 나사가 풀려 있는 것 같으면서도 영화 속 시누나 관객이 결코 미워할 수 없도록 어떤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여자의 역할을 정말 잘 해내고 있다.

정말 잘 해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안에 존재하고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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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형 2007-02-2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였지? 옛날에, 한 드라마에서 그녀가 유행어도 만들었지. "잘났어 정말"하고 말이야. 정말 잘하는 것 같아.

슈뢰더 2007-02-28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드라마도 확실히 집중해서 봐야 재미있어요. 요즘은 신경의 한쪽 끝이 언제나 아기에게 향해 있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해요.
 

밑줄 쫙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사람들은 불쌍하다. 그리고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은 비겁하다.(곤살로 모우레 <토미를 위하여>

누가 그랬지. 소설 따위를 읽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자기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는 것은 좋은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어. 좋은 소설은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해. 그리고 현재의 나를 다시 보게 해. 그건 좋은 일이야. 보통은 나 자신을 새롭게 보지 못하거든. 좋은 소설을 읽으면 진심으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돼.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그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제대로 살기 위해서.

오늘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는 소설 하나를 읽고 아주 예전에 자주 쓰던 말 하나로 다시 돌아갔어. '마음'. 오랫동안 꽤 코웃음쳤던 '마음'은 원래 그렇게 홀대를 받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야.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난 언제부터 고무줄 놀이를 하지 않게 되었을까? 마지막으로 고무줄 놀이를 했을 때 난 그게 마지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래도 왠지 모를 서늘함은 느끼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고무줄을 사다가 이건 내 인생의 마지막 고무줄 놀이라고 생각하고 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겠지.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만 19세가 되면 되는 날 아침이면 어른이고, 그 전날밤에는 청소년인 것일까? 그건 아니잖아.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언제나 '어른'들의 소설을 읽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늘 그 시절을 떠올려. 내 생각은 아주 어릴 적으로도, 조금 더 컸을 때로도 많이 되돌아가. 뭔가 중요한 것들이 잔뜩 숨어 있는데 내가 찾아내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워.

그리고 지금 나는 여기에 있어. 지금, 여기에. 신비로움이 사라진 어른의 세계에. 가끔은 느껴. 기적을 느껴. 신비로움을 느껴. 아주 아주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다행이겠지.

아주 아주 처음에는

너는 아주 아주 작은 모래알보다 더 작았어

별빛이 떨어지고

풀씨가 날리고

그래서 너는 조금 더 커졌단다

옛날에는 시를 썼어. 마음속에 시가 흘렀어.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랬어. 그러던 어느날 노랫소리가 멈췄지. 다시 다시 노래가 흐르게 해야지.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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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형 2007-02-2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듣기 좋아.

슈뢰더 2007-02-2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쑤!
 
토미를 위하여 파랑새 청소년문학 4
곤살로 모우레 지음, 송병선 옮김 / 파랑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열일곱살 여자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가 처음에는 그리 쉽지 않다. 그의 말에는 반짝거리는 진실이 숨어 있지만 그저 어디서 아무 생각없이 주워담은, 겉만 멋질 뿐인 생각도 섞여 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인지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아이 자신도 그다지 확신이 없다. 소녀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슬픈지 기쁜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혼돈스럽다는 것, 제어할 수 없는 격정에 휩싸여 있다는 것. 한 순간 한 순간이 풍랑속의 위태로운 조각배처럼 느껴진다는 것.

하지만 차츰차츰 분간해 나가게 되었다. 소녀의 이름은 이레네. 이레네에게는 두 친구가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소년 야르칙과 야르칙을 알기 전부터 사귀었던 테사. 피아노를 치던 이레네는 천재가 아니라는 것에 좌절하여 피아노를 그만두고 바이올린을 켜게 되었다. 테사를 따라서 클래식이 아닌 음악들도 많이 듣게 되었다. 이레네의 정신 속에선 하이든을 배경으로 너바나가 노래를 부르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모짜르트의 음악이 뒤섞인다.

방학을 맞아 아버지를 따라 시골에서 지내게 된 이레네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에 이끌려 정신지체아처럼 보이지만 음악에 천재적인 소질을 지니고 있다는 토미를 만난다. 토미를 만나는 순간부터 소설 속에는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는 나의 마음에도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엘비라 마디간을 몰라도, 모짜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나타 k360번을 몰라도 상관없었다. 음악은 '도'라는 음 하나로 시작했다. 그리고, 자작나무에 걸어놓은 손수건을 너울거리게 하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조용히 흐르다가 높이 높이 격정적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차분히 돌아올 곳으로 돌아왔다. 마치 소나타처럼.

이레네는 처음에는 '그래 하지만 그렇지 않아 아가씨'였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음악은 우주의 언어이다. 야르칙의 말에 의하면 먼 미래의 진화한 인간들이 소통의 도구로 쓸 언어이다. 너무 흔히 써먹어서 식상해진 이 말은, 그러나 소설을 읽는 동안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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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형 2007-02-2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있다. "너무 흔히 써먹어서 식상해진 이 말은, 그러나 소설을 읽는 동안 사실이었다." 이런 멋진 문장을 생각해내다니!! 칭구! 좋아!
그럴 때가 있어. 정말. 어떤 진부한 표현이라도 말이야. 그게 사실일 때가 있어.
 

페코가 대학 탁구부에서 익힌 양면타법을 가지고,

스마일이 잠깐의 방황을 접고 무자비하고 냉혹할 만큼 완벽한 기술로,

카이오학원 까까머리 주장이 변함없는 의지와 몇달동안의 컷트맨 상대 연습을 무기로,

작가가 송구스러움을 무릅쓰고 중국에서 모셔온 잘생긴 탁구 청년 콩이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의연한 자세로,

인터하이 예선에서 격돌을 벌인다.

 

오호~ 흥미진진 할세라.

이따금 등장하는 스마일의 어린 시절 모습은 어찌 이리 사랑스럽단 말인가

무뚝뚝하고 정이 안 가지만 귀여운 녀석

묘한 캐릭터다.

한편, 리얼 6에서 노미야의 자기길을 향한 여행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모래밭을 걷는 것마냥 더디고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진행된다. 아직 목표를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의 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기에.

타카하시는 여전히 초췌한 얼굴에 부시시한 머리카락을 하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단념해버린 듯한 참으로 보기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8년만에 재회한다.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를 절단하기 전에는 언제나 자신감 넘친듯 보이고 잘난체하고 실제로 잘났던 그의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 농구 연습을 할 수 있는 뒷마당이 딸린 시골집, 학교 연습에서 신 기술을 성공시켜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며 연신 '아빠가 일찍 오셨을까? 아니야 그럴리 없지. 하지만...'하고 되풀이 생각하는 꼬마. 그 꼬마와 눈을 마주치고서도 지나쳐버리는 남자. 어느날 예고없이 아빠 역할을 포기해버리는 그 남자. 타카하시의 아버지.

타카하시는 과연 달라질까? 그럴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모습과 감정을 그대로 보고 드러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무엇때문에 마음 아팠는지, 절망스러웠는지 솔직히 털어놓는 것은 정말 정말 쉽지 않다.

그러고보니,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살'에서도 아버지가 어느날 가출을 해버리는데, 허어 이런. 정말 당황스런 일이 내가 가진 만화책에선 자주도 일어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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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형 2007-02-09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보고 싶다. 보고 싶어! 만화. 그리고 동의. 내가 무엇때문에 마음 아팠는지, 절망스러웠는지 솔직히 털어놓는 것은 정말 정말 쉽지 않다. 누구에게.

슈뢰더 2007-02-28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나자신에게 털어놓기도 쉽지 않죠. 그냥 잊고 싶을 뿐이지. 그리고 잊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