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산 근처였고, 부모님이 화분가꾸기를 좋아하셔서 늘상 봐왔기 때문인지 예전엔 식물에 관심이 가질 않았다. 이젠 주위가 늘 삭막하니 어쩌다 초록색을 보면 참 반갑다. 뭔가를 키우고 꽃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조그만 화분 몇개를 사다가 그 안의 식물들을 다 죽여보고 나니 '난 역시 초록색 손가락(green thumb)이 아닌가봐'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에 호기심이 갔던걸 보면 뭔가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아주 사그라들지는 않은 모양이다. 책을 읽고(다 읽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공원에 있는 풀과 나무에서 열매를 몇가지 따고 오렌지를 샀다. 흙을 퍼왔다. 꽃집에 들렀는데 '피트구슬(책의 첫장에 등장)'이란 것은 팔지 않았다. 오렌지는 아, 씨없는 오렌지였다. 오렌지에 붙은 스티커를 눈여겨 보지 않았던게 후회스럽지만, 쩝. 열매에서 발라낸 씨는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흠. 그래서, 퍼온 흙에 마늘 두 쪽을 심었다. 그 중 하나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와!오렌지 나무며 마늘싹 틔워 키우는 게 다 이 책에 나와 있다. '그냥 놔둬도 싹 트는 마늘 따위 뭐하러 심어 기르느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내 손에 흙 묻혀가며 심은 마늘은 매일 먹는 마늘과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마늘이'와 함께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