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쫙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사람들은 불쌍하다. 그리고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은 비겁하다.(곤살로 모우레 <토미를 위하여>

누가 그랬지. 소설 따위를 읽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자기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는 것은 좋은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어. 좋은 소설은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해. 그리고 현재의 나를 다시 보게 해. 그건 좋은 일이야. 보통은 나 자신을 새롭게 보지 못하거든. 좋은 소설을 읽으면 진심으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돼.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그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제대로 살기 위해서.

오늘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는 소설 하나를 읽고 아주 예전에 자주 쓰던 말 하나로 다시 돌아갔어. '마음'. 오랫동안 꽤 코웃음쳤던 '마음'은 원래 그렇게 홀대를 받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야.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난 언제부터 고무줄 놀이를 하지 않게 되었을까? 마지막으로 고무줄 놀이를 했을 때 난 그게 마지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래도 왠지 모를 서늘함은 느끼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고무줄을 사다가 이건 내 인생의 마지막 고무줄 놀이라고 생각하고 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겠지.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만 19세가 되면 되는 날 아침이면 어른이고, 그 전날밤에는 청소년인 것일까? 그건 아니잖아.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언제나 '어른'들의 소설을 읽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늘 그 시절을 떠올려. 내 생각은 아주 어릴 적으로도, 조금 더 컸을 때로도 많이 되돌아가. 뭔가 중요한 것들이 잔뜩 숨어 있는데 내가 찾아내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워.

그리고 지금 나는 여기에 있어. 지금, 여기에. 신비로움이 사라진 어른의 세계에. 가끔은 느껴. 기적을 느껴. 신비로움을 느껴. 아주 아주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다행이겠지.

아주 아주 처음에는

너는 아주 아주 작은 모래알보다 더 작았어

별빛이 떨어지고

풀씨가 날리고

그래서 너는 조금 더 커졌단다

옛날에는 시를 썼어. 마음속에 시가 흘렀어.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랬어. 그러던 어느날 노랫소리가 멈췄지. 다시 다시 노래가 흐르게 해야지.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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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형 2007-02-2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듣기 좋아.

슈뢰더 2007-02-2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