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친구를 만났다. 원래는 점심 약속이었는데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하다가 시간이 다 가버렸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 시계가 땡땡땡 열두번을 치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버리는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다. 돌아올때는 얼마나 열심히 걸었던지 입고 갔던 겉옷을 벗어들고도 땀이 났다.
친구는 도넛 가게에서 커피에 베이글을 곁들여 마시면서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책을 사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공중그네'를 읽고 있다. 공중 그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모든 그네는 공중에서 왔다갔다 하지 않는가? 왜 공중그네라고 했을까'였다. 공중그네는 서로 연결된 단편들 가운데 두 번째 이야기인데 그네로 공중곡예를 하는 고참 서커스 단원의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을 공중에서 받아주어야 하는 단원이 자꾸만 자신을 놓치고 다른 모든 단원들로부터도 소외를 당하는 것 같아서 괴로워한다.
책 뒷면에는 책을 읽다가 배꼽을 쥐고 웃어본 일이 얼마만인가, 라는 독자의 말을 인용한 광고문구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웃게 되지는 않았다. 지금 읽는 세번째 이야기,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강박에 시달리는 의사의 이야기는 확실히 웃기는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배를 잡고 웃지 않아도 좋다. 시간 날때 들춰보면서 부담없이 슬슬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다보니 서커스 구경을 하고 싶어졌다. 텔레비전에서 말고 서커스를 직접 본 기억은 없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서커스를 볼 수 있기는 할까? 어렸을 때는 동네 공터에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서커스단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가보질 못했다.
친구에게 '화성의 인류학자'를 선물하려고 찾았는데 보이지 않아서 서점의 직원에게 부탁했다. 그는 한참동안 내가 찾던 서가를 훓어보았다. 기다리다가 이제 그만 찾으시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찾을 수가 없어서 슬그머니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그때까지 창고라도 뒤지고 있었던 것일까? 지하실에서 양사나이에게 뇌수를 쪽쪽 빨아먹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 역시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하루키에 열광했다고 하면, 요즘 아이들은 오쿠다 히데오라고 한다.
하루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인천친구에게도 한 말이지만 내가 만난 세 명의 일본인들은 모두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루키를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언제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키라는 떫은 감이라도 씹은 모양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회사원 아저씨는 예의바른 웃음을 띄며 "하하, 하루키는 어려워서 말이죠."라고 말끝을 흐렸으며 똑똑하고 영어를 잘하던 19살 주리는 '흠, 그런 작가가 있기는 하지'라는 반응이었다.
친구를 만나서 책이나 영화 이야기등을 하면 역시 재미있다. 그리고 친구가 준 책을 통해 실제 만난 시간보다 더 오래 친구를 만난다. 인천친구도 내가 준 책을 재밌게 읽고 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