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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집에 있다는 것에 절망을 느꼈다. 나의 삶을 보내야 할 곳 가운데 지구상에서 이보다 나쁜 곳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았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팡세>, 단장 136.
암스테르담, 마드리드, 레이크디스트릭트, 시나이 사막, 프로방스,런던 해머스미스...지은이가 여행하는 곳들이다. 런던 해머스미스는 그가 사는 곳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자기 안방을 여행하고 책을 썼던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권고에 따라 그곳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로 작정한다.
'왜 우리는 떠나는가? 그리고 안내서에서 격찬을 하는 풍경이나 유적 따위를 보고서 실망을 하고 또 실망을 하는 자신에게 당혹감을 느끼는가?' 같은 질문에 답을 해보기도 하고, 비에 젖는 떡갈나무 아래서 깊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과연 시나이 사막 같은 웅장한 자연속에 있으면 신을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겠구나 싶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 한 구석에는 광활하고 거대한 자연을 가진 오스트레일리아 여행 계획이 희미하게 자리잡기도 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다.
여행에 대해서는 많은 글이 있다. 신문의 주말 섹션만 봐도 여행기사는 넘쳐난다. 여기를 가보라, 이 시기에 저곳을 놓치면 안된다고 말한다. 주말이 되면 언제나 어딘가 멀리 가보고 싶다. 금요일밤부터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가까운 곳에 걸어가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는 먼 곳에 갔더라면 들었을 수고와 돈을 생각하면서 뿌듯한 마음도 들지만 왠지 좋은 여행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자신이 늘, 너무나 아쉽다. 그래서 여름휴가 때나 며칠을 잡아 여행을 떠나보지만 그 동안의 아쉬움을 달랠만큼 기쁨을 느끼지도 않는다.
훌륭한 여행을 하는데 분홍과 흰색이 섞인 침대시트와 그와 짝을 이루는 파자마만 갖추면 된다는 주장(안방 여행)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지은이의 말마따나 일리가 있다. 눈과 머리를 훈련시키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도 강화할 수 있다. 여행을 하는데도, 여행을 하지 않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도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낯선 곳이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도 낯선 곳이다. 내가 살고 있다고 해서 내가 그 장소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긴장과 흥분과 기대감을 안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너를 보라, 네가 있는 곳을 보라고 이 유럽에 사는 낯선 남자가 말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