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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Emma 8
카오루 모리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엠마 번외편이 나왔다길래 뭐~ 별로~ 이런 심정이었다. 번외편은 TV에서 하는 시간 때우기용 NG 모음 정도로 생각하는지라. 사실 그렇지 않은가? 인기가 많은 작품이었으면 후속작을 내놨을 때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독자층이 있기 마련이니까 결코 손해볼 것 없는 장사라. 하지만 엠마8의 번외편은 번외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공들여서 만든 작품이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두 편으로 나누어서 실리는 '꿈의 크리스털 궁전'이다. 더그는 아내와 함께 만국박람회에 가고 싶어하지만 빠듯한 급료로는 어림없는 꿈이다. 아내 켈리는 냉정하게 그 사실을 깨우쳐주었으면서도 마음속에 남편의 소망을 담아둔다. 더그는 우연히 얻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한푼 두푼 박람회장에 갈 돈을 모은다. (여기까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기 위해 아내는 머리를 팔고 남편은, 아, 남편은 뭘 했더라? 하여간 뭘 했던 그 단편이 연상된다).
더그의 친구 알이 '드센 여자'라 평하는 켈리는 크고 냉정해 보이는 눈을 가졌다. 신혼이라는데 별로 그런 느낌도 안 나고 꼿꼿하고 늘 현실적으로 보이는 표정이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다. 그게 뭘까, 그게 뭘까...엠마7을 읽은지 오래되어서 켈리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잊고 있었던 편이 좋았다.
어찌어찌하여 만국박람회장에 간 켈리는 남편의 성화에 못이겨 기념품을 고른다. 켈리가 무엇을 고르는지 그 장을 넘겨야, 그 시간으로부터 몇 십년 떨어진 시간으로 가서야 독자는 알게 된다. 엠마의 손을 통해. 그리고 켈리를, 우리가 잘 아는 켈리를 다시 만나게 된다(뭐 기억력 좋은 독자는 이미 잘 알고 있었을 터이지만-_-;). 아, 반갑다. 오, 그리고 알도 반갑다. 엠마와는 전혀 상관없는데, 이것도 번외편이라 부르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기억이 되살아 온다. 꿈의 크리스털 궁전이 새겨진 그 기념품을 쥔 켈리에게 추억이 되살아오듯, 지난 이야기들이 되살아온다. 조금 뭉클하고 아프지만 왠지 행복하다. 앳되고 미숙해보이고 활기찬 더그 때문일까.
박람회장에서 더그가 아내를 물끄러미 보다가 볼을 꼬집는 장면.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찌푸리는 켈리. 작가는 그 짧은 장면을 긴 호흡으로 그렸다. 켈리에게도 독자에게도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거기서 엠마 8은 내게 번외편 이상의 의미가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