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욕 3부작 ㅣ Mr. Know 세계문학 17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폴 오스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그 이름 그대로 뉴욕3부작의 첫번째 중편소설 <유리의 도시>에 등장하기까지 한다. 그것도 꽤나 밉살맞은 모습으로 말이다. 아, 한참 감정이입을 하는 우리의 주인공 퀸에게 저녁식사까지 대접하면서 관대한 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혼란만 준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퀸이 스스로를 방안에 가두도록 사람은 바로 그의 창조자인 폴 오스터이다. 또한 소설속의 등장인물인 폴 오스터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던 작가 퀸이 느닷없이 탐정 노릇을 하게 되고 자멸-자멸이라는 단어 말고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과정을 쫓아가면서 폴 오스터를 원망하게 된다. 유리의 도시를 다 읽고 나니 목이 마르다. 몸이 땅으로 꺼질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기분이 무척 나쁘다. 그래, 오스터씨가 경고를 하긴 했었다. 탐정 오스터를 찾는 전화에 거짓으로 응함으로써 퀸의 삶이 돌이키게 될 수 없게 되어 버릴 것이라고. 그 말은 사실 이 소설은 아주 절망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으니 독자 여러분은 조심하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불길한 징조가 있었고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이 작가가 아주 밉살맞다.
하긴 퀸의 삶이 늘 커다란 동요도 갈등도 없이 흘러갔더다면 무슨 재미로 읽었겠느냐마는.
힘을 재충전하고서 두번째 소설을 읽는다. 오호, 점입가경이다. 블루는 블랙을 감시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자신은 블랙으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누가누구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한 사람의 정신분열상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정신마저 이상해지는 것 같다.
여기서 말수는 없다. 두번째 소설은 앞 뒤 소설의 다리 역할을 하는 듯 하다. 세번째 소설 <잠겨 있는 방>으로 갔다. '나'의 친구 팬쇼는 예전에 읽었던 폴 오스터의 책 <거대한 괴물>에 나오는 그 괴물같은 사람하고 비슷하다. 이미 네댓살 무렵부터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했던 사람. 어른들의 관습에 절은 판단에 반대할 줄 알았던 아이, 자신의 생을 걸고 온갖 가능성을 실험하던 한 인간이 왜 결국은 파멸의 길을 가야 한단 말이지? 어쩌면 그 파멸이라는 것도 세상의 기준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팬쇼 자신에게는 파멸이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작가가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단 말이다. 그래도 팬쇼의 전기를 준비하던 '내'가 소피와 두 아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만해도 감지덕지 할 일인지.
팬쇼의 여동생이 좀 궁금했는데 폴 오스터는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폴 오스터의 다음 소설을 읽으려면 기력을 충전해야할 것 같다. 언젠가는 다시 집어들겠지.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힘든 독서였다.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손에서 놓고 싶어도 놓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