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책을 세 권째 읽고 있다. 이벤트에 혹해서 산 책은 다름아닌 이 사람의 <행복의 건축>이었다. 책 한 권을 사면 증정용 책을 세 권 준다는 것이 이벤트였다.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동물원 가기>. 음 읽을 만하군, 하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여행의 기술>. 리뷰를 썼다. 재미있기도 했고 (러스킨의) 아름다움을 소요하려면 소묘와 글쓰기를 하라는 주장에 동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배고플 때 먹는 커피처럼 사치로운 독서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유익하다. 하긴 배고플 때나 배가 고프지 않을 때나 커피는 사치다.
지금 읽는 것은 <불안>. 내가 갖는 갈망, 실망, 만족감 따위가 내가 사는 사회와 시간에 의해 아주 많이 정해진다는 주장은 처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읽힌다.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잊고 살았다. 그런 사실을 앎으로써 실망과 불안감과 좌절감이 어느 정도 상쇄될까? 확실히 조금은 그렇다. 왜냐면 조금은 큰 틀에서, 또는 다른 각도에서 나를 보고, 나의 감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느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날빛이란 표현이 몇 번 나오는데 아마 daylight를 번역한 표현일 것이다. 그 날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어서 공기가 파르스름해질 때, 집들에도 산위에도 길위에도 적당한 어둠이 내려앉아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가리고 커다란 형체만을 남길 때, 언덕위의 키 큰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바람에 팔랑팔랑 나부끼는 모습이 뭘 닮았을까? 뭐라고 저걸 말해야할까? 나뭇잎들은 온 힘을 다해 기쁨을 누리는 것 같았다. 입을 모아 찬미가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나무가 등진, 아직 날빛이 가시지 않은 하늘이 팔랑거리는 이파리 사이로 반짝거렸다. 수많은 큰 별이 한데 모인 것 같았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