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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관심이 없어 아는 것도 없다. 그런데 소설 말미 임금이 출성을 결심할 무렵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겠다고 나서는 윤집과 오달제라는 이름만큼은 오랜 친구 이름만큼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최명길도 김상헌도 모르고, 심지어 그 때 왕이 인조인지도 몰랐던 내가 그 두 이름을 잘 기억하는 까닭은 이 치욕의 역사에서도 지푸라기 같은 자존심 하나 건져 보려는 지배자들의 노력이 면면히,몇 백년이 되도록 이어져 온 까닭일까.
전쟁의 모습은 참혹했다. 도성의 부녀자들을 잡아 강을 건너던 청의 군대는 엄마 등에 업혀 있던 아이들을 떼어내어 언 강에 처박았다. 몸이 성치 않은 포로들도 발에 채여 산 채로 얼음물에 빠졌다. 남한산성 내 부상병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량이 모자라는 까닭에 그들은 성 내 사찰에 방치되어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
조선의 왕은 치욕스럽게 항복한다. 청의 지배자 칸에게 절을 세 번한다. 그 때마다 풍악이 울리고 조선의 기녀들이 춤을 춘다. 칸이 술 석잔을 권한다. 한 잔에 세 번 절을 하고 받는다. 그의 자식들은 새로운 대장의 나라에 끌려 간다.
그런 일이 일어났더란다. 기록과 남한산성의 돌이 그 증거란다. 결국 당할 치욕이었더라면 참혹함을 겪지 않는 쪽을 택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도 소용없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두들겨 패는 일방적인 전쟁(말 그대로 병자 년의 난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테지)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무참히 죽었다. 소수는 역사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고 다수는 이름 없이 사라졌다. 하긴 이름이 기록된다한들 죽은 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름의 기록은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니.
나중에 남한산성이나 강화도에 가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