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이 쓴 추리소설, '다섯번째 여자1, 2'를 다시 읽었다.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 읽어보니 거의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덕분에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한밤중에 읽는데 자꾸 오싹오싹했다.  

표지그림이 너무 음침하게 느껴져서 도중에 표지를 싸가지고 읽을 정도였다.  

 

오, 축복받은 나의 망각능력이여.  

책을 다시 살 필요가 없겠다.  

그냥 집에 있는 책들을 다시 읽으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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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내가 만들어 내는 우울함. 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지난 여름부터 지금까지 쭈욱.  

정말 어찌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꾸역꾸역 

하루하루 생활해 나가고는 있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큰일인데.

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아주 다른 그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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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단정하다. 인물 묘사를 할 때도 '단정한 옆 얼굴' 같은 표현을 즐겨 쓰는 이 소설은 소설 자체의 인상도 단정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런데 너무 단정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는 빈틈이 없어서 차가운 인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꽤 오래전부터 온다 리쿠의 책을 읽고 싶었다. 좋은 평도 많았고 언젠가는 이 사람의 책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미루고 미루었던 것은 맛있는 것은 그만큼 아껴먹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대가...정말 컸다.

머리 속에 모든 것을 넣어둘 수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이들은 머리 속이 꽉 차면 기능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억들을 정리하기 위해 일주일씩 거풍을 하기도 한다. 막내 아들은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읽는 능력을 통해 이웃의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그 아들을 화해시킨다.

설핏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이야기 속에서 담아내려는 감동이 좀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온다 리쿠의 소설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힘을 주어서 결말을 지으려는 것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 잘 읽다가도 마음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소설 어딘가에 현재 일본 사람들의 인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청결하고, 긍정적이고, 자기 인생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얼굴'이었으나 '지금은 다들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없고, 좀 자학적이고, 뻔뻔스러운 얼굴'이라고 등장 인물 가운데 하나가 말한다. 물론 다른 등장 인물이 그런 견해를 바로 반박하기는 했지만 그런 대목은 작가의 은밀한 도덕적인 설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잔치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이 너 표정이 그게 뭐야, 하고 면박을 주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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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꾸준히 보는 드라마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는, <엄마가 뿔났다>다.

뭐 그런 속물스런 드라마를 좋아하느냐는 말들도 할터이지만 어쨌든 그것밖에는 볼 수 밖에 없는 사정도 있고, 재미도 있다.

영미가 부잣집에 결혼을 하고, 변호사들끼리 결혼을 하고 나서는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된 것 같아 좀 관심이 뜸해지기도 했다. 결혼을 하면 뭐 다 해결되는 건가. 사실, 많은 드라마가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의 과정을 보여주다가 결혼을 하며 끝나기도 하고 그런 뻔한 전개가 비판받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결혼 후의 그 지긋지긋한 뒷 이야기까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 드라마는 결혼식을 줄줄이 치른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종종 감탄하고 하는 것은 강부자의 그 긴, 대사를 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강부자에게 그 역할의 혼이 씌어 그냥 내뱉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독백들인데 요즈음엔 그것이 집나간 김혜자에 대한 독설로만 변해서 듣기에 상당히  껄끄럽다. 하지만 또 다른 재미의 요소가 생겨났으니 바로 장미희에게 네네 일변도로 나오던 김용건이 태도를 확 바꿈에 따라 아주 다양한 표정을 짓게 되는데 그 표현이 또 너무 기가 막히더라는 것이다.

돌아오는 주말에도 역시 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사실 드라마 보기 보다 부디 더 재미있는 일이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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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육아서적 읽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 <부모와 아이사이>, <사랑의 매는 없다>, <아이와 그림책>. 그런데 <세상의 모든 엄마를 위해>를 읽으며 슬슬 지치기 시작하더니 <스마트 러브>를 읽다가는 중간 쯤 책갈피를 끼워놓고 다른 장르로 넘어가 버렸다. 육아 장르......이거 진짜 중독성 있는 장르라니까. 어디로 넘어가 버렸나 하면 작년에 나왔을 때 엄청 관심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고 있던 비실용서 장르 중 추리문학 계열인 <비밀의 계절>이다. 서점에 갔을 때 책 제목이 생각 나지 않아 직원에게

"저기 제목이 뭐뭐의 계절이고요 번역자가 이윤기인데 찾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봤다. 직원은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문학 코너의 출판사별로 정리된 서가로 가서 두 권짜리라면서 두툼한 책들을 안겨주었다. 재미있지만 정말 길긴 길었다. 비밀의 계절은 나중에 리뷰를 써봐야지.

하여간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육아서적들 읽다가 어째서 지쳐버렸는가, 이다. 그것은 아마 한동안 육아서적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난 '고양이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는 그 유명한 일본의 독서가(그 사람 여행기도 하나 사서 읽었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나고 검색 하면 찾겠지만 그 마저 귀찮다. 아, 다치바나 뭐라던가....)도 아니고 좀체 철저한 면이 없는 성격인 탓에 처음엔 열심이던 일도 한동안 파고들다 보면 점차 신경이 닳아 없어져 버릴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다가 나자빠져 버린다.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식탁에 앉을 때마다 남편에게 '책에서 그런는데.....'로 시작하여 책 내용을 요약한 자못 열띤 육아 강의가 이어지고는 했다. 정말 책들마다 날 감동시키고는 했기 때문이다. 진작 이런 책을 읽지 않았던 것에 대한 사실은 불필요한 후회도 약간, 그래도 늦지 않게 읽었다는 안도감에, 나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엄마도 드물지 않을 거라는 정말이지 되도 않는 우월감까지, 이런 저런 감정을 불어넣어 주었다.

육아서적을 읽게 된 것은 사실은 엄마로서 아이를 기른다는 일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웃 아낙네와 빚어진 꽤 심각한 마찰과 그로 인한 후유증이었다. 그는 육아의 경험도 나보다 많고 그 분야의 책도 자기는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 아이를 기른다는 일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한다는 육아서적에 의지한다는 것이 탐탁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생각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고 관련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인터넷 다시보기로 내리 몇 시간 보기도 하면서 아, 이래서 다른 엄마들은 이렇게 행동했던 것이겠구나, 내 경험과 비교할 수 있었다. 마찰을 빚었던 아낙네의 말과 행동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의 독단적인 언행이 다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을 하게 한데는 나의 잘못도 컸다. 무엇보다 우리가 엄마들이고 자기 자식을 보호하고자 하는 이기심에 나도 상대방도 철저하게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한참 후에도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어쩌면 남과 남의 자식을 배려하는 나의 말과 행동도 공동체 속에서 나와 내 자식을 보호하기 위한 이기심에서 나오는 행동일 터이다. 그 보다는 고상하고 고차원적인 무엇, 그러니까 이타심의 발로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람이 늘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아들이 행복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고, 그 행복해지는 이유가 남보다 우월한 인간이기 때문에,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게 되어서이기 때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렇게 바라는 까닭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얻는 행복은 결코 영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행복이어야 할까. 깊고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시련에 흔들리지 않는 행복. 그런 행복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그런 행복은 다른 사람을 이김으로써 얻는 행복보다 더 얻기 쉬운 것일까. <스마트 러브>에서는 자식은 부모로부터 받는 지혜로운 사랑을 통해 그런 행복을 얻는다지만, 정말 그럴까.

<스마트 러브>를 읽다가 지친 이유는 아까 말한 것처럼 한동안 육아서적만 읽었기 때문임도 분명하지만 끊임없이 등장하는 '불행했으나 스마트 러브를 실천한 이유로 행복해진 아이들'의 사례 때문이기도 하다. 너무나 예쁘기만 한 동화같은 이야기들 때문에.

우리가 거짓말하는 아이를 질색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세상이 거짓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 위선적이지 않고서야 가능할까. 정말 그런 사람을 딱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아, 이런 염세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 애 엄마가, 참.

나름 탐독의 결론을 내려보자. 육아서적은 도움이 된다. 특히 어른이 된지 나처럼 오래된 사람에게는.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다. 그들의 특성을 되새겨보거나 아이였을 때는 오히려 몰랐던 사실들을 이해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보노보노의 작가는 정말 대단하다. 나는 어릴 적의 기억들을, 특히 어른들에게 말했다가는 당장 무시당했을 만한 생각들을 그렇게 세세하게 기억하는 작가에게 정말 감탄한다. 앗, 또 얘기가 새버렸네.

어떤 부모가 되어야할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내가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나 자신이 좋은 인간이 아니면서 좋은 부모가 될 수는 없다는 것. 아니, 이 '좋은'이라는 형용사처럼 애매한 말도 없는데도, 좋은 인간'이라고 하면 그게 뭘까 하고 인상이 찌푸려지면서도 '좋은 부모'라고 하면 그냥 딱 알 것 같은 이유는 뭐지?

아무튼 재밌다. 아이 엄마가 아닐때는 안 해보던 고민도 해보게 되고. 우리 보노보노가 지금 막 깼다. 밥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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