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모르텔 - 불멸의 꿈은 인간이나 신이나...

'필멸의 인간은 불멸의 꿈을 꾼다(변신이야기의 부제, 김선자 씀)'

불멸의 꿈은 인간만 아니라 신도 꾼다. 다만 신들에게 필멸의 확률이 매우 낮을 뿐이다. 호러스는 7번째이자 마지막 부활을  시도한다. 왕따 당한 신처럼 그는 외롭고 질긴 부활의 꿈을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에게 있어 성모 마리아가 신의 아들 예수를 잉태한 것처럼 질은 신을 잉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 아마도......

2095년 가까운 미래, 이집트, 불멸의 신들,.......별로 색 다른 점은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좀처럼 사건의 전개과정과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단지 '임모르텔(Immortel)'에 일관되게 접근해 갈 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지겹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이런 단조로운 전개 때문일지도 모른다. 원작이었던 만화와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긴 얘기는 없다. 화면 가득한 실사와 CG의 장면 배치만이 있을 뿐이다. 만화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불멸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끝임없은 윤회의 장면만이 연상된다. 소생이나 환생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함으로써 끝임없이 인간은 불멸한 존재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부서진 다리를 쇠덩이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을 통해 다시 세상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 조차 신이길 바랬던 것은 아닐까? 

이 만화의 원작자인 엥키 빌랄 감독이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우먼트랩(원제:Immortal)'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소개되었다. 그의 눈빛에서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직접해야만 하는 작가라는게 느껴진다. 그의 깊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냥 가볍게 영화 한 편 보아선 알 수 없다. 만화도 읽고 영화를 보았지만 여전히 안개 속에 갇혀 있다. 다소 복합적인 세계관이 동서양으로 이분화된 세계관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은 듯 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굳이 따지자면 영화감독으로로서의 자질보다 만화가로서의 작가적 기질이 더 나은 편이다.  어차피 다작을 하기 보다 고집스러운 작품 세계를 주장하고 있는 듯 하니 그의 행보는 여전히 기대된다.

신답지 않은 인간과 인간이기를 거부한 타락한 존재들의 공존만이 어지러울 뿐이다.

세상이 그렇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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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VS 제이슨 - B급 영화의 질김

여름에는 공포영화라는 공식에 딴지 걸 이유는 없다. 나이트메어와 13일의 금요일로 대변되는 두 인물의 영화는 대표적인 B급 공포물이다. B급 영화치곤 꽤 많은 시리즈물이 제작되었다. 때 지난 슬러시 공포물을 다시 거론할 만큼 헐리웃은 소재 빈곤에 허덕이나 보다.

솔직히 공포영화에는 흥미가 없다. 모 케이블TV의 심야영화제 시사회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비디오로도 절대 보질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3편 중 마지막 작품이라 도중에 졸기까지 했다. 앞에서는 피 튀기는 장면에 비명까지 들리는데.......관객 중 그 누구도 비명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자느라 정신이 없었던가 보다)

최근 공포영화의 주류는 동양적 음산한 풍이 더 매력적이다. 원색적인 색채나 청각을 찢는 자극은 절제된 채 관객으로 하여금 심리적 압박을 선사한다. 소재의 빈곤이 부른 이 작품은 B급 영화의 질김이라고 폄하할 수 밖에 없다.

이 작품 외에도 '에어리언 VS 프레데터' 도 곧 개봉예정이다.

에어리언과 프레데터는 B급에 비해서 작품성도 인정받은 작품이다. 물론 영화의 성공과 함께 감독과 배우의 성공도 연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뭐 피차 별 차이는 없는 대결구도이지만 그나마 스토리 전개에 있어 좀 낫지 않을까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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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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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먹고 살기 위해 돌아 다녔다던가

기자가 글 쓴다는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문학을 한다는 것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게다가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면 더더욱 그러할 듯 하다.

김훈의 글은 어렵고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기사를 쓰면서도 사건을 전달하기 보다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는게 옳을 듯 하다. 그가 정식으로 글 쓰기를 배우지 않았다고 뭐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언제부턴가 그의 글이 간결해지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들었다. 오히려 이런 그의 글쓰기가 더 재미있다. 그가 최근 인정받은 것도 이와 같다.

풍륜을 이끌고 우리 국토를 돌아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내게 있어 부러움의 존재다. 힘겹게 그 바퀴를 돌렸을 그의 용기가 부럽다. 밥 벌어먹기 힘들 때 돈벌이가 되어줄 것이라며 아내를 위로하며 자전거 안장 위에서 글을 썼을 그가 몹시 부럽다.

여행이란 도착지가 목적이기 보다 출발이 목적이다. 늘상 계획만 세우고 배낭만 집구석에 처박혀 있을 때마다 여행은 하나의 동경에 불과했다. 움직일 수 있을 때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만 한다. 정착민이 되기 보다 유목민의 진취적인 기상을 느꼈으면 한다.

수필을 좋아하진 않지만 풍륜과 함께 한 김훈의 여행기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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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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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 다무라 카프카는 이미 어른이었다.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글은 장편보다 단편에 더 힘이 느껴진다. '상실의 시대'도 그랬지만 '해변의 카프카'도 정말 힘겹게 읽었다. 한숨에 읽기에는 너무나 벅찼다. 상권을 읽는데 몇 번을 놓았다 들었는지 그나마 하권은 1개월 이내에 끝냈다. 주욱 읽는다는 기분보다 맥이 끊어지는 듯 했다. 하나의 사건을 향해 가면서도 출발점이 다른 인물들의 시점을 전개하다보니 그런 점이 있었던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이 그러하 듯 성장소설이다. 작가가 순수원형이라고 칭하는 15세의 소년 다무라 카프카의 성장에 얽힌 사건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야 하는게 이 소설의 목표였다. 또 한 명, 늦깍이로 성장한 호시노라는 청년도 있다. 한동안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이었던 호시노와 동명이인이다. 솔직히 다무라 보다 호시노라는 청년의 성장이 놀라웁다. 비록 그의 성장은 다소 엉뚱하지만 스스로 느끼고 깨달음의 길에 이르렀다는 점은 다무라 보다 높이 살 만하다. 다무라는 15세에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듯 하다. 그의 나이를 볼 때 성장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그는 호시노 보다 성장가능성이 희박한 인물이 되어버린 듯 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다무라가 15세의 소년인지 애늙은이인지를 도통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어른이고 싶어했다기 보다 (소설의 표현을 빌자면 '터프해지고 싶었다기 보다') 이미 어른 행세를 하고 있었다. 놀랄만한 신체적 성숙도 그의 정신적 성장을 따라가기엔 오히려 벅찼다. 그의 혼란은 육체와 정신의 부조화에서 오는 불완전성에 있었던 것 같다. 주변 환경과 인물의 비밀스러움도 한 몫을 한 듯 하다.

인간의 근원적 고민과 삶의 명제에 대해 얘기했다지만 알 수 없는 얘기와 사건이 난무하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사건과 인물이 후반부로 가면서 차츰 정렬되고는 있긴 하지만 궁긍적으로 내가 읽기에 실패했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었던 것 같다. 900쪽에 가까운 장편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나도 성장한 것일까?

글 말미에 이르면 하루키의 지적능력에 대한 자랑이 끊임없이 나온다. 음악, 문학, 미술 등 각종 문화에 대한 박식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등장인물을 통해 언급된다. 지겹도록.... 글 깨나 쓴다는 작가들은 한 번씩 언급하는 '메타포'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아~~그는 하루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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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엔 수다만 있고 음악이 없다

뭔 소리가 궁금해서 클릭했다면 당신은 최근에 라디오를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저런~하고 클릭했다면 당신은 라디오 매니어다. ㅋㅋㅋ 최소한 이 글 내용이 궁금했을 당신은 TV보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일 듯 싶다.

라디오 매니아라고 부를 순 없지만 영화 못지 않게 음악을 중요시하고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는 내게 있어 소중한 존재다. MP3도 있고 가끔 인터넷 방송도 듣고 있다. 하지만 늘 가깝게 느껴지고 끌리는 것은 라디오다. 하루 종일 같은 장르의 음악만 줄창듣기엔 내 귀는 두텁지 않다. 이것도 듣고 싶고 저것도 듣고 싶은 변덕쟁이다. 가끔 인간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만 가식적이고 인기성 멘트와 출석으로 일관된 인터넷 방송은 왠지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라디오가 좋다. 심심할 때 노래 틀어주고 재미난 얘기도 해 준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지난 5월 KBS, MBC, SBS, CBS 음악 FM 채널의 16개 프로그램을 모니터한 결과 1시간당 평균 방송 곡수는 8.38곡으로 방송시간의 5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방송 시간의 반 정도만 음악으로 채워지고 있는 셈이다. 조사 대상 프로그램 가운데 MBC ‘이소라의 FM음악도시’가 4.3곡으로 가장 적었고 KBS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11.2곡으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관련기사 URL : 문화일보 2004년 9월21일 '라디오엔 수다만 있고 음악이 없다)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무슨 할 말이 많아서 음악보다 수다가 더 많았을까? 대개 음악 얘기보다 그런 잡스러운 이야기가 많았기에 수다라는 표현이 적당했던 것일게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사고로 인해 모 신문 기사에서 전문DJ의 부재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음악을 얘기하고 음악을 들려주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새벽으로 쫓겨나 있다. 멘트 없이 한 시간 동안 음악만 들려주는 그런 DJ가 그리운 시대다. 아마 그런 DJ는 방송국에서 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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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9-16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은 노래만 스트레이트로 쭉 틀어주는 방송이 그리워요 대체 무슨 수다들이 그렇게 많은지... 시시껄렁한 DJ 들의 농담따먹기 때문에 방송 듣기 싫어질 때가 많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