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 편집장의 황당한 업무 분담 방식에 수긍하지 않고 항의했고, 내가 요청한 방식대로 진행하기로 했으나 기분은 녹아서 줄줄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것 마냥 찝찝했다. 내가 매일 바치는 물리적인 시간과 나의 노력, 사생활도 없이 매달리는 이런 회사생활이 나에게 가져다 주는 건 뭘까. 알량한 월급? 그리고 몇가지 부수적인 것. 그런 생각들로 또 다시 늦은 시간까지 잠을 청하지 못했다.
낡은 에어컨은 소리만 요란하고는 그다지 시원하지 않다. 갑자기 무더위, 한여름이 되어 있는 날씨. 저 낡아빠진 에어컨 같구나, 나는. 언제나 소리만 요란할뿐 좀처럼 제 구실을 다 못하고 있다. 스물의 내가 비웃던 그런 삼십대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로베르네 집에서 카프리 한 병으로 목을 축이고 나자 더는 무엇도 하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돌아온 토요일 저녁. 호주에서 사온 제법 값나가는 와인을 땄으나 2잔 마시고 더는 못먹겠어서 마개를 다시 막아놓고 중국과 스위스의 충구 경기를 틀어놓은 채로 잠이 들었다.
끔찍한 지경이 된 방을 치워야겠다. 칠이 다 벗겨진 손톱을 관리해야겠고, 다음주 인터뷰 예정인 ##의 책을 미리 읽어두어야 겠다. 월요일에 업무 과부하를 피하려면 내가 처리해야 할 기획안 두 개 중 하나는 오늘 어느정도 마무리 해두는게 좋겠다.
이런 식으로 나는 충직한 개가 되어 가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