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신간 같은 리메이크 출간 많다
[주간조선 2006-04-25 10:53]

콘텐츠 좋은데 묻혀진 책이나 절판된 유명 서적을 화려한 이미지로 보강해 재출간

영화와 음반에도 리메이크가 있듯 출판에도 리메이크가 있다. 리메이크가 될 정도라면 일단 품질은 믿을 만하다. 그래서 리메이크된 책을 보면 우선 반갑다. 최근 국내 작품으로는 최인호씨의 소설 ‘겨울 나그네’ ‘지구인’, 이청준씨의 소설 ‘눈길’ 등이 리메이크됐고, 번역서로는 허브 코엔의 ‘협상의 법칙’, 쇼펜 하우어의 ‘토론의 법칙’ 등이 리메이크돼 눈길을 끌었다.

재미난 건 1993년 2월 ‘출간저널’이 ‘묵은 책 리바이벌, 왜 붐 이루나’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현상의 유행이유를 짚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리메이크란 주기적으로 유행한다는 것이다. 개정작업을 이유로, 혹은 절판되었기 때문에 진행되는 리메이크는 5년이나 10년 주기로 독자의 세대변화 혹은 감각변화에 맞춰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이뤄지는 리메이크 중 가장 빈번한 예는 ‘낡은 옷’을 갈아입는 경우다. 옷이나 장신구도 유행을 타듯 책도 유행을 탄다. 요즘의 대세는 화려하게 치장한 이미지 중심의 책이다. 사실 출판계에서 이미지를 올 컬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는다. 따라서 풍부한 그림과 사진 자료 등이 필수적인 책은 감각적으로 디자인하고 사진 역시 올 컬러로 교체하여 개정판을 내는 것이 유행을 타고 있다.

1999년 건축잡지 ‘이상건축’에서 초간됐던 ‘한국건축의 재발견’이 돌베개에서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로 개정 증보판이 나온 것이 좋은 사례다. 한국 건축의 전반을 충실하게 다룬 고전이었으나 초간본 출판사 사정으로 책은 절판상태였다. 이번에 다시 출간된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는 내용을 수정, 보완하고 편집을 요즘 감각에 맞게 다시 했다. 무엇보다 사진을 올 컬러로 교체해서 읽기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아름다운 고전으로 다시 선보였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미국사’는 1990년대 초에 고려원미디어에서 출간 후 절판됐으나 2004년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로 재출간됐다. 원서의 개정판이 나온 것이 재출간의 첫째 이유였지만 책도 다시 만들다시피 했다. 원서에는 한 장도 없었던 사진을 출판사에서 360컷이나 구해 책에 실어 한국판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10여년 전 고려원에서 나왔던 ‘미국 대공황’은 ‘공황’에 초점을 맞춰 경제경영서 느낌으로 출간됐던 책이다. 이번에 ‘원더풀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다시 완역 출간하며 무한한 가능성과 낭만이 공존했던 미국의 1920년대를 비주얼하게 복원해냈다. 편집자가 ‘사진자료 없이 독자가 책을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했고, 결국 원서에는 한 컷도 없었던 사진을 일일이 찾아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결과다.

만드는 이가 품을 팔아 오늘의 입맛에 다시 맞춘 책이 있는가 하면 독자의 간절한 욕망이 리메이크 서적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재발견되는 책은 과거 동시상영관을 전전했던 영화 ‘아비정전’처럼 일종의 ‘저주받은 걸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94년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으로 출간됐던 박찬욱 감독의 책은 2005년 ‘박찬욱의 오마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은 ‘올드보이’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을 펴낼 당시 박 감독은 불우한 청년이었다. 글은 곧잘 쓰는데 영화는 실패하는 불가사의한 인물로 여겨졌지만, ‘JSA공동경비구역’ 이후 그 시절은 박찬욱 감독의 신화화에 적절한 장치가 된 것도 사실이다.

박 감독은 ‘글만 잘 쓰는 감독지망생’이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유명 감독’이 됐고 영화기자, 영화학도, 영화 매니아가 박 감독의 책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독자의 바람을 알아챈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개정판을 냈고, 더불어 글 잘 쓰기로 유명한 감독이 쓴 에세이, 셀프 인터뷰, 제작일지 등을 모아 박찬욱이 말하는 자신에 관한 책 ‘박찬욱의 몽타주’가 함께 출간되는 의외의 결과를 얻기도 했다.

페터 회의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역시 독자가 헌책방을 뒤지며 애타게 찾던 책으로, 2005년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으로 재출간됐고 출간 후에도 인터넷 서점 독자들의 열렬한 홍보 덕을 봤다.

KBS TV ‘책을 말하다’에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소개된 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알랭 드 보통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1990년대 중반 이미 몇 권의 책이 소개됐다. 그러나 대개의 저주 받은 운명이 그러하듯 당대의 독자에게 사랑 받지 못한 죄로 길거리 좌판에서, 변두리 서점에서 종이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덤핑 처분되는 신세를 이어왔다. 그런데 왜 제목을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로 지었을까 하는 독자의 볼멘소리를 들으면서도 책은 입에서 입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또 고급 에세이 ‘여행의 기술’이 9000부 가깝게 팔려나갈 정도로 이제는 국내에 충성도 높은 알랭 드 보통의 매니아들이 생겨났다. 2005년에는 매니아 사이에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더불어 최고라고 평가 받는 ‘우리는 사랑일까’ 역시 리메이크 출판됐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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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ticket 2006-04-25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도 낭패 본 일이 많아요,,제목도 틀리고, 출판사도 틀리고,,마치 새로 나온 책인냥...

해적오리 2006-04-2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그렇군요. 책 살때 좀 더 신중해야겟네요.

이리스 2006-04-2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 그럴때는 정말 열받죠. -.-
날나리님 / 그러게 말이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