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과 연애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연애교본’들… 어줍짢은 밀고 당기기 기술이 아닌 당신의 자존감을 높여줄 책을 찾아서
▣ 김양 실연 8개월차 olddochy@paran.com
또다시 이별이다. 그래 정론직필한다. 또 차였다.
필드 경력 10여 년. 남자도 만날 만큼… 은 아니지만 꾸준히 만났고, 6개월 미만의 연애까지 더하면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도 버겁다. 이른바 ‘비연애 체질’은 아니란 뜻이다. 그런데 왜! 스물다섯 이후의 연애 승률은 1할2푼5리에서 머무느냐 말이다. 코스도 항상 비슷하다. 처음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못 이기는 척 만나다가 내가 눈이 뒤집힐 때쯤엔 그의 연락이 뜸해지고 결국 떠나간다. 헤어질 때의 상황은 이젠 유형별로 정리할 수 있다. 전화 오는 횟수가 줄어드는 게 으뜸이요,
|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로 정신적인 학대를 일삼는다면 갈 데까지 간 관계다. 헤어질 때 날리는 멘트도 눈빛만 보면 대충 안다. “내가 나쁜 놈이야…”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넌 나한테 과분해” 등인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너 싫다”다. 누가 먼저 끝을 냈는지에 연연하는 것은 어리석다지만, 그건 정말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다. 차이면… 정말 기분 더럽다.
발에 맞지 않는 구두는 집어던져!
500일 기념일을 앞둔 지난해 여름, 오동통한 MSN 메신저 아이콘과 꼭 닮은 그가 전화기 너머로 뒤통수를 쳤다. “널 평생 사랑할 자신이 없”단다. 아침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게 분명하다. 그런 진부한 멘트를 날리다니. “×새끼”라며 쏘아붙였지만, 길고 긴 불면의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마다 애꿎은 베개를 주먹으로 치며 “이럴 순 없는 거야”라며 대성통곡했고, 눈에서 레이저빔이 나올 정도로 휴대전화만 쏘아봤다. 며칠 밤낮 동안 그렇게 머리를 싸맨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머리가 살짝 돌았던 거야. 그럼그럼. 막상 내 얼굴을 보면 맘이 달라질걸? 나만 한 애가 어디 있다고…(으쓱).”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며 콩닥대던 가슴을 달래던 날, 그 책을 만난 것은 필시 하나님의 계시였다. <끝났으니까 끝났다고 하지>(그렉 버렌트 & 아미라 루오톨라 버렌트 지음, 해냄 펴냄). 이 책은 막 실연당해 하늘이 노래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언니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첫 장을 열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 누군가에게 버림받았거나, 이제 막 실연당했거나, 여전히 옛 애인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앞에 나열된 이유 모두를 떠안고 있을 것이다.”
오 마이 갓, 어떻게 아셨나요.
“당장은 헤어져서는 안 될 이유를 찾아내느라 정신이 없겠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긴 듯 아프고, 머릿속에선 그 고통을 없앨 방법을 찾아내느라 급급하리라. 하지만 잊지 말라! 어떤 이유를 댄다 해도 결국 말도 안 되는 핑계란 사실을. 현실은 냉정하다.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것을 송두리째 뒤엎을 차이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둘의 관계가 영원하리라는 믿음의 있음과 없음이다.”
△ 각 서점마다 연애실용서 코너는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다. 현란한 테크닉을 나열한 책보다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 두고두고 도움된다.(사진/ 곽윤섭 기자)
|
들고 있던 펜으로 줄을 쳤다. 어찌나 기를 집중했던지 뒷장까지 자국이 남았다. 그래, 끝났으니까 끝났다는 거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체념의 단계로 진입은 했는데,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이 시간이 지나긴 할까.
“당신이 함께했던 그 사람은 당신을 ‘내 여자’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혹은 당신이 결정했다. 아니면, 두 사람 모두 그렇게 결정했다. 어느 쪽이든 이미 끝난 일이다. 그 구두에 아무리 발을 구겨넣어도 맞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당장 벗어던지길.”
이별을 잘하는 법 7가지
책은 ‘이별을 잘하는 방법 7가지’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그놈’이라는 독을 빼기 위한 처절한 사투가 시작됐다. 웅녀 언니가 동굴에 처박혀 쑥과 마늘만 먹을 때 심정이 이랬을까. 33년 인생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의 조언에 올인한 것은, 돌아보면 ‘생존본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원칙 1. 60일 동안은 그와 절대 만나지 않기. 두 달은 완전한 회복에 필요한 정서적 거리를 만들어주는 기간이란다. 미친 척하고 전화할까봐 집 전화기는 치워두고, 그 자리에는 메모를 붙였다. ‘침묵하는 자가 승리한다.’ 휴대전화 첫 화면에는 “안 돼!!”라고 써넣었다. 술 마시고 실수할까봐 그 좋아하는 술까지 줄였다.
원칙 2. 이별친구 만들기. 그동안 속없이 시시덕거리고 다닌 덕인지, 다행히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한 친구는 초저녁부터 집에 엎어져 있던 나를 찾아와 빈대떡 2장을 수줍게(?) 건넸고, 내가 먹는 것에 약하다는 걸 빤히 아는 다른 친구는 “연애할 때도 연락 좀 하고 살아라”라며 눈은 흘겼지만 맥주와 된장찌개라는 퓨전식 조합으로 날 위로했다. 너무나 점잖고 진중했던 또 다른 친구는 ‘그놈’한테 전화하고 싶을 땐 차라리 자기한테 하라며, 처절한 경험담을 털어놓아 놀라기도 했다. (얘들아, 고마워~!)
원칙 3.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는 물건은 다 버리기. 처음에는 모든 것에 상처받는다. 함께 듣던 음악, 같이 본 영화, 심지어 MSN 메신저 아이콘만 봐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우선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사진, 책상 앞에 세워둔 사진을 싹 없앴고, 미니홈피의 문도 닫았다. 빌린 책과 CD, 선물은 돈 되는 것만 빼놓고는 몽땅 상자에 넣어 그의 집으로 보내버렸다. 착불로 했다. 소심한 복수였다.
원칙 4. 끊임없이 움직이기. 주말이면 이불로 동굴을 만들고, 절대 100m 이상은 걷지 않으며, 운동이란 숨쉬기 운동과 새마을 운동밖에 몰랐지만, 이별 뒤 취미생활이라는 걸 시작했다. 뜨개질이다. 허벅지에 십자수 놓는 대신, 목도리의 겉뜨기, 안뜨기에 집중했다. 목도리 5개가 금세 생겼다.
원칙 5. 잘 입고 잘 먹고 잘 자기. 홈쇼핑은 폐인 수준이요, 인터넷 쇼핑은 중독 수준인 터라 이 원칙을 지키기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위로한답시고, 나에게 너무 많은 선물을 사주는 바람에 그 다음달 날아온 카드 영수증에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다.
원칙 6. 헤어진 연인에게 돌아가지 않기. 두말하면 잔소리.
원칙 7. 자신감 되찾기. 거울을 봤다. ‘흠… 이 정도면 쓸 만하군(이건 주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는 나를 ‘세뇌’시켜준 덕임). 게다가 성격이 좋잖아. ‘메신저’에 나를 던지기는 좀 아깝지.
그들은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터질 것 같던 심장도, 멈춰버릴 것 같던 시간도 해독 기간 한 달차로 접어들면서 무뎌지기 시작했다. 두 달째부터는 그 아이의 얼굴이 가물거리더니, 셋째·넷째 달 지나면서는 “내가 미친년이었지” 하며 혀를 내두른다. ‘시간이 약’이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은 지당하고 현명했다.
하지만 매번 이런 아픔을 견딜 순 없는 법. 실연을 극복(!)한 뒤, 나의 연애를 되돌아봤다. ‘난 왜 안 될까.’ 내 사연을 시시콜콜 아는 주위의 독한 인간들이 “너 책 하나 써라. ‘까이기 전에 까라.’ 제목 나오네”라며 놀려대는 지경에 이르니, 과거의 연애 패턴을 되새김질해볼 필요가 있었다. 연애교본의 고전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그렉 버렌트 & 리즈 투칠로 지음, 해냄 펴냄)에 따르면, 그동안 내가 만나고 헤어진 그 남자들은 모두 나에게 반하지 않은 남자들이다.
“당신에게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전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당신과 데이트하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당신과 섹스하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다른 여자에게 한눈판 남자라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술기운에만 당신을 찾는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결혼 이야기를 피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를 독차지할 수 없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당신의 감정을 무시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 책을 보니, 그동안 내가 만나고 차였던 그들은 모두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나를 떠났다가 5년 뒤 다시 연락해 두어 달 만나다 딴년이랑 결혼해 날 두 번 차버린 그놈, 결혼 얘기만 나오면 슬금슬금 말꼬리를 돌리던 그 녀석, 양다리 걸치다가 제대로 걸렸던 그 자식 모두 나에게 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내 인연이 아닐 수밖에. 내 안목은 특별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도 특별하며, 내 연애도 특별하다는 생각은 망상이었던 걸까. 어떻게 알았는지, 이 책은 마지막에 “당신이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라며 쐐기를 박는다. 젠장, 나한테 반한 남자는 어딨냐고요.
하지만 나는 정녕 ‘파블로프의 개’였던 것이다. 아무리 차이고 까여도 새로운 사랑이 오면 침 질질 흘리며 언제든 올인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나이 서른이 훌쩍 넘으니 매물의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몇 년 전에 딴 여자들이 다 채갔다. 그리고 행여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매번 반복되긴 하지만) 또 상처받기는 싫다. 이 점에서 <연애본능>(임경선 지음, 더북컴퍼니 펴냄)은 솔직하다. 지은이는 “나 같은 여자들이 전화는 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받으면 절대 안 되고, 두 번에 한 번은 튕기기라는 식의 현란한 연애 전술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대신 조언한다. “마음껏 사랑해라. 쩨쩨한 사랑보다는 퍼주는 사랑이 낫다. 대신, 안전벨트는 매라.”
집착하지 말 것, 사랑은 머리로 할 것!
나의 문제는 내가 안다. 내 문제는 ‘콩깍지’다. 평소에는 멀쩡하지만, 한번 연애를 시작하면 맹목적으로 사랑을 퍼준다. 그리고 자아상실 단계에 이른다. 이건 병이다. 다음 연애를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집착하지 말 것, 나를 버리지도 말 것, 사랑은 머리로 할 것. 음… 솔직히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실연과 연애를 반복하고, 그 와중에 틈틈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연애교본’을 밑줄 쳐가며 읽다 보니, 결국 주제는 한 가지로 모아졌다. “당신같이 괜찮은 여자가 당신을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 때문에 마음고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쭙잖은 밀고 당기기 기술은 이제 그만. 좋은 연애실용서는 읽은 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책이다. 서른세 살 내 가슴에도 또다시 개나리는 핀다.
|
|
|
연애 교본 가려읽기 노하우
어디까지나 참고서, 읽다 보면 깨달음은 내 안에서 솟구칠지니
제아무리 주옥같은 실용서라도, 고매하신 작가의 소설이라도, 1만 부 이상 팔리기 어려운 출판계를 요즘 먹여살리고 있는 게 ‘연애 교본’이라지만, 옥석은 가려야 한다. 솔직히 누가 누구의 연애에 ‘코치’해준다는 것 자체가 부조리한 일이다. 말하자면 바로 당신이(필자 당신 말이야!) “그놈과 사귀지 않은 담에야” 여러 케이스를 수집해 개연성 있는 평균치를 얘기해주는 것은 ‘국·영·수 중심으로 암기과목 열심히 하면 대학 간다’는 얘기와 똑같다. 특히 나처럼 실연의 상처에 끙끙대는 이들에겐. 더 억울한 건, 연애 교본의 70%는 20대 여성들이 주 소비층이라는데, 내가 20대 때는 책도 없었단 말이다. 세상이 온통 나만 ‘따’시키며 연애하는 분위기에서 소외감 느끼는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연대감을 피력하며, 나의 소박한 ‘연애 교본 가려읽기 노하우’를 밝힌다.
① 나와 비슷한 친구가(특히 동성 친구가) 좋다는 책은 일단 경계심을 갖고 본다. 7만 부, 10만 부 팔렸다고 다 나의 실전에 도움되는 건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연애에 가장 도움되는 책은 불서 아니면 성경일 것이다.
② 한꺼번에 몰아서 사지 마라. 쌓아두고 있으면 더 우울해진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됐다고 싸그리 휴지통에 버리지도 마라. 재활용할 순간 분명히 또 온다.
③ 읽으면서 느낀 점을 꼭 여백에 메모해둔다. 나중에 경계경보 기능을 할 수도 있다. 혹시 두 번째 읽는다면 다른 색깔 펜으로 써놓길. 일신우일신하도록 자신을 마인드컨트롤할 수 있다. 주변에 빌려줄 일이 있어도 노하우를 ‘카피레프트’해주니, 나름대로 세상에 ‘보시’하는 셈이다.
④ 무슨무슨 기술에 혹하지 말라. 아무 짝에도 쓸모없더라. 100만 명의 사람에게는 100만 명의 연애가 있는 법. 연애 교본은 어디까지나 참고서다. 1, 2, 3, 4 순서대로 알려주는 테크닉일수록 별 볼일 없다. 마음을 비우고 읽다 보면 깨달음이 내 안에서 솟구친다.
⑤ 밤샘 공부하고 시험 보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아는 것도 틀리는 것처럼, 몰아치기로 읽는다고 새 사랑을 시작할 때 도움되는 건 아니다. 솔직히 연애 교본은 지난 사랑을 잊기 위해 읽는 것이다. 연애가 잘될 때라도 예방 차원에서 틈틈이 읽어두는 게 좋다는 사람들이 있던데, 꽃시절에 꽃 즐기지 왜 책 즐기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