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난’ㆍ‘사비타’ 도대체 너희들 누구냐
[세계일보 2006-04-22 14:39]    

백사난? 사비타? 정체불명의 인터넷 용어가 아니다. 이름모를 정력제나 약물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한국의 순수 창작 연극과 뮤지컬을 각각 대표하는 작품들의 줄임말,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이하 백사난)와 ‘사랑은 비를 타고’(이하 사비타)의 또다른 이름이다.

이들 작품명이 줄여서 호칭되는 이유는 단순히 부르기 길어서라기보다는 연극ㆍ뮤지컬팬들에게 그만큼 친숙해졌기때문. 애칭의 표현에 더 가깝다. 백사난은 이미 2001년 초연 이후 지난해까지 1천여 회 공연을 통해 40만 관객을 동원한 보석같은 흥행작. 사비타 또한 10년이 넘었음에도(95년 초연) 아직까지도 매회 공연때마다 객석 점유율 80%를 넘기며 이젠 특별한 수식어가 사족이 될 정도로 ‘뮤지컬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들의 매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것일까.

▲ 보편적 정서의 승리

백억대가 넘는 초대형 공연도 아니며 웅장한 스펙터클이나 현란한 음향과 무대장치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소재 또한 백설공주 이야기와 형제간 우애라는 상투적인 모티브에다 5분앞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 하지만 이속에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포근함이 있다. 백사난은 모든 것을 던져 백설공주를 향해 한결같은 사랑을 춤추는 난장이 반달이의 모습에, 사비타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비오는 밤 형을 위한 생일파티를 클로즈업, 사랑ㆍ슬픔ㆍ웃음을 적절히 혼합해 관객을 서서히 사로잡는다.

언뜻 평범해보이지만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을 딱 재밌게 인지할 만큼 무리없이 변화를 준데다 그 표현방식이 편안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았어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공연 요소요소에 심어놓아 객석마다 ''애착의 끈''을 공유하게 한다. 크게 드러나지 않는 쉬운 음악과 내용을 가진 세계최장기 뮤지컬 ‘판타스틱스’가 26년만에 막을 내린다고 하자 공연 중단에 반대하는 편지를 세계도처에서 쏟아낸 관객의 마음과 같은 이유다.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없듯이 감동도 돈으로 억지로 만들 순 없다. 백사난과 사비타는 소규모 공연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며 ‘평범속의 비범’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팀워크의 승리

백사난의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은 7명. 그러나 주인공 반달이를 포함, 나머지 조연들은 시시각각 1인 다역을 펼치며 극의 흐름에 뛰어든다. 백사난은 사실 반달이에 많은 부분이 할애된 연극이지만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나머지 조연들의 눈부신 희생이다. 특히 커다란 파란 천 하나로 폭풍과 파도를 표현한 부분과 왕비의 저주를 풀기 위해 먼 이웃나라 왕자를 찾아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나는 반달이를 묘사하기 위해 연출된 절묘한 팀워크는 백사난의 또다른 백미. 공연이 끝난후 퇴장하는 관객들을 맞이했던 그들 이마의 땀방울은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일치된 노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비타 또한 형과 동생의 갈등 구조를 우연히 찾아온 도우미 아가씨가 적절히 이완시켜주며 3인 호흡의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작은 무대에 3명이라는 제한된 인원은 개별배우들의 성량이나 연기가 더욱 확연하게 노출되기 마련, 3개의 축 중 어느것 하나가 무너지면 사비타는 크게 허물어질 수 있는 뮤지컬이기에 배우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삼각구도는 상호 보완의 묘를 살리며 오히려 안정감을 더한다. 최고령 유미리로 열연하고 있는 노현희를 비롯, 출연 배우들은 적절한 애드립에 베테랑다운 노련한 연기를 발휘하며 시간이 갈수록 청중을 깊게 빨아들인다.

▲ 고난을 넘어 환희로…아름다운 해피엔딩의 승리

인간은 언제나 어려움을 이겨내고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기쁨과 성취감을 느낀다. 백사난과 사비타 역시 역경과 고난을 넘어 마지막에 극한의 환희를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환희는 그속에 슬픔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갈등이 일거에 사라지는 고전적 해피엔딩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루어지지 않은 짝사랑, 그 사랑을 말하지 못하고 몸짓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아픔(이상 백사난), 40살 노총각,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손부상과 꿈의 포기(이상 사비타), 이러한 요소들은 사실 극이 끝날때까지도 완벽하게 해소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을 떠안은채 30만송이의 안개꽃 속에서 반달이가 죽고 거울속에서 환생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백사난), 비소리 속에 흐르는 두 대의 피아노 선율을 타고 형제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랑’의 엔딩넘버가 흐를때(사비타) 관객들은 아픔이 있기에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극복과 성취’는 사실 표현하기 가장 손쉽고도 어려운 모든 예술작품의 공통 화두. 사비타와 백사난은 이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가슴속 아름다운 정서를 끌어내는 연극과 뮤지컬의 양대 수작이다.

스포츠월드아이닷컴 심현석 기자 (hss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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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직 두 공연 다 못봤다. 주변에는 위의 공연을 여러번 본 사람도 있는데, 글쎄. 이번 마감폭풍 지나면 한번 보러갈까? ^^

이매지 2006-04-2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비타만 봤는데 좋았어요^^ 또 보러 갈까 생각중^^

해적오리 2006-04-2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백사난만 봤는데요, 보다가 울었사옵니다. 꼭 보시와요.

이리스 2006-04-2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날나리님 / 오호, 역시 보시분들은 강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