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 ‘강산무진’ 낸 김훈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등단은 무슨 등단… 나는 (소설가)증이 없어. ‘야미’(闇:뒷거래를 뜻하는 일본어)로 소설을 쓰게 됐으니, 소설가라고 할 수 있나.”
소설가 김훈(59)은 올해로 등단 10년을 넘기면서 첫 소설집 ‘강산무진’(江山無盡)을 문학동네에서 펴냈다. 첫 장편 ‘빗날무늬토기의 추억’(1995년)을 출간하면서 소설가로 나선 뒤 동인문학상 수상작 ‘칼의 노래’로 한국 장편의 새 미학을 개척한 늦깎이 작가 김훈이 ‘화장’(이상문학상)과 ‘언니의 폐경’(황순원문학상) 등 8편의 단편을 묶었다. 꽃봉오리의 내부에 숨은 등불을 상상하듯, 인간 육체에 탐미적 언어의 등불을 비춰 그 결을 쓰다듬으며, 몸 속에 숨은 존재를 묘파해낸 단편들이 황홀하게 아름답다.
등단 이후 첫 소설집을 낸 소감을 묻자 그는 등단 관행인 신춘문예 당선이나 문예지 추천을 거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죄송스러워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등단 제도에 대한 야유가 깔려 있다. 결국 ‘가짜 면허 작가’가 최근 몇 해 동안 유명 문학상을 독식하면서, 대통령까지 애독자로 만들었다는 얘기 아닌가. 그는 첫 소설집의 작가 약력에 ‘자전거 레이서’라고 썼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해를 맞는다. 하루종일 놀고 청소하고 자전거 탄다. 차는 한 대도 없지만, 자전거는 두 대 있다. 자전거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노는 인간’이다.”
“요즘 단편 소재가 없어서 걱정이다”는 그는 일산 호수 공원이 보이는 오피스텔에 새 집필실을 마련했다. 내년에 회갑을 맞는 이 늦깎이 작가는 ‘學難憂老境’(배움이 힘들어지니, 늙음을 걱정한다)고 써 붙여놓고, 햇반으로 끼니를 때우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햇반에는 여성의 체취가 없어서 좋다”며.
(박해현기자 [ hhpar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