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가 어느날..

나는 게이다. 라고 선언하고 나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버렸다면..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뒤에 멋진 청년이 불쑥 찾아와 자신이 아버지의 연인이며 지금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중이라 얼마 살지 못한다고 돌봐달라고 청한다면...

<메종 드 히미코>,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사실 별로 특별할 건 없다. 이런 설정은 텔레비젼 드라마에서도 있을 법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감독이 만든 영화라기에 앞뒤 잴것도 없이 무작정 표를 예매했다. 가끔 찾곤 하는 상암 CGV 의 인디 영화관에서 관람.

스토리상으로는 갈등의 핵심인 딸과 아버지의 연인에 가장 주목해서 볼 듯 했으나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시선은 다른 곳으로 확산되었다. 주글주글 주름살이 가득한 트렌스 젠더를 보는 일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게이들의 실버타운은 비록 영화라서 아름답게 꾸며져 있지만 보통의 실버타운과 같을래야 같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슬픔의 태생이 다른, 그런 독한 슬픔을 지닌 곳이다.

여자다운것, 비꼬아 말해 사내 자식이 계집애처럼 구는 것은 가문의 수치요,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드러낼 일이 못되는 것이다. 남성화 된 여성이나 남성으로 성전환을 원하는 여성들과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주변의 비난과 손가락질에 길들여져 살아왔고 늙어서도 격리되고 담벼락에 욕설이 가득하다. 이를테테면 호모새끼들 박멸.. 같은 문구들.

나는 호모 포비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게이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는 여자도 아니다. 다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아버지의 연인(오다기리 조)가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있었다. 심지어 배나오고 살이 두툼하게 붙은 늙은 게이 아저씨가 흰 드레스를 입고 수줍어 하며 웃는 모습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아버지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워질 자유가 있다. 결국 이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에 대한 부분이 건드려진다. 어떻게라는 방법론 앞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성을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폄하하도록 학습되어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남성성에도 아름다움이 배어 있지만 그것은 멋스러움이라고 표현되어 어쩐지 뭔가 실제보다 격상되어 평가받는 것은 아닐지.

영화를 보고 나와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며 잠깐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게이라고 놀림받으며 치욕스러운 비난을 받다가 기절까지 하는 수난을 겪었던 영화 속 인물이 생각나서, 그 캐릭터가 여자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며 한껏 들떠서는 이렇게 여자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쳐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장면이 떠올라서 말이다.

- 베스트 장면을 꼽자면 아버지의 애인과 복잡한 심경으로 동침을 결심하게 되는 딸. 그러나 게이와의 잠자리가 제대로 될리가 없다. 결국 실패하는 장면인데 이토록 관객을 긴장하고 또 몰입하게 만드는 리얼한 베드신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 일본의 한적한 바닷가 풍경만 보면 미치게 그곳에 가고 싶어진다. 이 영화 역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이후로 또 나를 들끓어 오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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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6-01-3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놉시스를 읽고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본 영화인데, 역시 "이누도 잇신" 감독이란 생각을 하며 나왔습니다... 지금은 머리 맡에 부리부리한 눈을 흘기고 있는 "시바사키 코우"가 있는 포스터가 붙어있고요..^^

이리스 2006-02-01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셨군요. ^^ 조제... 요거 특별판 디비디도 구매 고려중입니다.
오오.. 포스터~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