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증오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편의 존재 깊숙이 자신을 연관시킴을 의미한다. 사랑은 일종의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 대한 강한 긍정인데, 그런 자신이 공들여 선택한 얼굴이 쿤데라의 표현대로 '가계라고 불리는 한 뿌리에 달린 수십 개의 감자 알갱이처럼 비슷비슷하게 생긴 일련의 얼굴들의 집합 속의 한 개체일 뿐' 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됨은 결정적으로 맥 빠지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궁극적으로 개인을 발견하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발견이라는 관점에서 증오를 본다면, 그를 증오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리어 역으로 증오의 한 표현으로, 그렇게 오해될 소지도 있다. -201~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