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물이 되었을 때, 나는 스물임에 너무나 기뻤고 가슴 벅차했었다. 나는 십대의 시절이 너무 싫었고 하루빨리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으므로 나에게 스물이라는 것은, 그리고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었다. 10년 뒤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자, 인생의 큰 그래프를 그려보자는 것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과정 중 하나였다. 스무 살, 대학 1학년의 나에게는 3학년이나 4학년 선배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질 정도라 나는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가질 수 없었고 그것은 너무 멀어서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목적지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의 서른은 너의 삼십대는 조금 메마르고 건조하지 않을까? 너는 지금보다 좀 더 날카로워져 있을 것 같아.” 그러나 그 때 나는 그 말을 부정했고 그건 맞았다. 나는 십년 전에 비해 메마르지도 날카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마흔을 생각하는 것이 꼭 십년 전의 내가 서른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격일지도 모르겠다. 이십대 후반에 다다를 무렵에는 빨리 서른이 되어버리면 좋겠다고, 마치 서른이 되고나면 모든 게 오히려 속편해질 듯한 그런 심정이 있었는데 삼십대 후반이 되고나면 어떨지는 모르겠다. 

 

최근에 느낀 것이지만 다들 어쩌면 그렇게 나이에 맞게 상황에 맞는 고민들을 똑같이 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마주한 각기 다른 서너 명의 대학 4학년생 혹은 3학년생들은 모두 한결같이 입을 모아 비슷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들은 몹시 지치고 피곤해보였으며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시대가 변해서 전보다 취업 걱정이 몇 배로 늘어난 것도 한몫하는 것일 테지만 모두 그렇게 줄맞춰서 한길로만 나가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본인들도 답답하겠지만 그냥 옆에 있는 나도 숨이 콱 막히는 것처럼 답답해진다.

 

교육이라는 것이, 학습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세뇌가 참 무서운 것이라고 새삼 깨닫게 된다. 몇 살에는 무엇을 하고 또 몇 살에는 무엇을 한다는 것이 줄줄 구구단 암기하듯이 그렇게 꾸역꾸역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무섭고 놀랍다. 자신의 구체적인 현실과는 상관없이 몇 살에는 취직을 하고 또 몇 살에는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이런 것들에 대해 보편적이라 불리는 사이클에 맞춰 자신의 인생도 거기에 끼워 넣게 되는 것. 그게 뭐 어때? 라고 하면 할말은 없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삶에 대한 개별적인 계획이 아니라 사회나 어떤 통념에 근거한 삶의 계획을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것으로 삼는 모습에 무서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조급해지는 것, 그리고 여유로워지는 것 이렇게 상반된 것들이 있다. 전자의 경우가 앞서 말한 사회적인 라이프 플랜에 비교하여 자신이 그에 못 미치거나 해내지 못한 것이 있을 경우 조급함을 느끼고 조바심을 내게 된다. 내가 몇 살인데 아직 이러고 있나, 남들은 이맘때 무엇 무엇을 하던데 나는 왜 이럴까. 몇 살에는 이 정도는 해야 하는데. 등등. 반면 여유로워진다는 것은 나이 듦이 주는 가장 매력적인 선물이다. 몇 살 더 어렸을 때는 알지 못했던, 살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경험이 가져오는 여유다. 아, 이런 것을 내가 그 때는 몰랐구나. 이런 깨달음이 저절로 오면서 성장하게 된다.

 

이제 막 이십대 중반으로 접어든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부디 남들이 이야기하는 인생에 귀기울기 보다는 우선 자기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그리고 나서 귀를 기울여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그렇게 자신을 사회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다보면 정말 인생 자체가 그렇게 흘러가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이에 맞는, 그 때에 하면 가장 좋을 것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것들을 놓쳤다고 해서 풀 죽거나 낙심하지 말고 어깨 펴고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다시, 느린 걸음이라도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 나가기를 바란다. 서른하나인 나도 지금 다시 공부하여 대학 4학년이고, 내년에는 대학원에 갈 것이며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으니 말이다.

 

생각해볼 수조차 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서른, 그 서른도 넘어 서른하나가 되고 보니 언덕 하나는 넘은 듯한 기분이 든다. 저 아래 언덕 밑이 이제는 아득하기만 하다. 언덕을 오르며 나는 많이 울고 또 웃었고 함께 오르던 이들 중 이제는 간곳조차 알 수 없는 이들도 많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 올라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또 하나의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마치 처음인 듯 나는 또 좌충우돌 실수 연발에 헤매고 있지만 그래도 함께 오르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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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3-2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이리스 2005-03-28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그런데 님의 아이콘.. 지나치게 귀여운거 아니에요? ㅎㅎㅎ

물만두 2005-03-2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