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의 과거인가?


홍상수 감독의 이번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칸에 초청되었다. 사실 홍상수라는 이름 하나로 영화를 볼까 말까 결정하는 사람의 수가 대폭 늘어났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유지태와 성현아 그리고 김태우라는 배우들이 포진해 있으니 영화를 보려고 마음 먹는게 어려울 것이 없다.

메가박스에서 이 영화를 보았는데 배우들의 무대 인사가 있는 줄 모르고 들어갔다가 사람들이 수런거리고 여기저기서 디카와 핸드폰으로 촬영을 해서 그제서야 무대를 보니 배우들이 나와 있는 것이었다. 이 영화 때문에 체중을 한껏 불린 유지태는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조금은 어색하게 서 있었고 김태우는 여유롭게 인사말을 전했고 성현아는 상당히 긴장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배우들이 물러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초반, 그리고 중반, 끝까지 가면서도 이전의 홍상수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 부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그 황망함은 아직도 감당이 안 된다.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불평스러운 마음을 입으로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지태는 탐욕스러운 지식인으로 거의 완벽하게 변신했다. 부풀어 오른 몸은 홍상수 감독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매우 효율적으로 쓰인 듯 했다. 반면 날렵한 김태우는 외관상으로는 더 나아보였으나 이 두 배우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앉아 서로 심리전을 펼치며 대사를 받아칠 때는 재미보다 짜증이 앞섰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라면, 남자는 여자의 과거인가? 뭐, 영화에서 보면 남자는 여자의 과거인 것 같긴 하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인가는 알 수 없지만. 성현아가 맡은 캐릭터의 그 애매모호하고 맹한 면은 소화하기 쉽지 않았음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연기가 나빴다고 평할 순 없다. 다음 작품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연기력을 펼쳐 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유지태는 영화 속에서 솔직하고, 특이한 교수로 나온다. 좋게 말해줘서 그렇다는 것이다. 제자와 함께 여인숙에 들어가 제자에게 오럴을 받는 교수가 솔직하고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추악하다고 경멸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그런데 솔직함과 천박함은 사실 아슬아슬한 경계를 대고 같이 서 있다. 한 발만 더 나아가면 천박해지고 한 발 더 들어오면 솔직하게 되는 것이다.

홍상수 영화에는 언제나 여관과 술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 무대와 주인공이 되어 등장한다. 여관과 술로 살아온 인생이라는 둥, 사람들은 아예 홍상수 감독의 일상이 영화 아니냐고 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이 어쨌거나 여관과 술을 빼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감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리고 추악한 지식인과 그 지식인의 부인은 언제나 그림자 같은 존재라는 점도 같다. 특별히 부각되지도 않고 없는 것도 아닌.

술은 사람을 풀어지게 하고,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보다 더 가깝게 만들어 준다는 점은 맞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은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술을 무지막지하게 먹인다. 그리고 정말 서로 친하게 만들어놓고 그냥 그걸 찍는다. 그래서 쉬워 보인다고? 그런 의미는 결코 아니다. 홍상수니까 찍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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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5-0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들이 포진한 가운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이 수군거렸을 그분위기를 상상하니 웃음이 나네요..영화를 본후 계속 제목에 대해 생각을 하는데....해답이 안나오는군요.. ^^

이리스 2004-05-0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배우들이 끝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먼저 갔거나... 혹시 모르죠. 구석진 자리 객석에 있었다면 그 소리를 들었을 수도. ^^ 하지만 들었더라도 상관없었을듯한 분위기였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