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의 말 줄임표를 건넬 수 있게 되길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 특히 연인 사이에는 유독 말 줄임표를 자주 쓰게 되는 시기가 있다. 대체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갈 때 보다는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이나 그 반대로 헤어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기에 주로 말 줄임표를 찾는다. 서로에게 다가서는 시기에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없기에 말 줄임표로 마침표를 대신하며 그 안에 수줍음과 설렘을 담는다. 반면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게 되면 서로의 사이를 빼곡히 메우던 수 많은 언어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어느 순간 말 줄임표들이 넘쳐나게 된다. 슬픔과 아픔, 분노, 실망, 미안함, 두려움들을 가득 담아 우겨 넣은 말 줄임표.
이별의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말 줄임표는 야속하기 짝이 없지만, 대개의 이별은 그렇게 왔다가 사라진다. 이별이 그렇게 자취를 감추고 말 줄임표 위로 시간의 흔적이 하나 둘 늘어난 뒤에는 말 줄임표 다음 말들의 낱말 맞추기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간다. 비록 그 낱말 맞추기의 정답을 끝내 확인할 길이 없어져 스스로 찾아낸 답만 남게 되더라도 말이다. 스스로의 답도 찾아내지 못한 말 줄임표 뒤의 빈 공간은 오래도록 두면 둘수록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메워진다. 그 공간을 비워내고 깨끗이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설렘의 말 줄임표를 건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쉼표 같은 사람이 필요할 때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앞만 보며 달리고 또 달리는 세상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경쟁이 시작되는 세상. 등수로 매겨지는 가치에 인생을 걸고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채 파악하기 전에 이미 익숙해지는 세상이다. 쉬지 않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달리고 또 달리면 어느 순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고지를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다.
누군가 내 앞을 지나 성큼성큼 앞서 가더라도 그 모습에 응원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사람, 자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나서 찾아보고 결정하는 사람, 무엇보다 어디에서 쉬어야 할지를 알고 길을 떠나는 사람은 결코 지쳐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없다. 상대를 밟고 올라가서라도 어떻게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만 갖고 있는 사람들 틈에 보석처럼 빛나는, 쉼표 같은 사람이 필요한 때다.
느낌표로 인생을 풍요롭게 즐기기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감동하는 일이 줄어든다. 새로운 것, 처음 느껴보는 것에 대한 감동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모든 일에 경험치가 늘어나게 되면서 이전에 경험했던 것에 비추어 생각하는 습관이 생기고 자신만의 잣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경우는 감동하는 빈도수가 높고 작은 일에도 감탄을 연발하기도 한다.
매일 반복적으로 보는 똑 같은 강물이라도 흘러가는 물이기에 결코 똑 같은 물을 볼 수 없듯이 우리가 무덤덤하게 느끼고 반응하는 주변의 것들도 같은 이치에서 보면 결코 같은 것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감동을 느낄 줄 아는 것, 그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즐기며 사는 지혜일 것이다.
나를 발전시키는 근원, 물음표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말을 하는데 재미를 붙이면 쉴새 없이 조잘거린다. 불명확한 발음으로 끊임없이 무언가 말하는 아이. 조금씩 발음이 정확해지면 이제는 단순한 읽기가 아닌 물음으로 변한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마냥 신기하고 궁금해서 온 종일 뒤에 물음표를 달고 다니던, 아이였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삶의 짐이 어깨 위를 점령하고 난 뒤부터는 물음표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길에 누군가 쓰러져 있어도 궁금해 하지 않고, 불합리한 제도로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어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는다. 어깨 위에 얹어진 삶의 무게만으로도 벅차 다른 곳으로 물음표를 던질 여유를 잃은 어른들. 하지만 물음표를 다시 찾게 된다면 가장 먼저 어깨가 가벼워질 것이다. ‘내가 왜 이 짐을 어깨 위에 지고 있지?’ 에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근원, 그 근원에 다가서기 위해 수십 가지의 물음표를 던지는 당신은 이미 발전하고 있다.
끝맺음은 또 다시 이어질 새로운 시작의 디딤돌
마침표를 찍는 다는 것은 일의 매듭이나 종결을 의미하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되곤 한다. 마무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끝까지 일을 끌고 나가는 추진력과 한번 시작한 일을 마무리 하기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심, 일을 마무리할 순간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침표를 잘 찍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마지막, 끝이라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처음, 시작을 잊게 된다. 그러나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끝이 있다는 이 당연한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는지, 시작했을 때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또 그 목표를 이루어 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마지막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피지 못하면 결코 마침표를 올바로 찍을 수 없다. 끝을 생각할 때는 처음, 그 시작을 잊게 되기 쉽다. 마침표를 찍기 전 뒤 돌아 보았을 때 시작과 중간 그리고 마침표를 찍기 직전의 순간인 지금의 흐름을 살피고 그 이후에 마침표를 찍을 일이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절한 곳에서의 끝맺음은 또 다시 이어질 새로운 시작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마침표가 새로운 시작의 디딤돌이 되느냐 걸림돌이 되느냐는 마침표가 찍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당신의 마침표는 어느 쪽인가?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넓혀주는 따옴표 속 한마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니, 그럴 리가 없다. 독심술을 연마한 것도 아니고 눈치껏 때려 맞힌 것이 정답일 가능성도 낮다. 그러니 말을 해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시시콜콜 뭐 하러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 놓느냐며 면구스러워 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표현을 제대로 해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삶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열쇠 중 하나라는 것은 확실하다.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협화음이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물리적인 충돌이 반 이상은 줄어들겠지만 대화를 제대로 나누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은 서로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면서 문제를 더 키우게 된다. 따옴표 속에 담은 따뜻한 한마디가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넓혀준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