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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대한민국에도 원주민이 있다고? 호주나 미국에만 있는 줄 알았던 원주민이 이 나라 대한민국에도 있다고 하니 일단 호기심 발동이다. 그래, 그 원주민은 누구? 작가가 대뜸 말해준다. 누구긴 누구, 우리 가족! 엥? 어디 이야기를 들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가 앉은 자리에서 홀랑 다 읽었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데다가 초등학교 때 다들 방학이면 시골에 간다는 것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그 시골 조차도 없던, 철저히 도시의 정서를 갖고 자라왔다. 그런 까닭에 나는 시골이라고 하면 일단 침부터 꼴깍 넘긴다. 내가 잘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 갈망. 대학 때 한 미대 선배가 어려서 자란 시골에서 놀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고 신기해서 그 선배만 만나면 어렸을 때 놀던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이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말, 에서 보니 나는 그가 갖고 있는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의 핵심에 서 있는 셈이었다. 도시에서 자라 유치원을 두 번이나 다녔고, (여섯 살부터 심심하다고 졸라대서 2년 다녔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으며(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셨으니) 초등학교 때 엄마와 함께 소풍을 가봤고(엄마는 학부모회 회장이셨다). 그렇지만 그 덩어리의 핵심인 게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그 이후 집안이 폭삭 망해서 작품 속 작가의 어린 시절에 버금가게 가난했던 시절을 지났기 때문이리라.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후다닥 옷을 빨아 널었고, 아무런 것도 넣지 못한 오로지 물 뿐인 말간 국물에 담긴 얄밉도록 가는 국수 몇 젓가락만으로 배고픔을 견뎠던 적도 있었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대한민국의 모든 원주민들, 그 원주민의 이웃, 원주민의 친구들까지도 모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만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보여지는 것들, 보편화된 것들에만 시선을 가두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일거라 굳게 믿고 일평생을 살다가는 원주민이나 혹은 그 반대 선상의 사람이나 모두 고개를 돌려서 여기가 아닌 저기를 바라보고 또 그곳과 소통하면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를 꿈꾼다면 너무 비현실적인 소망일까?
새삼스럽게 만화가들이 참 대단하다 싶다. 그려야지, 써야지. 하나만 해도 되는 경우도 있는데 만화가는 항상 두 가지를 해야 하는 거다.(대부분의 경우가 그렇겠지?)
책의 후반부에 있는 작가의 말 혹은 후기쯤으로 규정할 수 있는 두 페이지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특히,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운 작가 자신의 그림. 그 처연한 옆모습이 서늘하게 가슴에 남는다. 어깨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싶다가도 그 행위 자체가 짐짓 가벼운 위로 정도가 될까 두려워 내밀었던 손을 어색하게 거둬들였다. 다만, 이렇게 앞서 아이와의 대면을 고민하는 모습에서 꽤 괜찮은 아빠가 될 소질이 보였다.
* 그림을 보면 그가 식빵에 포도잼을 발라 먹는 다는 것과 그의 집에 믹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은 딸기잼을 발라 먹지 않나? 남자 혼자 살면서 믹서를 갖고 있다는 것은, 흐음..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 별 하나를 뺀 이유는 웃음.. 재미가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욕심 때문이다. 감동과는 또 다른 의미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