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망경> 읽음.

59
5. 『계온품』 각 경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1) 「범망경」(梵網經)
인간은 견해의 동물이다. 인간은 매순간 대상과 조우하면서 수많은 인식을 하게 되고 그런 인식은 항상 견해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는 견해는 너무도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견해는 항상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라는 질문을 수반한다. 견해란 무엇인가? 아니 바른 견해란 도대체 무엇인가? 바른 견해란 도대체 가능한 것일까? 인간은 견해 없이 살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
견해의 문제에 대한 고뇌를 누구보다 많이 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디가 니까야』의 첫 번째가 되는 「범망경」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견해를 과거에 관한 것 18가지와 미래에 관한 것 44가지로 나누어서 모두 62가지로 분류해서 심도 있게 설명하고 계신다. 이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 18가지 과거를 모색하는 자들
I-1. 영속론자들 - 4가지
I-2.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 - 4가지
I-3.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들 - 4가지
I-4. 애매모호한 자들 - 4가지
I-5. 우연발생론자들 - 2가지

(나) 44가지 미래를 모색하는 자들
II-1. 사후에 자아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 16가지
II-2. 사후에 자아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 8가지
II-3.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 8가지
II-4. 단멸론자들 - 7가지
II-5.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 5가지

그러나 「범망경」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견해를 모두 62가지로 정리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범망경」은 오히려 왜 이렇게 다양한 견해가 생길 수밖에 없느냐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연기(緣起)의 관점으로 명쾌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견해란 조건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본경에서 견해는 ‘느껴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을 복주서는 "체험되고 경험된 것"으로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이 경험된 것은 대상과 감각기능과 알음알이의 세 가지가 서로 조우할 때 일어나는 감각접촉[觸]에 조건 지워진 조건발생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 발생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말한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견해를 감각기능·감각대상·알음알이[根·境·識]의 삼사화합(三事和合)에서 기인한 감각접촉의 산물이라고 불교의 연기 구조로 명쾌하게 정의하신다. 이렇게 하여 견해의 문제는 마침내 괴로움의 발생 구조[流轉門]와 소멸 구조[還滅門]를 적나라하게 밝힌 연기의 가르침으로 회통이 되고, 이것은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원인[集]과 괴로움의 소멸[滅]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로 정리된 불교 만대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으로 귀결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런 연기의 가르침이야말로 무아의 가르침이요 무아의 가르침은 바로 존재론적인 실체인 자아를 해체하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연기-무아로 존재론적인 실체인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떨쳐버릴 때 그것이 바로 견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설하신다. 그러므로 62견은 연기-무아를 철견할 때 극복된다는 것이 본경의 결론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본경은 팔정도의 첫 번째인 바른 견해[正見]와 바른 견해의 내용인 연기의 가르침을 천명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4부 니까야의 첫 번째인 『디가 니까야』를 대표하는 첫 번째 경으로 결집이 되었을 것이다. - P59

106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의 주석(72번째 주석)
옛날에는 이처럼 마음의 삼매로 표현되는 정신적인 능력이 과거를 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삼매의 힘은 주관적인 것이라서 객관성이 없는 것이 흠이지만 수행자들의 권위가 뒷받침되어 그들의 주장은 통용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주관적인 권위는 객관성이 결여되었고 그래서 그들의 권위를 지탱시키기 위해서 힘, 즉 폭력을 수반해온 것이 인류역사다. 세속의 정치적 힘을 능가한 서양 종교의 권위와 힘은 교황을 만들어 내었고 천년 넘게 서양을 지배해 왔다. 이런 주관적 권위를 극복하고자 서양 지성인들은 많은 노력을 하였고 그래서 과학(science)이라는 방법론을 개발하였다. 과학은 무어라 해도 객관적인 자료가 중요하다. 이런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한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그들은 과거 즉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여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P106

131
2.24.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것은 유익함[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不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설명한다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것이고, 곤혹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라고.
이처럼 그는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거짓말을 혐오하여,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 P131

166
62견은 단지 느낀 것이요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2. "비구들이여, 여기서 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들이 네 가지 경우로 영속하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160번째 주석)

주석 160) 「범망경」 전체에서 이 문단이 가장 극적이면서도 중요한 구절이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아무리 과거와 미래에 대한 굉장한 견해를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여기에서의 체험이나 경험의 문제로 귀결되고 만다는 의미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의 토대로 부처님 당시에는 삼매체험이 중시되었다. 삼매에 들어서 먼 과거를 보고 과거에 대해서 단언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지금여기에서 삼매에 들어서 그렇게 봤기 때문이다. 미래는 예측의 문제인데 이것도 역시 지금 그가 그렇게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에 관한 모든 견해는 자기 자신이 바로 지금여기에서 경험하고 체득하고 느낀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과거와 미래를 파악한다. 과학적 방법론이 지향하는 것은 객관화이다. 객관화의 방법은 바로 자료이다. 정확한 자료에 근거할 때 우리는 그것을 정설로, 객관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과학은 신빙성 있는 자료의 확보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처럼 과학이 가설이나 학설(견해)을 주장하는 근거는 자료이다. 그러므로 지금여기에서 실험이나 관측 등을 통한 자료가 없으면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는 있을 수 없다.
관측이나 실험에 의한 자료를 통해서 보면 우주는 팽창한다고 한다. 다른 관측과 실험을 통해서 요즘은 우주는 팽창한 뒤에 다시 수축하고 그래서 팽창·수축을 거듭한다고도 주장한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이 삼매에 들어서 판단하던 것이 자료에 의한 견해로 바뀌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두 현재 바로 지금여기에서 어떤 자료를 어떻게 판독하고 어떤 실험을 어떻게 하고 어떤 관측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이 문제를 부각시켜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vedayita(느껴진 것, 체험한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그들이 느끼고 체험한 것을 넘어서서는 아무런 견해도 가질 수 없다는 부처님의 명쾌하신 지적이다.
초기불전을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통달해야 하는 가장 큰 인식의 전환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과거를 되새기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제거되었고 미래는 닥치지 않았다.
현재에 [일어나는] 법(dhamma)을 바로 여기서 통찰하라."
(Bhaddekaratta Sutta, M131/iii.187) - P16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09-21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추석인사 드립니다.
오늘부터 추석연휴입니다.
즐거운 추석명절, 기분 좋은 연휴 보내세요.^^

베텔게우스 2018-09-21 22:1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풍성하고 여유로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평온의 기술 - ‘남을 위한 삶’보다 ‘나를 위한 삶’에 몰두하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며, 강준만 교수의 책은 앞으로도 출간된 그 해 읽는 것이 가장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분명 시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예리한 통찰력이 있는 것 같다.

9 그러나 세상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한때는 성공과 축복의 원인이었던 것이 세월이 흘러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실패와 저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고성장 시대의 종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율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대변되는 국가 존망의 위기마저 불러왔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초월하는 ‘출산율 1.05’ 쇼크에 대해 ‘두려운 미래’, ‘또 하나의 핵폭탄’, ‘국가적 재앙’ 등과 같은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럼에도 우리의 의식과 행동 양식은 여전히 평온을 적으로 여기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 P9

71 솔직을 빙자한 무례는 인간관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엔 ‘솔직을 빙자한 무례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윌리엄스가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게 흥미롭다. "잔인한 사람은 자신을 솔직함의 본보기라고 말한다."
세상이 갈수록 잔인해지는 걸까? 언제부턴가 솔직을 빙자한 무례가 너무도 당당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다룬 책이 리처드 세넷의 『공적 인간의 몰락』이다.
공적 인간은 공적 영역에서 정해진 관습에 따라 행동하던, 옛 금기 문화에서 살던 사람들을 말한다. 공적 인간은 다른 사람 앞에서 감정을 내보이며 진정성 있게 행동하기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가면을 쓴다. 그런데 감성과 진정성을 좇는 현대사회에서는 친밀함의 과대평가로 인한 ‘친밀함의 독재tyranny of intimacy‘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런 공손한 사회적 관습이 사라져가고 있다. 가면을 쓰는 것이 정중함의 본질임에도 가면을 쓰는 행동은 진실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행동이라고 오해하는 일이 벌어진 탓이다. - P71

91 민감한 사람의 모든 행동이 다 바람직하거나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감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창의적이고, 세심하며, 협력적이고, 인과관계를 잘 파악하는 장점이 있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인지하다 보니 지나친 자극을 받을 수 있으며, 남들의 반응에 무척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 오래전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이 점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극도의 민감성은 인격을 풍요롭게 만든다. 단지 비정상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만 이러한 장점이 매우 심각한 단점으로 바뀐다. 그것은 민감한 사람들의 침착하고 신중한 성향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도의 민감성을 본질적으로 병적인 성격의 구성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류의 4분의 1을 병적으로 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 P91

102 나는 글쟁이로서 가끔 우연한 기회에 독자들을 만나는데, 좀 당황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나의 글쟁이 역사가 30년쯤 되는데, 그간 나는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일부 독자들은 옛날의 나만을 기억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인사를 건네니 나로선 할 말이 없어진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닌데도, 잠시나마 어제의 나로 행세해야 한다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다.
누구든 한 번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시인 T. S.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은 「칵테일 파티」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안다는 건
우리가 그들을 알았던
순간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네
그들은 그때 이후로 변했고
우리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전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라네.

이렇듯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도 과거 경험의 포로가 되어 현실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평가하는 오류를 가리켜 ‘정적 평가의 오류fallacy of static evaluation‘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왜 오류냐고 반문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평소 일관성을 높게 평가하는 문화적 세례를 받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 P102

103 "어리석은 일관성은 편협한 마음의 유령이다."(랠프 월도 에머슨)
"일관성은 상상력이 없는 사람의 마지막 도피처다."(오스카 와일드)
"사람들이 유일하게 진정으로 일관적인 때는 죽은 것이다."(올더스 헉슬리) - P103

122 소신, 고집, 아집의 차이는 무엇일까? 없다. 모두 다 ‘신념’을 가리키는 단어일 뿐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소신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꼴통’의 광기로 보일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인칭의 변화에 따라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이 다를 수 있다며, 그 사례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나의 의지는 굳다. 너는 고집이 세다. 그는 어리석을 정도로 완고하다."

영국 런던의 한 잡지사는 이와 같이 주어에 따라 표현이 다르게 변하는 유형들을 모집하는 대회를 열었는데, 당선작으로 뽑힌 것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나는 정의에 따라 분노한다. 너는 화를 낸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날뛴다."
"나는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너는 변심했다. 그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했다."

권혁웅은 1인칭과 3인칭의 평가 차이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나는 용감하고 순수하며 세심하고 열정적이고 절제하며 불의를 참지 못한다. 그는 무모하고 단순하며 소심하고 욕정적이고 억압돼 있으며 분노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다." - P122

131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는 논쟁에서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논쟁을 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울뱀이나 지진을 피하듯이 논쟁을 피하라. 논쟁은 열이면 아홉이 결국 참가자가 자신의 의견에 대해 전보다 더 확신을 갖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사람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논쟁에서 지면 당연히 지는 것이고, 만약 이긴다고 해도 그 역시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것일까? 자, 당신이 상대방의 허점을 찾아 그가 틀렸음을 입증해서 이겼다고 치자.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인가? 물론 당신이야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대방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당신은 상대방이 열등감을 느끼게 했고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는 당신의 승리에 분개할 것이다." - P131

146 "용서처럼, 행위 자체는 드물면서 그토록 많이 쓰이는 말도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용서가 중요하거나 필요한 일이 아니며, 무엇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처벌받으면 천운이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각자 자기 길을 가면 된다. 용서는 판타지다. 용서만큼, 가해자 입장의 고급 이데올로기도 없다. 나는 용서에 관한 환상을 깨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_정희진, 「용서?」,『한겨레』, 2016년 11월 5일. - P146

148 "‘사랑을 해봐야 용서한다’란 말이 있다. 나는 힘들게 힘들게 그들이 내 삶에 끼친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돌아보니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도 안 변했지 않은가. 결국 저들은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다. 나는 나를 위해 그들을 용서했다."

_오병상, 「작가 한수산 씨: "믿음의 글쓰기로 제2의 인생 출발"」,『중앙일보』, 2000년 9월 8일, 13면; 배문성, 「고문의 악몽…결국 나를 위해 그들을 용서했다"」,『문화일보』, 2000년 8월 4일, 17면. - P148

152 그런 일엔 특히 걷기가 도움이 된다. 걷기보다는 산책이라는 단어가 더 멋있게 들리니 산책이라고 하자. 웬만한 철학자들치고 산책의 힘을 역설하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로 산책은 사색에 큰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 P152

158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없다. 우리가 지닌 생각은 모두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상에서 우리가 터득하는 것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끊임없이 주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절도 망각증kleptomnesia‘에 사로잡히기 쉽다."

_애덤 그랜트(Adam Grant), 홍지수 옮김,『오리지널스: 어떻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가』(한국경제신문, 2016), 22~23쪽. - P158

158 이에 대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독창성에 대한 말들이 이렇게 많지만 그게 다 무슨 뜻인가?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이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어쨌든 에너지, 힘, 의지를 제외하면 실제로 무엇을 우리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_해럴드 불룸(Harold Bloom), 양석원 옮김, 『영향에 대한 불안』(문학과지성사, 1973/2012), 123쪽. - P158

161 빌 게이츠Bill Gates가 독창성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라는 것도 작은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통해 한 가지 정도의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뿐이며, 거의 모든 해법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다만 그 사실이 증명되어야 할 뿐이라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재능은 이러한 해법을 발견하여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제품으로 개발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 P161

172 레베가 코스타Rebecca Costa가 잘 지적했듯이, "한 문명이 인식 한계점에 도달하여 문제의 복잡성이 인식 능력을 넘어서면, 곤란한 사회적 문제를 바로잡을 책임이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전가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겪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시스템적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각 개인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간편한 길을 택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책임의 개인화’ 현상이 문명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옳다거나 불가피하다는 게 아니라 그걸 완화하기 위해선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 거시적으로만 접근하면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으려는 ‘우도할계牛刀割鷄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자기계발 붐은 ‘능력주의memritocracy‘라고 하는 신화를 그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자기계발보다는 오히려 능력주의의 허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게 나은 대안일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욕하는 대신 그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 P172

176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의 명단엔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미국인이 14명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도 이름을 잘 아는 존 D. 록펠러1839-1937, 앤드루 카네기1835-1919, J. P. 모건1837-1913을 비롯한 14명은 모두 1830년대에 출생했다. 왜 그럴까? 1860년대와 1870년대에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시기에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월스트리트가 등장했으며, 전통적인 경제를 지배하던 규칙이 무너지고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184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면 그는 이 시기의 이점을 누리기엔 너무 어리고, 반대로 1820년대에 태어났다면 너무 나이가 많다.
개인컴퓨터 혁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는 1975년이다. 이 혁명의 수혜자가 되려면 1950년대 중반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이른 사람이 가장 이상적이다. 실제로 미국 정보통신 혁명을 이끈 거물들은 거의 대부분 그 시기에 태어났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밋 등은 1955년생이며 다른 거물들도 1953년에서 1956년 사이에 태어났다. - P176

193 "내가 연구 대상으로 만난 대학생의 65%가 학교가 아닌 곳에서 학교 야구잠바를 볼 때 ‘일부러’ 학교 이름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학교 야구잠바가 신분 과시용 소품이라는 방증이다. 실제로 야구잠바를 입는 비율도 이에 따라 차이가 나서, 이름이 알려진 대학일수록 착용 비율이 높았다. 낮은 서열의 대학 학생들이 학교 야구잠바를 입고 다니면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라 신촌으로 놀러오는 그쪽 대학생들은 자신의 야구잠바를 벗어서 가방에 넣기 바쁘단다. 심지어 편입생의 경우엔 ‘지가 저거 입고 다닌다고 여기 수능으로 들어온 줄 아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이처럼 학교 야구잠바는 대학 서열에 따라 누구는 입고, 누구는 안 입으며, 누구는 못 입는다."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20대의 자화상』(개마고원, 2013), 163쪽. - P193

199 강원국은 이어 "직장인은 인문학 열풍에 너무 깊숙이 빠지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직장에서 요구하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에게 나를 찾으라는 주문은 가혹하다. 과연 나를 찾은 사람이 직장 생활에 몰두할 수 있을까. 여전히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 있을까. 그 반대다. 인문적 직장인은 일에서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상사 앞에서 쩔쩔매지 않는다. 동료와 거래처에 관대하다. 후배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조바심과 경쟁심을 부추겨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조직에 부적합하다. 모난 돌이다. 결국 정 맞는다." - P199

206 자신에겐 키우고 활용할 만한 강점이나 잘 하는 게 없다고 버티면 하는 수 없긴 하지만, 문제는 약점을 감추려고 애쓴다 해서 감춰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알고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것일 뿐이다. - P20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07-17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계속해서 더운 날씨예요.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베텔게우스 2018-07-17 22: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이제야 대댓글 다는 방법을 알았네요.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39 홧김에 김지영 씨는 늦게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일할 거라고. 1분도 날로 먹을 생각 없다고. 그리고 미어터지는 지옥철을 견디기 힘들어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며 내내 섣불리 뱉어 버린 말을 후회했다.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 P139

149 의사는 모니터에 뜬 김지영 씨의 이전 치료 기록들을 훑어본 후, 모유 수유를 해도 괜찮은 약들로 처방하겠다고 말하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 P149

151 김지영 씨가 결혼하던 해에 자연주의 출산 관련 다큐멘터리가 TV에서 방영되고, 이후로 관련한 책들이 출간되면서 자연주의 출산 붐이 있었다. 의료진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아이와 엄마가 주체가 되어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자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김지영 씨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해 병원을 선택했고, 출산 방법은 부모의 가치관과 사정에 따른 판단일 뿐 어느 것이 더 낫고 말고 할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언론에서 병원의 처치와 약물들이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인과관계도 불분명한 악영향을 언급하며 죄책감과 불안감을 안겨 주었다. 머리만 좀 지끈거려도 쉽게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들이, 점 하나 뺄 때도 꼭 마취 연고를 바르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는 기꺼이 다 아프고, 다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도 다 이겨 내라고 한다. 그게 모성애인 것처럼 말한다. 세상에는 혹시 모성애라는 종교가 있는 게 아닐까. 모성애를 믿으십쇼. 천국이 가까이 있습니다! - P151

180(작품 해설) 다양성과 개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에 여성에 대한 대표성을 지니는 캐릭터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에는 ‘나답게‘ 사는 것, 그래서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개인의 과제가 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좀처럼 ‘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통해 내가 구성되는데, ‘나‘를 구성할 만한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정체성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경험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정체성들 중에서도 자기 정체성의 핵심은 ‘성‘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주목하면 한국인의 절반은 상당히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성에 기반한 "젠더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모든 공적 영역에 작동하는 강력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 P1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과학으로 사회성 기르기 - 복잡한 세상 속 너와 나를 이해하는 유쾌한 브레인 사이언스
박솔 지음 / 궁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9 오~ 똑똑한데? 맞아. 측두엽과 두정엽의 역할이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관여하는데, 이 영역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그리고 과학자들이 특정 뇌 영역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본 결과 알아낸 건데, 뇌의 앞쪽 부분인 전두엽도 관련이 있대. 전두엽에는 감정을 조절하거나 보상과 처벌에 대해 생각하는 영역이 분포해 있거든. 이 영역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사회적 규범과 관련된 상황극을 보여주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했더니 일반적으로 도덕적이라고 여겨지는 판단을 내리지 못했대. 사회적 규범을 잘 이해한다는 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내게 보상으로 돌아올지, 또 처벌을 피하려면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지 잘 안다는 거겠지? 그런데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게 어려워질 거야. 마지막으로 한 군데가 더 있는데, 혐오감을 관장하는 섬이랑이라는 영역도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데 관여한대. - P49

50 뇌 속에서 ‘도덕’을 찾으려면

도덕은 사회적 규범의 하나다. 사회적 규범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행동이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매우 어렵고, ‘도덕심’을 측정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과 같이 어디서든 ‘비도덕적’이라고 여겨지는 상황과 행동이 존재한다. 뇌에서 도덕심을 찾을 때는 이처럼 어디서나 도덕적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이 이용된다.

연구자들은 특정 상황을 제시하고 그 상황에서 피실험자가 하는 대답이나 행동과 그 때 일어나는 뇌 활성의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도덕심’을 유발하는 뇌 영역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까지 이뤄진 뇌 속의 ‘도덕’을 찾기 위한 다양한 연구 결과에서 ‘도덕심’을 관장하는 뇌 영역은 한곳으로 콕 집어 나타나지 않았다. 도덕적 판단은 사회 규칙 등의 학습 내용과 감정적 반응 등 다양한 요소가 조합되어 나타나는 의사결정 과정이기 때문에 여러 뇌 영역의 활성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뇌의 특정 영역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경우 성격이 완전히 변하는 경우는 알려져 있다. 그 중 한 예가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피니어스 게이지는 1848년, 뇌의 전전두피질 아래쪽 부분을 커다란 막대기가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이나 지각 능력 등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이 부상 이후 피니어스 게이지의 도덕성, 사회성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다른 성격을 가진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였따.

피니어스 게이지의 뇌에서 손상을 입었던 바로 그 영역인 전전두피질의 아래쪽 부분은 실제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이 영역은 특히 죄책감이나 동정심, 부끄러움 같은 사회적 감정을 느끼는 데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이 전전두피질의 아래쪽 부분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제시한 뒤 그 대답을 뇌에 손상이 없는 사람들의 대답과 비교해본 결과, 전전두피질의 아래쪽 부분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감정이 개입되는 도덕적 판단을 잘 내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브레이크가 망가진 열차가 달려오고 있다. 열차가 달려가는 방향에 다섯 사람이 서 있다. 나는 육교 위에서 그 상황을 보고 있는데, 내 옆에 서 있는 조수를 밀어 떨어뜨리면 열차를 막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을 희생시켜 여러 사람을 구하는 것과 고의로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 중 무엇이 더 도덕적인 선택일까?

이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본다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옆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 역시 도덕적이라고 볼 수 없는 선택이며,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불러올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전전두피질의 아래쪽 부분에 손상을 입어 죄책감, 희생에 대한 책임 같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뇌에 손상이 없는 사람에 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겠다는 선택을 내리는 비율이 더 높았다. 또 이들은 선택을 하는 데 있어 망설이는 시간도 훨씬 짧았다.

반면, 이 사람들이 사회 규칙이나 학습한 도덕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길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과 같이 감정적 판단을 동반하지 않는 상황의 경우 전전두피질의 아래쪽 부분에 손상이 있는 사람도 정상적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감정을 동반하는 모든 도덕적 상황에서 전전두피질의 아래쪽 부분이 그 역할을 하는 걸까?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상대방보다 내가 적은 돈을 배당받는 경우 전전두피질의 아래쪽 부분에 손상을 입은 사람도 대부분 화를 내며 제안을 거절했다.

이 경우는 앞선 경우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적 판단을 내리는 상황이었고 최후통첩 게임의 경우는 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감정적 판단을 내리는 상황이었다. 즉 전전두피질의 아래쪽 부분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감정이 아닌, 제삼자가 처한 상황, 타인과 나의 관계에 대한 감정인 ‘사회적 감정’이 개입되는 판단을 내리는 데 관여하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 P50

125 부끄러움을 느끼는 뇌

부끄러움, 수치심도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두 감정은 사회적인 상호 작용을 반드시 동반하는 ‘사회적 감정’으로 앞서 얘기한 기쁨, 슬픔, 분노, 혐오감, 공포와 같은 감정과 조금 다르다.

기쁨이나 슬픔, 분노, 혐오감, 공포심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 작용이 없어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꽃을 보면 기쁘고, 기르던 화분이 시들어 죽으면 슬프고, 화분을 잘 돌보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날 수도 있다. 또 화분에서 징그러운 무늬의 풀이 돋아난 걸 보면 혐오감이나 공포심이 들 수도 있다. 다섯 가지 감정을 느낄 동안 다른 사람의 개입은 전혀 없다.

반면,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은 타인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감정이다. 죄책감이나 자부심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수치심은 뇌의 슬전대상회라는 곳과 후대상피질 영역에서 느낀다는 연구가 있다. 후대상피질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나타나는 고차원적인 행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부끄러움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뇌의 슬전대상회 영역의 크기가 크고, 후대상피질의 두께가 얇다고 한다. 또 두려운 감정을 느끼는 편도체의 크기도 작았다고 한다. - P125

163 딱 그 말이 맞아. 고장관념이나 편견에 의한 반응이 바로 그래.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편견과 고정관념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거지. 자기도 모르게 하는 행동, 즉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한다는 건,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뇌가 먼저 결정을 내리고 반응한다는 거지. 이게 바로 고정관념과 편견에 의한 반응의 중요한 특징이야. 그리고 편견과 고정관념 모두 자기가 속한 집단,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이렇게 비슷한 구석이 많은 둘의 차이를 굳이 나눠보자면 이래. 고정관념은 어떤 집단에 대해서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다 이럴 거야, 라고 단순하게 일반화해서 생각하는 걸 말해.

편견은 사람들이 직접 겪어보기 전에 미리 예상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을 전반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쓰인대. 그리고 주로 부정적인 평가들이야.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편견은 특히 감정적인 반응,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를 가리킨다고 해.

편견은 고정관념보다 좀 더 감정적인 판단이고, 또 전반적인 집단에 대한 평가보다 그 안에 속한 어떤 개인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아. 음…… 예를 들어서, 네가 공대 남자는 다 말주변이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건 고정관념이지만, 저 사람은 공대 남자라 성격이 별로일 거다. 그래서 싫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편견인 거지. - P163

230 마음의 이론을 수행하는 뇌

마음의 이론을 수행하는 데는 측두두정정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 영역의 역할만으로 완전한 마음의 이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이론이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여러 사람이 사회를 꾸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인 사회성의 기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은 감정적 요소와 인지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가능하다.

마음의 이론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른 영역에는 전전두피질의 중앙 부분과 상측두구가 있다. 이 영역들은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주변 환경을 고려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230 나는 마음의 이론을 수행할 수 있을까? - 샐리 앤 테스트

마음의 이론은 특히 다섯 살 이하 어린이들에게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마음의 이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샐리 앤 테스트’라고 불리는 간단한 테스트로 확인해볼 수 있다. 간단한 상황을 그린 만화를 보여주고 그 상황에 대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는지 보면 된다.

샐리와 앤이라는 두 명의 아이가 각각 바구니를 가지고 있다. 샐리에게는 구슬이 하나 있다. 앤이 보는 앞에서 샐 리가 이 구슬을 자신의 바구니에 넣는다. 그리고 샐리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샐 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앤은 샐리의 바구니에 있던 구슬을 꺼내 자기 바구니에 넣는다. 잠시 후 샐 리가 다시 돌아온다. 샐리는 구슬을 어느 바구니에서 꺼낼까?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당연히 자기 바구니를 들여다볼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샐리는 앤이 구슬을 옮겨 놓은 것을 모르니까.

아주 쉽고 간단한 것 같지만 이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샐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은 나와 별개로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샐 리가 앤의 바구니에서 구슬을 꺼낼 거라고 답할 것이다. 샐리는 앤이 구슬을 옮긴 사실을 모르지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구슬이 앤의 바구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대답을 한다면 앤의 바구니를 들여다보는 게 맞다.

실제로 다섯 살이 안 된 어린아이들이나 자폐 증세가 있는 사람 대부분이 이 같은 대답을 한다. 이들에게서는 마음의 이론을 수행할 수 있는 뇌 영역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세 이하의 어린아이들, 또 자폐 증세가 있는 사람 다수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나와 독립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P2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이란 무엇인가
한병철 지음, 김남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 강제로서의 권력이라는 모델은 권력의 복합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강제로서의 권력은 타자의 의지에 대항해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의 매개 수준은 매우 낮다. 여기서 에고와 타자는 서로에 대해 적대적 관계에 놓이며, 에고는 타자의 영혼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매개 수준이 높은 권력은 타자가 하려는 행동에 맞서는 권력이 아니라 그 타자로부터 솟아나 작용하는 권력이다. 더 강한 권력은 타자의 미래를 봉쇄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형성해준다. 그러한 권력은 타자의 특정 행동에 맞서려는 대신, 타자의 행동반경에 영향을 주거나 그것을 변화시킴으로써 부정적인 제재 없이도 타자가 자발적으로 에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게 한다. 이를 통해 아무런 폭력 행사 없이 에고는 타자의 영혼 안에 자리를 잡는다. - P18

21 권력이 자유를 배제한다는 견해가 고집스럽게 이어지지만,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에고의 권력은 타자가 자발적으로 에고의 의지를 따르는 관계에서 최고에 도달한다. 에고는 타자를 강제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권력이란 모순어법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가 자유로이 에고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권력을 얻으려는 자는 폭력이 아니라 타자의 자유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절대적 권력은 자유와 복종이 서로 완전히 합일되는 순간에야 얻을 수 있다. - P21

73-4 푸코가 감옥, 군대 또는 병원에서 찾아내는 정형외과적 권력은 무엇보다 신체에 집중되어 있다. 푸코는 신체에 시선을 고정시킨 나머지 상징적 차원에서 관습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권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 아비투스는 한 사회 집단의 경향이나 관습을 지칭한다. 그것은 특정한 지배 질서를 관철시키는 데 기여하는 가치나 지각 형태를 내면화함으로써 생겨난다. 반성 이전에 작동하면서 신체적으로 작용하는 아비투스는 현존하는 지배 질서로의 편입을 가능하게 하는 습관의 자동주의를 산출해낸다. 그로 인해 사회적 소수자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배제했던 지배 질서를 공고화하는 태도 전범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아비투스는 신체적인 것에서도 작동하는 지배 질서를, 의식하기도 전에 긍정하고 승인하게 해준다. 우리가 사회적 위치 때문에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도 이것이다. 해야만 하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취향이라고 양식화된다." 이를 통해 "희생자들이 사회적으로 부여된 운명에 스스로를 봉헌하고 희생하게 만드는 아모르파티,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다. 운명이 자유로운 선택인 양 체험되는 것이다. 피지배자들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자신의 상태를 자기 취향으로 삼게 된다. 빈곤이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 되고, 강제나 억압이 자유로 여겨지는 것이다. 아비투스는 지배전 권력관계가 합리적인 근거들과 무관하게 거의 마법적 방식으로 재생산되도록 만든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론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권력은 강제라는 모습으로 등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권력은 자유의 감정을 불러내는 곳에서, 어떠한 폭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 가장 막강하고 가장 안정적이다. 이때의 자유는 사실일 수도 있고 가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은 권력을 안정시키고 구성하는 데 기여한다. - P73

101-2 유한한 존재는 타자에 둘러싸여 있다. 자기주장이란 이 존재자가 타자와 접촉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머문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자아의 연속성이 없다면 존재자는 타자가 불러낸 부정성과 부정적 긴장감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다. 자신 안에서 이 부정성을 견뎌낼 수 없고, 타자를 자신 안에 통합할 능력이 없는 존재자에게는 존재할 수 있는 권력/힘이 없는 것이다. 틸리히 또한 존재의 권력/힘을, 부정성 혹은 그가 말하는 "비존재"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비존재를]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찾는다. "더 많은 비존재를 극복했거나 극복할 수 있다면 존재의 권력/힘은 더 커진다. 더 이상 이를 견디거나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전적인 무력, 모든 존재의 권력/힘의 종말, 패배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가 갖는 위험이다.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 안에 지니게 되면 그 생명체는 더 큰 위험에 빠지는데, 이 위험에 맞설 수 있다면 그 생명체는 더 큰 권력/힘을 갖게 된다. [……] 스스로 파괴되지 않고서도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의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다면 생명체는 그만큼 더 강해진다." - P101

177-8 각주47) 이러한 경계 없는 친절함은 교환 원리에 근거한 소통적 친절함과도 대립된다. 소통적 "기술"로서의 친절함은 "자신의 견해나 기대의 표현을 적절한 순간이 올 때까지 미룰 수 있는" "능력"이다. 그 순간까지의 시간은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채워진다." 소통적 친절함은 "타자의 자기묘사를 보장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자신의 기대를 배치하는 원리"에 의해 이끌어진다. 체계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소통적 친절함은 "형식적 체계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데 기여한다. 타자가 좋은 모습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한, 다시 말해 그 타자의 자기묘사가 성공하도록 해주는 체계는 ‘친절하다.‘ ‘친절한 자‘는 "타자가 드러내고 싶어 하는 모습대로 그를 대해주는" 사람이다. 전략으로서의 친절함이란 "A가 파트너인 B가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B 또한 A에게 그런 사람으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태도이다". 따라서 기술로서의 소통적 친절함이란 비대칭적 구조가 아니다. 친절한 자는 자기 자신의 기대나 견해,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소통적 교환의 장에 내놓을 적절한 순간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타자로 하여금 성공적인 자기묘사를 하도록 도와주는 수동적 혹은 능동적인 듣기는 자신의 묘사를 위한 우회로인 것이다. 따라서 소통적 친절함이란 결국 자기배려로 담지되는 교환 행위이다. - P1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