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른이 됐다.
언제, 어떻게, 왜, 어른이 되는지 궁금했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욕했던 모든 어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랬던 거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막연히 알 것 같았다.

이름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났다.
어느새 다른 세계. - P161

경험상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 주면 좋지 않다. 누구든 어떤 이야기는 오래 들으면 결국 다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듣게 된다. 알게 되면 아는 만큼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만큼 괴로워진다. 그 사람을 걱정하게 되고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선 사랑하게 되고 반대로 미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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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세상일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타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주인이고 통제할 수 있지만, 타인이 할 수 있는 일의 주인은 타인이며 그의 통제하에 있으므로 내가 이래라저래라 말할 수 없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지극히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타인의 통제하에 있는 것처럼 회피하거나 타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처럼 통제해 보려고 헛수고를 하면서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 P50

결론은 이렇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어떤 것이 정의의 길인가를 판단해야 할 때는 자신에게 묻는 것이 빠르다. 이해타산이나 아집(我執)또는 감정이나 편견 등 주관적인 장애요소를 모두 털어버리면 당신이 체감하고 있는 정의의 상(像)이 떠오를 것이다. 그것이 정의다. - P78

그렇다고 아무 때나 객기 부리듯 정의를 들먹여서는 안 된다. 먼저 올바르지 않은 일에 대해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로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력의 효과가 없더라도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아니라면 때를 기다려야 한다. 때가 왔을 때 전력을 다해 관철시켜야 한다. - P80

돌이켜보면 이렇게 나는 젊은 시절 실수가 많았다. - P136

막스 베버(Max Weber)는 "국가는 정당한 물리적인 폭력 행사를 독점하는 유일한 공동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가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한 국가의 형태는 유지되겠지만 그 권력의 행사가 정의를 잃어버릴 때는 그 국가 권력은 결국 동요하게 된다. - P137

흔히 인류 사회에서 민주주의 정치의 발전이 이루어진 데에 대하여 두 가지 인류의 깨달음이 그 계기가 된 것으로 설명된다.
첫째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액턴(John Emerich Acton)이 적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깨달음이다. 둘째는 절대적인 당위 명제가 개념상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의 실천이성으로는 이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고 대립되는 가치관 중에서 절대적인 가치관을 일의적(一義的)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는 칸트의 관념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깨달음이다. - P169

두번째 깨달음 즉, 절대적인 당위명제가 존재할 수 없다는 자각으로부터는 국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하고 이 대표자들이 의회에서 ‘다수결‘로 가장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은 의견을 채택하여 이를 최선의 실천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민주정의 절차적 원리에 관한 지혜가 나왔다. - P171

한 시대, 한 사회에서의 기존의 진리와 가치는 사상의 자유경쟁과 도전을 거쳐 새로운 진리와 가치로 바뀌면서 발전 또는 창조되는 것이며 이는 하나의 역사의 발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진리와 가치의 발전 및 창조는 때로는 기존의 진리와 가치를 부정하고 극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서도 현재의 보편타당한 가치 기준을 찾았으나 이 가치 기준이 앞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가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물론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한 시대, 한 사회에서의 보편타당한 가치 기준을 찾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법관은 무의식중에 빠지기 쉬운 편견과 선입관 그리고 관행과 습성에서 오는 사고의 경향성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법관은 수시로 자신이 이런 것들의 영향하에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검토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 P193

"외롭지 않는가?"
"조금은 외롭지만 견딜 만하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그렇게 계속할 생각이다. 이것이 가장 마음 편한 방법이다."
나는 약간 놀랐다. 불과 열서너 명의 조사만으로 미국 법관 일반의 경향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세 번째 그룹과 같이 극단적으로 자기 규율을 지키는 법관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이 그룹은 가장 젊은 법관들이었다. 이들은 법관직에 대한 철저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토록 스스로 사교를 단절하면서까지 자기규율(self discipline)을 지키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미국 사회는 동양보다 개방되고 사교적인 사회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사회에서도 법관 중에 자기의 몸가짐을 지키는 데 추상(秋霜)과 같은 기상을 보이는 이들을 만난 것은 더할 수 없이 상쾌한 경험이었다. - P200

진실의 열매가 저 너머에 보이더라도 개인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담장을 짓밟고 넘어가야만 따올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 열매를 포기하려는 것이 적법 절차주의의 기본 정신이고 이것은 조세 법률주의의 기본 정신과도 상통한다. - P433

다수결은 여러 의견 중 어떤 의견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지 가려내는 실용적 수단일 뿐이지 어떤 의견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결은 선과 정의를 가리는 것과는 상관없는 몰가치적인 해결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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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심자의 행운
2.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보상 시스템
3.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 없어 (빙고)
4. 점점 난이도가 오르는 과제는 동기를 지속적으로 유발 / 이를 극복하도록 몰입하게 함
5. 과잉 소득, 과로사 = 현대 사회의 높은 생산성이 가져온 새로운 사회 문제
6. 과잉 소득과 과로사의 이유: 중단 규칙의 파괴
7. 난이도 중독 챕터의 결론

(이하 요약 생략)










초보자에게 따라오는 운은 중독성이 강하다. 성공의 쾌락을 맛보게 한 다음 앗아 가기 때문이다. 그 탓에 실현 불가능한 야심을 품고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나 기대할 수 있는 높은 목표를 세우게 된다. 두 번과 성공은 실제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신기루일 뿐, 실패할 때마다 쌓여 가는 상실감 때문에 실력도 없으면서 처음에 맛본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자신을 더욱 닦달한다. - P199

사람들이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 매료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게임에 내장된,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정교한 보상 사이클이다. 게임 초반에는 보상이 신속하게 제공된다. 두세 번 치면 괴물이 죽고, 5~10분 만에 한 레벨이 올라간다. 어렵지 않게 기술을 습득한다. 그러다가 보상과 보상 사이 시간 간격이 급격히 길어진다. 이내 다음 레벨로 올라가려면 5시간이 걸리다가 삽시간에 20시간이 걸리게 된다. 초반에는 즉각 보상을 해 준 다음 갈수록 높은 레벨에 다다르기 버겁게 하는 식으로 게임이 작동한다. - P200

데이비드 골드힐은 어느 정도의 고난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특급 영화배우들이 왜 비참하다고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매일 밤 새로운 상대를 만나고 식당에 갈 때마다 공짜로 밥을 먹는다고 상상해 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이기기만 하는 게임을 따분하다고 여깁니다." 골드힐이 말한 그런 게임은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금방 싫증이 난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상실감과 어려움과 역경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길 때마다 성공이 가져다주는 희열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중한 휴식 시간에 어려운 십자말풀이를 하고 험준한 산을 오른다. 성공하리라는 확신보다 역경과 고난이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역경은 중독성 있는 많은 체험들이 갖추어야 하는 필수 요소다. - P210

근접 발달 영역은 강력한 동기 부여 요인이다. 학습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학습 과정을 즐겁게 만든다. 1990년 헝가리 출신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imihaly가 도전을 극복하는 데 따르는 심리적 이득을 다룬 명저 <몰입Flaw>을 출간했다. 칙센트미하이는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 작품 창작에 깊이 몰입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술가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몇 시간이고 작업에 몰두했다. 칙센트미하이의 설명대로, 사람들은 몰입 즉 대단히 집중된 정신 상태인 플로flaw-‘경지에 들기entering the zone‘라고도 알려져 있다-를 체험하면 진행 중인 작업에 너무나 심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이 지점에 들어서면 심오한 환희나 황홀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경과 마주하고 그 역경을 가까스로 극복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흔치 않은 상황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오랜 시간 지속되는 희열감이다. 칙센트미하이도 인정하듯 몰입은 오랫동안 여러 동양 철학과 종교의 근간이 되어 왔다. 그는 이 개념을 다듬어 대중에게 전하는 데 공헌했다.) 칙센트미하이는 점증하는 난이도가 몰입의 중요한 바탕이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유용한 도표를 만들었다. - P218

그들은 한번 소득을 올리는 행위를 하기 시작하자 이미 모아 둔 소득이 넉넉한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중단 규칙에 너무 무감각해져서 휴식조차 제쳐 놓고 정신없이 일했다. 3장에서 소개한 신경과학자 켄트 베리지는 더 이상 즐겁지 않은데 특정한 행위를 계속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학생들은 일단 일에 갇히자 일에서 얻는 보람이 줄어들어도 멈출 수가 없는 듯이 보였다. 논문 말미에서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측했다.

과잉 소득이란 개념은 지나친 일반화[어림짐작]일 수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소득은 매우 낮았다. 가능한 한 많이 벌어 축적해 두는 일은 생존에 유용한 것[규칙] 이었다. 너무 많이 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는데, 애초에 너무 많이 벌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과식과 마찬가지로 과잉 소득은 생산성의 향상에서 비롯된 현대 사회의 문제며, 그로 인해 인간이 대가를 치러야 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다. - P230

사람들이 무리해서 운동하게 만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을 24시간 직장에 묶어 놓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퇴근하면 업무를 잊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딜 가든 스마트폰, 태블릿, 원격 로그인, 이메일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중단 규칙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1960년대 말 이후로, 특히 지난 20년 사이에 일본 근로자들은 ‘과로사‘라는 말을 수군거려 왔다. 이 용어는 특히 일과가 끝나도 직장을 나서지 못하는 중견급과 고위직 간부들에게 적용된다. 과로로 인한 뇌졸중, 심장병을 비롯해 스트레스가 야기하는 각종 질병으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예컨대 2011년 타이완의 나니아 테크놀로지Nanya Technology 라는 회사에서 일하던 한 엔지니어가 책상 앞에 앉아서 숨진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엔지니어는 하루 16시간에서 19시간을 근무했고 때로는 퇴근한 뒤에도 일을 했다. 부검 결과 사망원인은 ‘심장 쇼크‘로 밝혀졌다. 이러한 과로사 사례를 보면 사망자가 무리해서 일한 것이 사망 이유다. 대개 직장에서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한다. 먹고살기 위해 죽어라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일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 P229

<테트리스>나 <2048>의 사례가 보여 주듯이 인간은 ‘낭중취물‘과 ‘난공불락‘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달콤한 유혹의 지점을 뿌리치지 못한다.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 경제적 목표, 성공의 야망, 소셜 미디어의 목적, 운동 목표 등에서 최적 수준의 난이도를 원한다. 중독성 있는 체험은 바로 이 달콤한 지점에 위치한다. 목표 수립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면서 중단 규칙이 허물어지는 지점 말이다. 테크놀로지 전문가, 게임 디자이너, 상품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제품을 다루는 실력이 향상되고 숙련되면 그것이 다시 확실하게 복잡하고 어려워지도록 수정한다. - P232

그는 "스마트폰이 독극물이에요, 특히 아이들에게는"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쳐다보지를 않아요. 공감할 줄도 모르고요. 알다시피 애들은 참 짓궂죠. 괜히 한번 건드려 보는 겁니다. 어떤 애한테 "야, 뚱보"라고 하면 그 애 표정이 일그러지죠. 그럼 "에이, 그런 표정을 보니 기분이 꽝이잖아"라고 하죠. 그런데 문자로 "야, 뚱보" 하고보내면 상대방 아이는 "음, 재밌네. 맘에 들어" 라고 한단 말이죠.

루이스 C.K.가 생각하기에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소통은 필수다. 자기가 뱉은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이들이 배울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P294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단죄하면 성 표출이 지하로 숨는 결과를 낳는다. 예컨대 보수 성향의 주에서는 10대가 임신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성관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소득, 학력, 낙태 시술 접근성 등의 차이를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억압은 성욕을 꺾지 못한다. 오히려 성욕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에게 이는 새로울 것이 없는 정보다. 오래전부터 심리학자들은 억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지력만으로 중독을 극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193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특정한 개념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 개념에 끌리는 사람이라고 최초로 주장했으며, 그의 후계자인 시모어 페시바크Seymour Feshlbach와 로버트 싱어Robert Singer는 프로이트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P318

동영상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 거기에 등장한 사람이 두려워했는지 물었다. 20년 전 프로이트가 예언한 대로였다. 두려움을 억누르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들은 동영상 속 남성이 두려워했다고 대답했다. 이 학생들은 억누르라고 한 그 느낌을 자기 주변 세상에 투사했다. 두려움을 표현하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들은 동영상 속 남성이 두려워했다고 답하는 확률이 훨씬 낮았다. 이 학생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억누르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들보다 두려움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웠다.
진보 성향이 훨씬 강한 동북부와 북서부 주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더 많이 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래전 프로이트가 예언한 것처럼 오히려 그 반대다. 전통적인 성 가치관을 지닌 보수 성향 주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온라인 포르노 서비스에 가입할 확률이 더 높다. - P319

어떻게 보면 <카우 클리커>는 전혀 해롭지 않은 재미난 게임이다. 그러나 보고스트는 중요한 사실을 지적했다. 바로 모든 것이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밥을 먹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의 사례를 보자. 한 가지 해결책은 식사를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음식을 비행기가 날아가듯이 입에 넣어 주는 것이다. 당장은 좋은 생각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 아이는 식사를 게임으로 여기게 된다. 이제 식사는 게임의 속성을 띠게 된다. 밥 먹는 행위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할 가치가 없다. 생명 유지와 영양 공급이란 차원에서 밥 먹는 동기를 부여받는 대신, 먹는 행위 자체를 게임이라고 학습하게 된다.
이 아이가 식사를 실제로 게임으로 생각하든 말든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음식을 먹는 목적을 곧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이가 식사의 진짜 동기를 재미와 맞바꾸듯이, 게임화는 다른 체험들 또한 사소한 일로 만들어 버린다. 오덴플란 지하철역에 설치된 피아노 계단은 재미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실제로 건강에 바람직한 행위를 증진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운동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암시함으로써 운동이 건강과 행복을 위해 하는 행위라는 참뜻을 훼손할 수 있다. 피아노 계단처럼 애교 넘치는 게임화는 솔깃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내일, 다음 주, 내년에 운동을 대하는 생각을 바꿔 줄 가능성은 없다. - P379

선진국 인구의 절반이 뭔가에 중독되어 있고 그 뭔가의 대부분은 행위다. 우리는 스마트폰, 이메일, 비디오 게임, TV, 일, 쇼핑, 운동 등에 낚여 있다. 급속한 테크놀로지 발달과 정교한 제품 디자인에 힘입어 생겨난 이런 체험들을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 중에서 2000년에 존재했던 체험은 드물다. 2030년 무렵이면 우리는 지금 씨름하고 있는 중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중독과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몰입도와 중독성 강한 체험들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애초에 왜, 언제, 어떻게 행위에 중독되고 거기서 벗어나게 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야 하는 숭고한 이유를 따진다면 우리의 건강과 행복과 안녕이 달린 문제기 때문이다. 더욱 현실적인 이유는 우리가 서로 시선을 맞추고 진정으로 교감을 나누는 능력을 유지할지 여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달렸기 때문이다. - P382

우리는 옛날을 돌이켜 보면서 많은 게 변했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세상은 과거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서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고 삶은 더 단순했다. 반면에 우리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경향도 있다. 지금의 우리와 우리가 누리는 삶이 이대로 영원히 이어지리라고 말이다. 이를 ‘역사의 종말 환상end of history illusion‘이라고 부른다. 10년 전과 비교해 오늘날 무엇이 변했는지 알기는 쉽지만 지금과 비교해 앞으로 10년 뒤 무엇이 달라질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은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우리 존재가 더 이상 발전이 필요 없는 적절한 상태에 도달했으며 이제 삶은 지금 이대로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는 다가올 변화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하게 만든다.
행위 중독의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다. 10년 전이었다면 페이스북 사용자가 15억 명에 달하고 사용자 대부분이 페이스북에 쓰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호소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수천만 명의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날마다 몇 시간씩 사진을 올리는 데 열을 올리고 매일 새로 올라오는 6000만 장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손목에 두르는 작은 기기로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세고 확인하는 사람이 2000만 명이 넘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P383

페이스북이 생긴 지 겨우 15년 남짓하고 인스타그램의 나이는 그 절반이다. 10년 후면 새로운 플랫폼이 대거 등장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골동품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10년 뒤에도 이런 플랫폼들이 선발 주자라는 이점을 안고 여전히 거대한 사용자층을 끌어들일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새로 등장할 플랫폼들이 갖출 흡인력에 견주면 아주 미미한 힘을 가진 1세대 유물로 취급될 공산이 더 크다. 물론 10년 후 세상이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역사가 오늘날을 기점으로 변화를 멈추었다고 믿을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리고 행위 중독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핏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할 근거 또한 전혀 없다. - P384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리는 테크놀로지를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어떤 기술 발전은 행위 중독을 부추기지만 어떤 기술 발전은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기적 같은 일을 해낸다. 신중하게 고안해 만들면 중독성을 띠지 않을 수 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중독성은 없는 제품이나 체험을 만드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예컨대 직장을 오후 6시에 폐쇄하면서 직장 이메일 계정 역시 자정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폐쇄하면 된다. 부나 장으로 나뉘는 책처럼 게임도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중단하는 지점을 만들어 넣을 수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에서 수치를 제거해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고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게 만드는 산술적인 피드백을 없애면 된다. 아이들은 어른의 적절한 관리 아래 천천히 기기를 접하게 함으로써 갑자기 한꺼번에 온갖 기기에 파묻히지 않게 하면 된다. - P384

중독 체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대개 문화적 요인에 좌우된다. 우리 문화가 일과 게임과 기기 화면에서 자유로운 시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시간을 누리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우리와 우리 자녀들도 행위 중독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라면 우리는 기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마주보며 직접 소통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유대감의 불빛은 기기 화면의 불빛이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것이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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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26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네모 안의 글 - 어느 정도의 고난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글에 동의합니다. 실패나 역경이 없다면 행복도 없을 것 같아요.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먹을 것이 잔뜩 쌓여 있고, 누구나 자기를 사랑해 주고, 하는 게임마다 다 이기고 하는 천국이 있다면 인간은 지루해서 살맛이 안 날 거예요.
뽑아 주신 글, 잘 읽고 갑니다. ^^

베텔게우스 2021-08-26 16:04   좋아요 0 | URL
백번 동감합니다. 예로 폭염이라는 고난(?)이 없었으면 지금의 선선함도 별로 반갑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여름도 매력이 아주 없는건 아닙니다만.. ㅎㅎㅎ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허핑턴이 스마트폰 충전에 주목한 것은 탁월한 통찰이다. 성인 중 95퍼센트가 잠들기 전에 빛을 발산하는 전자 기기를 사용하고 절반 이상이 밤새도록 이메일을 확인한다. 18세에서 64세 사이의 성인 60퍼센트가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잠자리에 든다. 이 때문에 성인 중 50퍼센트는 늘 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잠을 설친다고 말한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수면의 질이 점점 나빠졌는데 특히 지난 20년 동안 저하 폭이 두드러졌다. 전자 기기가 발산하는 푸르스름한 빛이 주범 중 하나다.
지난 수천 년 동안 푸른빛은 오직 낮에만 존재했다. 촛불과 장작불은 적황빛을 띠었고 밤에는 인공조명도 없었다. 이런 불빛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우리 뇌는 붉은빛을 잠자리에 들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푸른빛은 얘기가 다르다. 푸른빛은 아침을 알린다. 따라서 성인 중 95퍼센트는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날이 밝았다고 몸에 신호를 보냄으로써 밤을 아침이라고 착각하는 시차증을 야기한다.
우리 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솔방울샘은 밤에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멜라토닌은 졸음을 유발하는데 그래서 시차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멜라토닌을 섭취한다. 푸른빛이 안구 뒤쪽을 자극하면 솔방울샘은 멜라토닌 분비를 멈추고 몸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 P93

베리지의 견해는 중독이 그토록 흔히 재발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심지어 중독자가 자신의 삶을 파괴한 마약을 증오하게 되더라도 뇌는 계속해서 마약을 절실히 원한다. 마약이 과거에 심리적 욕구를 해소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 갈망이 여전히 남아 있다.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이유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증오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잊지 못하고 자꾸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른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연인 사이의 밀고 당기기도 똑같은 효과를 낳는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는 호감은 덜하지만 더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상대에게 더 매료된다. - P113

중독에 관한 진실은 우리가 지닌 많은 직관에 의문을 던진다. 위험한 마약과 짝사랑에 빠지는 주체는 몸이 아니라 특정 물질이나 행위를 심리적 고통의 완화와 연관시키도록 학습하는 정신이다. 실제로 중독은 사랑에 빠지는 행위가 아니다. 켄트 베리지가 증명했듯이 모든 중독자는 자신이 중독된 대상을 절실히 원하지만 그 대상을 좋아하는 이는 별로 없다. 아이작 바이스버그, 앤드루 로런스의 파킨슨병 환자들, 34번 쥐 모두에게 중독은 그 대상이 지닌 매력이 사그라진 뒤에도 계속되었다. - P114

책 밖 세상에서조차 목표는 점점 더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은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목표를 접하고, 웨어러블 기기 덕분에 목표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 손쉽게 자동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달성할 목표를 자기가 직접 세우거나 찾아나서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새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이메일로 전달되거나 화면에 불쑥 나타난다. 몇 시간, 심지어 며칠이고 그런 이메일을 열어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새 메일이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확인하지 않고 못 배기며 이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지고 정신 건강마저 해친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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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돌봄은 삶의 목적을 이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세계적인 선승 조안 할리팩스Joan Halifax는 자신의 저서 『가장자리에 서서』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을 오랜 시간 돌보며 내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저 나 자신부터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낮잠을 자고, 등산을 하며, 책을 읽고, 명상을 하는 시간이 간절했다. 무엇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없이 늘어져 있고 싶었다. 모든 것에 정지 버튼을 누른 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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