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제1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 책이 재미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제목이 너무 딱딱한데다가 표지도 좀 지루해보였다. 한겨레문학상에 큰 관심이 없기도 한지라 그냥 그럭저럭 지나쳤다. 아마도 리뷰를 보지 않았다면, 평생 안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책을 본 소감? 재밌다는 것이다. 소설은 특이한 방식으로 시작한다. 뉴욕의 지하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 이야기. 그 남자는 기억도 거의 없다. 한마디로 기억상실증. 그 이야기가 제법 속도감이 있어서 그런지 읽는 재미가 괜찮다. 그런데, 헉! 갑작스러운, 조금은 실망한 반전의 등장.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도 일종의 트릭이었다. 소설은 빙글빙글 돌고 돈다.

그 도는 이야기가 은근히 슬프다. 미국에 이민 가서 실패한 가정의 이야기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통에 약간 아프기도 했다. 그래도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끝에 가서 묘한 감동을 준다. 그래, 우리가 바라던 바로 그런 감동 말이지!

얼마 전에 본 ‘달의 바다’와 그 여운이 묘하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달의 바다’는 부드러웠다면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거칠게 다가오는 것이 다르지만, 그래도 둘 다 좋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이 똑같이 좋다.

작가 이름 서진. 기억해두련다. 더불어 미안하다는 말도. 책표지 때문에 오해해서 미안하다. 우리의 인연이 빙글빙글 돈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8-2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문학상 작품이군요 :)
보관함에 담을게요 ^^

오월의시 2007-08-25 13:05   좋아요 0 | URL
네.^^
 
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특징은 놀라울 정도로 덤덤하게 썼다는 사실이다. 이별이야기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소설임에도 덤덤하다. 너무 덤덤해서 몇번 깜짝 놀라며 봤다.

하지만 그것을 빼고는 평범한 일본소설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조금은 어설프게 인생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까지 더한다면, 나는 이 소설이 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는지 좀 이해가 안 된다.

그래도 선물하기에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어설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걸 시작해야 하는 사람에게 이런 책 주면 센스 있다는 소리는 들을 것 같다. 그것 외에는 별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글을 두고 소시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보면, 다 뻥이다. 소시민은 무슨! 소설을 위해 쓴 것이 역력한, 머릿속에서 생각한 소시민을 그린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말이다. ‘닭털 같은 나날’은 진짜다. 먼 곳에서 어떤 민족이 학살당하는 것보다 순대국에 나온 순대가 터무니없이 적은 것에 분노하는 그런 사람들을 리얼하게 그렸다. 너무 리얼해서, 리얼리즘 소설이 뭔지는 잘 모르면서도, 이거야 말로 리얼리즘 소설의 정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버렸을 정도다. 리얼리즘이 뭐 별건가? 진짜 같으면 리얼리즘이지.

임씨 부부는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야 하는 것은 직장과 동네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 눈치를 보는 것이고 할 줄 아는 것은 작은 일에 분노하는 것이며 기뻐하는 일은 공짜로 뭔가를 얻거나 덤으로 뭔가를 받았을 때다. 이것이 임씨 부부의 모습인데, 정말 가슴 철렁하게 만든다.

천천히 더듬어보면 류진운의 글은 거칠다. 비유도 없고 은밀한 것도 없다. 투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글의 그 리얼함이 모든 것을 가려준다. 글이 좋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것으로는 가려지지 않는, 소설이 좋다는 말을 백번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설은 훌륭하다.

‘닭털’이라는 그 야릇한 단어로 표현되는 임씨 부부의 모습은 여간해서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소설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는 생각, 아름답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이 책, 부디 영광을 얻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의 나무 핑궈리
한수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본 뒤에, 사람들이 리뷰를 어떻게 썼는지 봤다. 인터넷 서점이라는 서점은 다 검색해봤다. 그 결과 안타까운 마음만 생긴다. 리뷰만 본 게 아니라 판매치도 봤는데, 속상해지기도 한다. 왜 이렇게 좋은 소설이 낮은 판매 지수와 적은 리뷰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나무 핑궈리’는 한수영의 소설집이다. 한수영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녀를 아는 건 아니다. 만나 본 적도 없다. 다만 한수영이 참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소설을 쓴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공허의 1/4’를 읽어봤다면 “그거 당연한 소리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그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그녀의 나무 핑궈리’도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소설이다. 어설프게 위로하는 그런 건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은근슬쩍, 차가운 방 안에서 꽁꽁 얼고 있을 때 방금 다녀간 누군가가 남긴 온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그것을 전해주고 있다.

첫 번째 소설 ‘나비’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엄마 머릿속에는 나비가 산다.”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엄마와 사는 아이의 눈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난하다. 엄마는 밤늦게까지 힘든 일을 하고 높은 꼭대기에 있는 집까지 걸어 올라와야 한다. 그 아득한 풍경의 끝에서 아이가 있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가 어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추운 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를 응원한다. 엄마는 피곤하기에 아이를 보듬어줄 겨를이 없다. 쉴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출근준비를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반복되는 일상. 어찌 보면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지만 엄마의 머릿속에 나비가 살고 있다고 믿는 아이의 마음과 아주 은근히 표현되는 엄마의 애정,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이, 그 모든 것을 감정적이지 않게, 덤덤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표현한 한수영의 글 솜씨가 한데 어우러져 소설은 따뜻해진다. 상상만 해도 포근해지는 그런 소설이다. ‘그녀의 나무 핑궈리’도 그런데... 사람들은 왜 몰라주는 걸까?

내심 기쁘기도 한다. 이런 작가를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 같은 것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래도, 속상하기는 하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더라도, 조금만이라도, 글빨만큼 대우 받으면 좋으련만.

몇 개의 소설이 다소 뻔한 이야기를 보이는 허점 때문에 ‘공허의 1/4’보다 마음을 여는 것이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말하면 ‘그녀의 나무 핑궈리’는 읽을 만한 한국소설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주는 것이 아쉽다. 이 리뷰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한수영이라는 작가가 있고 그녀의 소설이 썩 괜찮다는 것을 기억해서, 혹시 마일리지가 남을 때 ‘그녀의 나무 핑궈리’와 또한 ‘공허의 1/4’까지 사봤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것을 바란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도 2007-08-18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소설 가르쳐줘서 ㄳ~ 읽어볼게요 ^^

오월의시 2007-08-19 20:38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아요T.T

readersu 2008-05-0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탈님 추천으로 이 책을 읽어보려합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소설인데 왠지 기대가 되는군요!
 
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단번에 읽었다. 너무 재밌기 때문이다. 읽고 난 다음에는 가슴이 찡했다. 가슴을 미친 듯이 막 후려치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사람, 어떤 작가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드는데, 결론은 하나, 추리소설의 대가라는 것.

‘붉은 손가락’은 이기적인 가정에서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이 모티프다. 아주 이기적인 자식 놈이 여자를 죽인다. 그리고는 방치. 부모는 그걸 부랴부랴 해결하려 하는데 특별히 CSI를 즐겨본 것도 아니니 허점투성이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고, 부부는 극단적인 수를 쓰기로 한다. 그것이 무언가 하면 바로 XXXX다!!(스포일러를 염려해서 모자이크 처리함)

섬뜩하다면 섬뜩하다고 할 수 있는, 놀라면 놀랍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반전. 기가 막히다. 이렇게 놀라운 반전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 싶기도 하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 반전이 그냥 반전이 아니라 따뜻한 말을 건네는 반전이라는 것이다. 나, 정말 울 뻔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 별표 다섯개가 아깝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