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기와 삶 읽기 2 -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조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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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잠식하고 있는 우리 안의 식민지성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자신이 선 자리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결여된 채 자기 존재를 스스로 타자화시키는 지식인 문화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상적 삶이 경험되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지식 생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거대 담론으로부터 배제된 주변성과 소수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전편에 이어 저자가 왜 이런 유형의 글쓰기를 지속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 또한 남성성, 중심성, 근대성의 형식을 전복하는, 아버지의 언어로부터 벗어나 자기 언어를 되찾으려는, 대안적인 글쓰기 실험인 것.

 

저자의 학문적 여정을 따라가며 제3세계 주변부 지식인이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의식에 동참하다 보면 새삼 나의 가난하고 미약한 그러나 유일한 글쓰기 공간인 이곳 알라딘 서재에서 나는 앞으로 어떤 글쓰기를 해나가는 게 좋을까 하는 물음도 가져보게 된다. 일상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하는 소소한 자기성찰적 글쓰기도 좋지만, 솔직히 털어놓으면 한편으로 이곳에서만큼은 지리멸렬한 일상과 분리된 채 고결한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고 싶은 허영심이 있기도 하다.

 

시시한 구체성만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로부터 벗어나 어려운 책을 탐사하며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고 내 안의 관념성을 한껏 끌어올리고 싶은 욕심. 조금이라도 높이 날아올라보고 싶은 마음. 그것이 비록 얄팍한 지적 허영에 불과할지라도. 아마도 저자는 바로 그런 꿍꿍이야말로 ‘겉도는 말, 헛도는 삶’의 전형이라고 비난할 테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라니 역시 나는 이 책을 뼛속 깊숙한 곳까지 절절하게 읽지는 못한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여담인데, 일전에 읽은 세라 블레퍼 허디의 <어머니의 탄생>(사이언스북스, 2010)에 경제 능력을 갖춘 여성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인류학적 사례로 물질하는 제주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몹시 신기했던 적이 있다. 아니, 어떻게 이 여자는 제주 해녀들의 사정까지 알고 있담? 이 책을 읽고 나서 의문이 좀 풀렸다. 조혜정의 박사 학위 논문을 참고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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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6-09-15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왜 이렇게 책표지가 권위적이고 엄숙하고 추상적이냐. 책의 내용을 배반하는 끔찍한 디자인이다. 저자의 표현을 다시 돌려주자면 이거야말로 `폰즈통에 김치를 담아 도시락 반찬을 싸가고, 화장실의 휴지가 식탁 위에 올라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일관성 있는 스타일과는 무관한 절충주의와 혼돈의 상태`가 아닌가. 이 책이 재판 발행된다면 부디 유쾌발랄한 책표지이기를 바란다. 복고풍 서체에 팝아트 디자인이 괜찮겠다. 패션 못지 않게 철학도 스타일의 완성은 디테일에 있다고.
 
탱고 레슨 - 느끼고, 사랑하고, 충추라!
화이 지음 / 오푸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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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헝얏이 한 땅게라와 연속 세 딴따 이상은 추지 않기로 화이쌤과 약조를 했다는 대목이다. 아마도 이런 게 춤판에서 만나 사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애로사항이 아닐까. 상대가 나 말고 다른 파트너를 만나 추는 춤이 행여나 격렬하지는 않을까 그들만의 세라도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전긍긍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상대방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면 애당초 이 문란한 바닥을 떠나야겠지. 하지만 우리는 이 바닥에서 최초의 스텝을 밟았고 여기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이 바닥이야말로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성립케 하는 전제 조건이자 우리 인연의 전제 조건인 것이다. 여기를 떠날 수 없다면 탱고를 사랑하는 딱 그만큼 상대에 대한 독점욕 역시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밖에.

춤판에서의 연애를 만류하는 이들은 춤판에서의 연애가 우리를 새로운 시험에 들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즐겨라. 마음껏 즐겨라. 하지만 한 사람에게 진심어린 순정을 다 바치거나 목숨을 걸지는 말아라. 폴리아모리즘 사회에서 그리 하면 끔찍한 고통이 예비되어 있을 뿐이니. 뭐 그런 심리이겠지. 하지만 춤판에서 만나 연애를 한다는 건, 관점을 달리 하면 신선한 도전일 것이다. 그것은 독점하지 않는 사랑의 실험이다. 과연 사랑하되 독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유하지도 소유당하지도 않으면서, 독점하지도 독점을 당하지도 않으면서 서로를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사랑을 독점욕과 혼동해온 일부일처제 사회의 관성을 거슬러서 만약 그리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드물고 고귀한 도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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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곡성
나홍진 감독, 곽도원 외 출연 / 기타 제작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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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을 위한 반전의 연속. 자극과 스릴만 쫒다 산으로 가버린 시나리오. 과도한 욕심으로 판을 너무 크게 벌여놔서 나중엔 감독조차 수습하기 벅찼던 거 아닌지. 과연 이 영화가 그토록 분분한 해석을 낳을 만큼 심오한 영화인가? 감독의 전작으로 미루어볼 때 회의적이다. '분분한 해석'이 '미처 수습 못 한 시나리오'의 의도치 않은 결과라는 데 오백 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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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소피 바르트 감독, 리스 이판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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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건강하고 정열적이며 매력이 넘치는 인간도 돈 떨어지면 죽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상기시켜준 영화. 돈이 생명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원천임을, 피 같은 돈이라 할 것도 없이 피가 곧 돈이고 돈이 곧 피임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요즘이어서일까. 무시무시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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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Sicario (시카리오) (한글무자막)(Blu-ray+DVD+Digital HD)
Lions Gate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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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좋은 영화였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랬다. 살아남는다는 것이란 매우 추하고 피의 냄새가 나는 지저분한 거라고. 늑대가 되어야 한다. 속으로는 오금이 저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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