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문학과지성 시인선 353
강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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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이해할 수가 없는 시집이다. 여타 시인들이 자연과 조응하는 순간을 섬세한 언어로 포착해서 그들 자신이 샤먼의 후예임을 드러낼 때 혹은 샤먼을 흉내낼 때, 이 시인은 직접 샤먼으로 변신해서 샤먼의 언어로 노래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서정적이지 않고 차라리 주술적이다. 지극히 원초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무당이 신내림 상태에서 뱉어내는 요설같은 이런 시를 대체 문명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원초적 감수성이라고는 희박한 내가 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집의 화자는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화자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짐에도 도무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 무어라 애도하기가 퍽 난감한, 그런 시집이다. 한없이 모호하고 기이한, 그러면서도 절박하고 고통스런, 흡사 짙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 울부짖는 비명 같은 시집. (이 시집을 읽은 후 우연히 시인이 쓴 산문 몇 편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시를 쓴 시인이라고는 도저히 짐작치도 못하게, 산문에서 만난 그는 너무나 '정상적'이었다. 그는 정말, 샤먼 같았다.)

평론가 신형철은 강정의 시가 "인간과 짐승의 이종교배"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독특한 이종교배의 시에 대해 그는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지금 발화하고 있는 '것'은 '서정적 화자'라는 안온한 심급이 아니라 어떤 비인간적 에너지의 덩어리다. 둘째, 인간이기를 그만두었으므로 인간적 상상이 아니라 우주적 망상이 시를 이끌어간다. 셋째, 인간 아닌 어떤 것의 망상적 발화가 아름다운 모국어일 수 없겠거니와, 실상 그의 문장들은 일종의 외국어에 가깝다."  

다른 건 몰라도 단 하나, 시마(詩魔)의 존재를 믿는다. 네루다의 말처럼 그것은 겨울에서든 강에서든 어느 날 불쑥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시는 쓰지 않고 씌어진다. 강정 시인의 시들이, 아니 강정이라는 시인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래 옮겨 적어본 시 <노래>는 이 시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시다.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대중을 위한 립서비스(?) 차원이었을까. 시집 한 구석에 너무나 정상적인(!) 시 한 편을 꽂아넣은 시인의 내심이야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집의 작품 가운데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가 바로 이 시다.  

노래 

                                             강정 

숨을 뱉다 말고 오래 쉬다보면 몸 안의 푸른 공기가 보여요
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도 있어요
술 담배를 끊으려고 마세요
오염투성이 삶을 그대로 뱉으면 전깃줄과 대화할 수 있어요
당신이 뜯어먹은 책들이 통째로 나무로 변해
한 호흡에 하늘까지 뻗어갈지도 몰라요
아, 사랑에 빠지셨다구요?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고 하지 마세요
숨이 턱턱 막히고 괄약근이 딴딴해지는 건
당신의 사랑이 몸 안에서 늙은 기생충들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저 깃발처럼,
바람 없이도 저 혼자 춤추는 무국적의 백기처럼, 그럼요 그저 쉬세요 즐거워 죽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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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밑에 한참을 앉아 어린 담쟁이들이랑 봄볕 쬐다 들어왔다. 바람 불어 머리칼이 이파리처럼 나부낄 때 봄철에 움트는 것들이 무슨 마음인지 알았다. 그것은 실컷 낮잠자다 깬 얼룩무늬 고양이의 마음이다! 그리고 또 알았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긴 계절이 졌다는 것을. 짐승 같던 계절이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이 졌다는 것을. 애달프고 그리워할 것도 없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졌다는 것을. 그러나 시절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라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무늬가 되었더라. 암팡진 꽃씨처럼 흩어져 양지바른 곳에 뿌리 내리고 또 한 철을 그렇게 살아가겠더라. 봄이다. 거역할 수 없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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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1호 - 창간호 다언어 문화이론 및 번역 총서 흔적 1
문화과학사 편집부 엮음 / 문화과학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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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은 각국의 지식인들이 필자로 참여하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에 동시적으로 발간되는 잡지라고 한다. 직접 구해 보지는 못하고 일부만 복사본으로 읽어보았는데, 그 중 펭 치아의 <보편적 지역- 변화하는 세계에서의 아시아 연구>라는 글은 ‘지역학’이라는 학문을 주제로 한 글로, 지역학이라는 게 있는 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이 글 자체가 무시무시한 ‘수면의 지역학’이었다.  

네이버에서 ‘지역학’이란 것을 치면 이렇게 나온다: 어떤 특정 지역에 대한 타자성의 인식 아래 그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혹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활동을 총칭. 엄밀히 말해서 ‘지역학’이란 용어보다는 ‘지역연구’가 더 정확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지역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고유한 방법론이 부재하고, 지역 연구의 특성상 다른 분과 학문 즉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의 방법론과 연구 성과를 이용해야 하는 실정에 있기 때문이다. 지역연구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략적 필요에 의해 미국에서 제일 먼저 발달해 왔다. 그러던 것이 전쟁의 종결과 함께 순수한 학문의 분야로써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결론적으로 지역연구란 그 지역의 언어를 바탕으로 각각의 분과학문의 방법론과 연구 성과를 이용하여 그 지역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업적을 쌓는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 것. 

펭 치아는 분과학과 지역학이 보편자-개별자 구도를 이루어 상호 작동하는 양상을 주목하면서, 지역학이 현지조사를 거쳐 비-서구라는 타자를 포획해 오면 분과학은 포획된 타자를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버리는 이러한 학문적 메커니즘이야말로 서구유럽이 타자를 인식하는 지극히 헤겔스런(?) 태도라고 비난한다. 헤겔적 시각에서의 보편성이란, 언제나 개별자 가운데 제일 힘세고 포악한 하나가 나머지 다른 개별자들을 무참하게 포섭 장악하는 방식으로써만 전유될 수 있는 성질인 바, 이런 점에서 보편 이론의 정립을 목표로 하는 (그리고 그것을 비-서구에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데 사용하는) 모든 분과학문은 어디까지나 ‘자기 위주’의 절대정신을 구현하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지식 가공 방식인 것.

문제는 이런 방식이 선진적이고 정통적이고 일반적인 학문 연구 방식으로 전 세계에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비-서구로서의 아시아는 언제나 서구에 기반을 둔 학자들에 의해 가공되어야 할 원자료, 원천이 되고 만다. 비-서구 출신 아시아 학자들이 자신의 출신 지역을 연구하기 위해 ‘원주민 정보제공자’로서 서구로 유학 오는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왜 그들은 자기네 사회를 서구 지식의 구조와 방법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되어버렸나.

펭치아는 ‘보편-특수’라는 코드로 인간의 활동을 인식하는 것이 결코 절대적인 학문 방식은 아님을 강조하면서 개별자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서의 보편자의 개념 또한 파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보편성을 데리다의 사유를 빌려 “특수한 영토적 신체들 혹은 지역들 간에 공유하는 중단 없는 운동 속에서 거듭 절합되고 재정의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보편성은 어떤 한 특수한 개별자에 의해 전유될 수 있는 정태적인 실체가 아니라, 각각의 개별자들의 끊임없는 연쇄에 의한 계열화 운동, 개별자들의 중단 없는 공유 운동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편은 '수렴'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하나의 '모범', '전범'으로서의 가치로 전환된다. 이렇게 펭 치아는 헤겔적 색채가 강했던 기존의 낡은 보편-특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앞으로의 아시아 연구에 있어서 서구적인 보편성의 유령을 몰아낼 것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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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시선 229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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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김선우 

세상에서 얻은 이름이라는 게 헛묘 한 채인 줄
진즉에 알아챈 강원도 민둥산에 들어
윗도리를 벗어 올렸다 참 바람 맑아서
민둥한 산 정상에 수직은 없고
구릉으로 구릉으로만 번져 있는 억새밭
육탈한 혼처럼 천지사방 나부껴오는 바람 속에
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열렸다
환해진 젖꽃판 위로 구름족의 아이들 몇이 내려와
어리고 착한 입술을 내밀었고
인적 드문 초겨울 마른 억새밭
한기 속에 아랫도리마저 벗어던진 채
구름족의 아이들을 양팔로 안고
억새밭 공중정원을 걸었다 몇 번의 생이
무심히 바람을 몰고 지나갔고 가벼워라 마른 억새꽃
반짝이는 살비늘이 첫눈처럼 몸속으로 떨어졌다
바람의 혀가 아찔한 허리 아래로 지나
깊은 계곡을 핥으며 억새풀 홀씨를 물어 올린다 몸속에서
바람과 관계할 수 있다니!
몸을 눕혀 저마다 다른 체위로 관계하는 겨울풀들
풀뿌리에 매달려 둥지를 튼 벌레집과 햇살과
그 모든 관계하는 것들의 알몸이 바람 속에서 환했다
더러 상처를 모신 바람도 불어왔으므로
햇살의 산통은 천 년 전처럼
그늘 쪽으로 다리를 벌린 채였다
세상이 처음 있을 적 신께서 관계하신
알 수 없는 무엇인가도 내 허벅지 위의 햇살처럼
알몸이었음을 알겠다 무성한 억새 줄기를 헤치며
민둥한 등뼈를 따라 알몸의 그대가 나부껴 온다
그대를 맞는 내 몸이 오늘 신전이다

시집 첫머리에 실린 시다. 어떤 시집을 막론하고 첫 번째로 실린 시들은 언제나 압도적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시인이 가장 하고 싶던 말, 그리고 시인의 지문이 가장 선연하게 찍혀있는 시가 대체로 첫 번째에 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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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데올로기 1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박재희 옮김 / 청년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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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첫머리에서 맑스는 “어떠한 시대에서도 지배적 사상은 곧 지배 계급의 사상”이라고 말한다. 이런 맑스에게 역사를 지배하는 추상적 힘으로서 어떤 독자적인 정신을 상정하고 역사는 그 정신이 자기를 규정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헤겔의 역사철학은 교조적인 잠꼬대에 지나지 않았다. 사상을 낳는 기저의 힘, 사상이 만들어지게 된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이나 사상의 생산자에 대해서 일절 고려하지 않는 헤겔의 철학은 맑스가 보기에는 그저 현실을 은폐하는 사변 철학에 불과한 것이었다.

맑스는 유물론적 관점에 따라 사회의 토대가 되는 물질적 생산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그 사회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은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에게 인류의 역사는 결코 어떤 추상적이고 고아한 정신의 외화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산력의 역사였으며,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산 관계 변천의 역사였다.

향상된 생산력은 자기 활동의 조건으로 새로운 교류 형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생산력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그러한 교류 형태가 나중에는 자기 활동에 대한 질곡으로 다가오는 시기가 찾아온다. 역사상의 모든 충돌은 생산력과 교류형태 간의 모순이 발생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때 사회는 자기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향상된 생산력에 조응하는 새로운 교류형태를 또 다시 만들어 낸다. 이러한 부단한 과정이 곧 인류의 역사다.

여기서 맑스는 생산관계의 법적 표현물로서 사유재산이라고 하는 소유 형태에 주목한다. 그는 사유재산의 형태가 변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인류의 역사가 부족적 사유재산제 사회에서 고대 노예제 사회로,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적 혹은 토지적 사유제산제 사회로, 그리고 이후 부르주아적 사유재산제 사회로 넘어간다고 말한다.

4장은 변천 단계의 마지막 모습인 부르주아적 사유재산제 사회의 성립 과정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다. 그는 이 장에서 부르주아 사회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발전했는지 사회의 생산 구조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연발생적 생산용구와 문명이 만든 생산용구

먼저 맑스는 산업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회와 이후의 사회를 대별한다. 전자는 물이나 경작지 같은 자연발생적 생산 용구에 의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이고, 후자는 공장이나 기계처럼 문명이 만든 생산 용구에 의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전자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연에 예속되어 있으며, 소유가 자연에 대한 직접적 지배로 나타난다. 교환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교환을 의미한다. 개인들은 가족과 부족 및 토지 등등의 유대 하에 결합되는 것을 자기 생존의 근거로 삼는다. 이 사회에서는 육체적 활동과 정신적 활동이 분리되지 않으며, 노동 역시 분업화 되지 않은 상태다. 무소유자에 대한 소유자의 지배는 어디까지나 공동체적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격적 관계이다.

반면, 후자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노동 생산물에 예속되어 있다. 소유는 자연을 지배함으로써가 아니라 인간의 노동에 대한 지배를 통해 일어난다. 이 사회는 철저한 분업화 사회이며 따라서 공동체적 유대 관계보다 교환 관계를 통해 주로 개인 간 결합이 일어난다. 이 사회에서 지배는 화폐라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길드 시스템

맑스는 중세 이후 도시가 출현하고 점차 도시와 농촌이 분화되어가는 모습을 자본과 토지 소유 간의 분화로서 이해한다. 그리고 그는 중세 도시의 생산 구조의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토지적 사유제산제 사회가 어떻게 부르주아적 사유제산제 사회로 이행해 가는지 보여준다. 도시를 향한 농노들의 도망은 중세 사회가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들 농노들은 도시 안에서 아무런 권력을 획득할 수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노동은 숙련을 요하는 전문직의 노동이 아니라 그저 날품팔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시에서 뿔뿔이 흩어져 빈민으로 살아갔다.

빈민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당시의 도시는 도제 시스템이 모든 직종에서 조직화 되어 있었다. 장인과 장인 밑에서 수련하는 직인들은 화폐를 매개로 한 고용-피고용의 관계가 아니라 가부장적 유대관계로 이루어진 사이였다.

또한 노동의 분업화가 아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 사회에서의 자본이란 투자가 빠른 근대적 자본과는 다른 종류였다. 그것은 소유자의 특정한 노동 분야에 직접적으로 결합된 채 결코 그 노동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본이었다.

도시들 간의 노동 분업과 공장제 수공업의 출현

그러나 이후 노동 분업은 점차 확장되었다. 생산과 교류가 분화되고 장인이 만들어낸 것을 판매만 하는 계급, 즉 상인이라고 하는 특수한 계급이 형성되었다. 상인들이 활동하면서 도시 간 상업적 교통 또한 활발해졌다. 생산과 교류가 분화되고, 교류의 규모 또한 확장되면서 도시 간 경쟁이 심화되고, 마침내 도시들 간에도 새로운 생산의 분업화가 일어났다. 도시로서 존속하기 위해 각 도시마다 대규모 특화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이제 각 도시는 제각기 하나의 주요 산업 분야를 개척하여 떠맡게 되었다.

도시 간 노동 분업의 결과 출현한 것이 ‘공장제 수공업’이라고 하는, 길드 체제의 틀을 벗어난 생산 방식이었다. 이 새로운 생산방식은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우선 소유관계가 변화했다. 공장제 수공업은 대량의 자본 동원을 필요로 했으며, 이때부터 근대적 의미의 자본이 개인들 손에 축적되기 시작했다. 일부는 길드 내에서 일부는 상인들 내에서 손쉽게 이동 가능한 근대적 의미의 상인 자본이 축적되었다.

한편, 공장제 수공업은 도시로 도망쳐 왔으나 딱히 가진 기술이 없어 날품팔이 신세를 면할 길이 없던 농노들에게 유익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공장제 수공업은 봉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생긴 유랑자들 역시 재빨리 흡수하였다.

공장제 수공업의 출현과 함께 여러 나라들은 각각 보호관세, 수입금지, 각종 조약 등을 내걸고 상업 전쟁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상업은 정치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공장은 특권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경쟁이 가속화된 나라들은 외국 간 경쟁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특권을 공장주들에게 허용했다. 공장제 수공업은 국내 시장에서는 보호 관세에 의해, 식민지 시장에서는 독점에 의해, 그리고 해외에서는 여러 가지 차등 세금들에 의하여 가능한 한 보호받았다. 반면, 소(小)부르주아들이 모인 길드는 점차 공장제 수공업의 위력 앞에서 몰락해 갔다.

공장제 수공업의 출현은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길드에서는 장인과 직인들이 가부장적 관계로 맺어져 있었으나,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화폐 관계가 나타났다.

길드가 융성했던 시대에는 도제 수업을 통해 숙련된 기술을 갖춘 장인과 직인들이 일종의 전문 인력이었으므로 당시에 근대적 의미의 자본가가 희소하게나마 활동했다 한들 그는 노동과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여 간섭할 수 없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자본가가 취할 수 있는 이윤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의 출현과 함께 협업 체제가 발달하고 기계가 도입되면서 기계에 장악된 노동은 점차 숙련노동의 성격을 잃어갔고, 자본은 노동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는 점차 심화되었다.
 
대규모 공업의 발달

공장제 수공업이 대두했다고는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정치적 영향력은 상업에 집중되어 있었고, 공장제 수공업이 상업에 주는 영향력이란 미미한 것이었다.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장제 수공업은 상업에 비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분야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영국을 시초로 대규모 공업사회가 등장하게 되면서 이런 관계는 역전된다. 19세기 등장한 대규모 공업은 상업을 자기 자신에게 예속시켜 모든 자본을 산업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대규모 공업은 근대적 세계시장을 낳았으며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신속한 유통 체계와 자본의 집중을 만들어냈다.

대규모 공업이라는 생산 방식의 변화는 사회의 많은 모습을 바꾸었다. 대규모 산업은 수공업을 비롯한 이전의 모든 단계의 산업을 파괴했다. 노동은 일체의 자연적 성격을 잃었다. 농촌은 몰락하고 도시는 비대해졌다. 도시 안에서는 계급의 분화가 또렷해졌다. 개인들의 생활 조건은 계급에 의해 좌우되었으며, 생활상의 지위 및 인격적 발전 역시 자신이 속한 계급에 귀속되었다.
 
대규모 공업 및 자유경쟁 하에서의 생산력과 교류 형태 간의 모순,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

도제 사회였던 중세 도시에서의 자본은 소유자의 특정한 노동 분야에 직접적으로 결합된 채 결코 그 노동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본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공업사회에서는 노동과 자본이 분리된다. 축적된 노동과 현실적인 노동이 분리되는 것이다. 또한 분업이 심화됨에 따라 노동의 조건 또한 분열하여 노동 도구와 노동 재료 간의 분리가 일어나고, 그에 따라 도구의 소유자와 재료의 소유자에게로 각각 자본이 분리되어 축적된다.

이렇게 대규모 공업사회의 노동 분업은 자본과 노동 간의 분열 뿐 아니라 갖가지 서로 다른 소유 형태까지도 내포한다. 노동 분업이 발전함에 따라, 또한 축적이 진행되고 증대됨에 따라 이러한 분열 역시 더욱 첨예해진다.

또한 대규모 공업사회에서 생산력은 각 개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자적인 세계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생산력은 분산되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개인들을 결합하는 현실적인 힘으로서 작용한다. 사람들은 일체의 현실적 생활 내용을 박탈당한 채 추상적 개인으로 살아가지만, 또한 바로 그 사실로 인하여 개개인들이 ‘개인으로서’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해진다.

근대적 사유재산제 사회로의 이행에 있어 국가의 역할

근대적 사유재산제 사회에서 사유재산 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재산을 사수하기 위해 조세나 국채 등의 수단을 동원해 근대 국가를 장악한다. 결국, 국가란 유산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익을 그 속에서 관철하는 형태로서 존재하게 된다. 지배 계급의 이익을 관철하는 국가는 무엇보다도 자본의 증식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시초가 되는 자본, 즉 본원적 자본의 축적에 깊게 관여했다. 자본의 시초 축적은 국가의 대규모 폭력이 동원되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본의 본원적 축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선 지배세력과 기득권층에 의한 폭력과 약탈, 강압과 협박에 의해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가 자행된다. 그 결과 자본가의 생산수단 독점이 이루어지고, 근대적 무산자가 대규모로 양산되어 인력풀이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시장은 더 이상 원시적 형태의 ‘단순상품 내지 소생산에서 비롯되는 국지적인 자연발생적 교환의 장으로서의 시장’이 아니라, ‘기아와 결핍에 의하여 시장에 나가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적 시장’이다.

국가는 통치 전략으로서 이러한 시장의 전국적인 확대를 지원하는 한편, 노동력으로 기능할 수 없는 자들은 치안을 이유로 모조리 수용소, 병원, 학교, 감옥 등에 격리 또는 감금하고, 교화와 훈육 및 처형을 감행한다. 즉 근대 이후 자본주의 국가는 거대한 국가적 폭력이 개입하여 지극히 부도덕한 방식으로 성립된 셈이다. (이 부분은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진경, 그린비, 2004)》 참고)  

사유재산제 폐지의 필연성, 전제 조건 및 그 결과


자본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일체의 자기 활동을 박탈당한 채 자본가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그들의 노동은 더 이상 유적 존재로서의 자기 활동이 아니라 물질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즉 월급을 타서 생계를 잇기 위한 벌이, 즉 수단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들이 유적 존재로서의 자기실현을 이루기 위해 생산력들의 총체를 그들 자신의 것으로 점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점취가 사유재산 폐지를 통해 가능하며, 이 모든 과정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단결과 혁명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혁명은 오래 지속된다

맑스는 사유재산제 폐지를 주장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예견하지만, 역사는 결코 그 내적인 논리에 따라 원시공동체에서 노예제, 자본주의, 공산주의로 이행되어가는 식의 단선적 흐름이 아니었다. 공산주의 사회는 20세기 중반에 이미 실패한 실험으로 판명되었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자본주의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지배적인 경제 형태로서 맹위를 떨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 역시 빈부 격차, 경쟁, 자원 낭비, 과잉 생산, 실업률의 증가, 불황과 공황, 기계화와 분업화로 인한 노동 소외 등 자본주의가 낳는 각종 모순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그런 점에서 맑스는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맑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본을 넘어선 자본》에서 저자는 공산주의와는 구별되는 '코뮨주의'를 제안한다. 공산주의가 내부성의 논리를 따라 자본주의 발전 법칙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코뮨주의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 안에서 자본의 '외부'를 구성하려는 부단한 시도이며, 이는 곧 다양한 양상으로 창안되고 창출될 수 있는 '현재'의 시제를 갖는 이행운동이라는 것이다.

훗날 자본주의의 맹아가 된 중세의 자치도시라는 것도 말하자면 봉건신분제라는 당대의 주된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탈주한 '외부'의 영역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당대의 외부였던 중세의 자치도시를 다음 시대를 향해 가는 하나의 '이행운동'으로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혁명으로 점화된 20세기 체제 실험이 거대한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자본주의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이 시대에도 중세의 자치도시처럼 시스템의 외부를 형성하려는 전략들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있음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들이 점진적으로 축적되어 언젠가는 분명, 지난 세기의 그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임계치를 넘어서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끊임없이 외부를 구성하여 탈주의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점진적으로 이행되어가는 운동이 여전히 이 시대에 현재진행형으로서 계속되고 있는 한, 맑스가 꿈꾸었던 혁명은 결코 실패로 돌아간 게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체제 내부의 무수한 맹점으로부터 발아하는 조용한 혁명, 무수한 외부로부터 서서히 번져나가는 21세기형 혁명! 어쩌면 밤늦게 맑스를 함께 읽는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한 혁명의 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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