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개정판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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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년 전에 전작 <보다>를 보고 결심했다. 이 사람의 모든 산문을 다 읽어치우겠노라고. 그리하여 두 번째 책. 진도가 이렇다. 어쩌랴, 이게 딱 내 속도인 것을. 오래 살기를 바라야 하나? 그것은 더 싫다.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다. 나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것이다. 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된다. 그렇다면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읽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28~29쪽

글쎄 이런 게 난 오히려 책에 빠진 사람의 오만이 아닌가 싶네. 책에 빠져 독서를 절대화하다 보면 이렇게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사실 자기만의 알고리즘에 의해 자기 믿음을 (그리고 에고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나가게 되는 것 아닐까. 우리는 밑도 끝도 없이 난데없는 책을 손에 들지는 않는다. 개인의 자발적 읽기라는 것은 대개 광맥이 뻗어나가는 식의, 자기 세계를 공고하게 형성하고 확장해 나가는 식의 읽기가 아닐지. 우리에게 분열을 안겨주는 것은, 그러니까 진정한 겸손을 가르쳐주는 것은, 차라리 낯선 사건의 체험일 것이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관계, 새로운 언어, 거기서 움트게 되는 새로운 사고방식- 그러니까 판이 달라지는 새로운 게임.

우리가 이렇게 ‘복잡하게 나쁜’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하여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갖는 공포심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 소설은 바로 그런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이라는 백도어를 이용해 침입한 바이러스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젠가 가해자로 돌변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기 시작하지만, 이런 공포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작가와 작품에 의해 자기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성찰하게 된다. -172쪽 


귀퉁이를 눌러 접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문학이 매혹적인 동시에 매캐한 숲 같다고 느낀 적은 있어도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네. 균이라고 (가혹하게!) 규정하니 문학에 대해 품었던 그간의 모든 미심쩍 혐의들이 명석하게 정리가 된다. 그래, 균이었구나, 균이어서 그랬구나. 아마도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보균자와 비보균자. 분류는 이것으로 족하다. 문학에 감염되어 급기야 죽어버리는 경우는 흔치 않을 테니. 어쩌면 보균자는 보균자를 알아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낌새를 맡는달까. 문학적 낌새 말이다. <롤리타>, <파리대왕>, <보바리부인>, <죄와 벌>, <소프라노스> 등 책에서 알려준 몇몇 바이러스(!)들은 언젠가 꼭 접해보고 싶다. 이런 속도로 나아가다가는 죽기 전에 감염이나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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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베토벤 : 교향곡 6번 '전원' & 슈베르트 : 교향곡 5번 - DG Originals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외 작곡, 칼 뵘 (Karl Bohm) 지 / DG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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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심포니 5번. 싱그럽고 사랑스럽다. 칼 뵘의 1악장은 너무 장중한 것 아닌지. 1악장만큼은 아바도가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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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Hardcover, Revised)
Diamond, Jared / W W Norton & Co Inc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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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은 제국주의 시대의 풍파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을까? 왜 일방적으로 몰락하고 말았을까? 이 책은 한 문명이 권력과 우위를 점하는 직접적인 이유에 대해 병원균, 과학기술(총기를 비롯한 각종 발명품, 제련술과 인쇄술에서 군사기술과 해양기술에 이르기까지), 중앙집권적 정치(+종교)조직, 문자의 보유를 꼽고, 이를 가능케 했던 근원적 요인에 대해서는 식량생산을 지목한다. 수렵채집에서 가축사육과 작물생산으로의 변화가 대륙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문턱이었다면 이 변화는 왜 지역마다 그 시점과 속도가 고르지 않았을까. 심지어 어떤 지역은 왜 이런 변화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까.

책에 의하면 선사시대의 초기농경은 수렵채집에 비해 딱히 월등한 이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어떤 사회를 유랑형 수렵채집경제와 정주형 식량생산경제로 명확히 구분짓기도 어려웠다고. 수렵채집과 식량생산은 각 사회가 처한 나름의 여건에 따라 가성비적 관점에서 적정비율로 취사선택하는 생계 방식이었지, 여기서 저기로의 비가역적 도약이나 의식적 혁명이 아니었던 것. 저자는 식량생산 경제로의 최종적인 안착이 사냥감의 감소,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의 증가, 먹거리 가공과 저장 기술의 발달, 인구증가와 같은 요인에 따라 생각보다 훨씬 더디고 무의식적으로 사회마다 제각각 진행된 변화였다고 본다.

지역마다 농경목축이냐 수렵채집이냐를 놓고 수지타산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 책에서는 매우 상세하게 살피고 있다. 가령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지리적 이점과 기후 조건 때문에 야생 곡류 식물의 종류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다양하고 종자 크기 또한 월등했다거나, 그곳에선 동물군 또한 다양해서 여러 동물의 가축화가 일찍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거나, 반면에 중앙아메리카 같은 경우 키울 수 있는 동물이라고는 오직 칠면조와 개밖에 없어서 19세기에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 동물을 농업에 이용하지도 못했다든가. 설상가상으로 아메리카는 대륙의 모양이 남북으로 길쭉한 바람에 위도에 따라 생태조건이 크게 잘라져 농작물과 가축이 전파되는 속도가 유라시아에 비해 훨씬 느렸다고. 오스트레일리아는 어떤가. 거기는 땅이 척박하기도 하거니와 엘니뇨 남방 진동 때문에 연중 기후가 불규칙해 차라리 그때 그때 날씨 봐가며 먹거리 조건 나은 지역으로 이동하며 사는 게 정착형 농경보다 생존에 유리했다고.

요는, 지역마다 지리와 기후가 달랐던 만큼 주어진 야생동식물의 전체 구성 또한 달랐고, 투입 시간과 노동력을 최소화하면서 최대치의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는 그 중 어떤 것들을 어떤 비율로 선별하여 어떻게 가공해 먹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계산이 사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생산과 맞물린 인구증가는 수렵채집 중심의 사회가 이러한 계산 속에서 마냥 자족적으로 영속할 수만은 없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즉 초반에는 각 사회마다 수렵이나 농경이 다양한 비율로 혼재했지만 식량생산 비중이 높은 사회는 점차 인구가 많아져 총균쇠를 보유하기도 전에 오로지 규모의 힘으로 이웃 사회를 몰아낼 수가 있었고, 나중에는 이웃에 짓밟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다들 식량생산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이 책에서는 중앙집권국가의 기원도 치수사업이 아니라 인구증가로 설명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문명 발흥 이전의 인류사를 개괄하고, 폴리네시아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대륙의 환경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 다음, 이 책의 표지 그림이기도 한 피사로의 잉카 정복 사건으로 넘어가 두 문명이 극적으로 충돌했던 역사적 순간을 조명한다. 이어 2부는 문명의 권력우위를 가르는 심층적 요인으로서 식량생산의 기원과 형성과정, 3부는 식량생산이 어떻게 이 책의 제목인 ‘총•균•쇠’로 이어지는지(즉 심층적 요인인 식량생산과 표층적 요인인 세균, 문자, 과학기술, 고도화된 정치조직이 서로 어떤 관련을 맺으며 연결되는지), 마지막 4부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중국, 동남아시아, 태평양 섬나라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주요 지역의 사례를 통해 2~3부의 분석을 구체적으로 재확인한다. 앞서 적었던 내용은 이 책의 핵심이라 보여지는 2부 일부를 간추린 것이고 이후에도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탐구가 이어지는데, 읽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놀라운 사실들이 많다.

콜럼버스 등장 이후 유럽인이 휘두른 총칼에 의해 사망한 아메리카 원주민 수보다 유럽인으로부터 퍼져나간 세균 때문에 침상에서 자연병사한 원주민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든가. 심지어 미국의 선조들이 아메리카 내륙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한참 전에 이미 유럽발 세균으로 인하여 원주민의 95%가 초토화된 상태였다고. 아메리카 대륙은 가축으로 키울 만한 동물이 별로 없었던 탓에 다양한 인수 공통 바이러스를 보유하지 못했고 이것이 훗날 불평등한 세균 교환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메리카에서 바퀴의 발달이 지지부진했던 데에도 복잡한 내막이 있었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사회에서 일찍이 바퀴를 고안해 내긴 했었으나 이곳에서는 바퀴에 체결하여 운송 수단으로 활용할 만한 대형 포유류가 없어 바퀴의 마땅한 쓸모를 찾지 못했다고. 더 안타까운 사실은 바로 지척의 안데스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유일무이한 대형 포유류인 라마가 (그마저도 유라시아의 소, 말 따위에 비하면 체구나 노동력이 영 시원찮기는 했지만) 가축으로 키워지고 있었음에도 지리적 단절로 인해 무려 오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라마와 바퀴가 서로 만나지 못했다는 것. 가축과 작물은 물론이고 발명품과 과학기술마저 그 확산에 있어 지형적 악조건이 큰 장벽으로 작용한 경우이다.

이 책은 어떤 사회 나아가서는 어떤 문명이 한 시대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의 결정적 변수가 절대적으로 환경(가축화•작물화 할 수 있는 동식물의 종류, 대륙 내 혹은 대륙 간 가축•작물•사회제도•언어•기술 등의 확산 및 전파의 용이성의 정도, 대륙의 면적과 인구 규모)의 영향임을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검증을 통해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특정 인종이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게 된 까닭은 그 인종의 생물학적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 좋은 환경 속에서 우연히 얻게 된 기회 덕택이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셈이다. 거대한 주제와 부담스런 두께 때문에 오랫동안 경원하며 책장에 모셔두기만 했었는데, 온갖 구체적인 자료들과 다채로운 사례가 쉴새없이 등장해 지루할 틈 없이 그래도 어찌저찌 등반은 하게 된다. 승자의 협소한 시선이 아닌, 생태지리학과 진화생물학에서 고고학과 언어학까지 종횡무진 넘나드는 현대 과학의 입체적인 시선으로 (그러니까 피사로의 그것보다는 좀 더 반성적인 시선으로) 복기하니 인류사가 새롭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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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ffany's Table Manners for Teenagers (Hardcover)
Walter Hoving / Random House Childrens Books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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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쥬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 회장이 쓴 테이블 매너 교본. 식사 자리에서 장신구보다 더 그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이 테이블 매너라고 생각해서였을까. 티파니 브랜드 컬러를 차용한 표지 디자인, 위트가 깃든 간결한 문장들, 이해를 돕는 예쁜 삽화하며. 종종 방문하던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곤 꼭 소장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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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출간 10주년 기념, 그 후 이야기 수록, 개정판) - 암, 임사체험, 그리고 완전한 치유에 이른 한 여성의 이야기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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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두에 둘 만한 두 가지 조언이 있는데, 내 맘대로 살을 붙인 것이기는 하지만, 첫째, 본능과 직관을 믿어라. 서구 근대 교육은 그런 것들을 억누르거나 괄시하는 편에 가깝지만, 본능적 감각과 직관적 인식이야말로 우주 전체와 맞닿아 있는 내면의 목소리인 것. 둘째, 우리는 에고를 버릴 수도 없지만 버릴 필요조차 없다. 오히려 보살피고 사랑해줄 필요만 있다. 에고는 우리가 개체로서 우리 자신의 독창성을 창조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조건이다. 벗어나고자 애쓰면 오히려 불필요한 반동만 낳을 뿐, 그대로를 따듯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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