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새로운 길 - 종교적 키치, 예술적 키치, 그리고 구원
조중걸 지음 / 지혜정원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저자의 또 다른 책 <키치, 달콤한 독약>과 짝패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독서의 완결성을 위해서는 이 둘을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하겠다. <키치, 달콤한 독약>이 주로 키치에 대한 정의와 분석적 통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그 적용 범주를 예술 뿐만 아니라 신앙, 윤리, 원리주의, 민족주의, 지성의 영역 전반으로 확장하면서 키치가 출현하게 된 철학사적 맥락과 역사적 배경을 소상히 짚어낸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한편으로는 ‘한 권으로 읽는 서구 문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르주아의 이념적 반동 심리와 졸부 근성에 기원을 둔 키치가 그 어떤 시대보다도 거대서사가 붕괴한 우리 시대에 만연해 있는 병리적 특질이라고 진단한다면, 키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포괄적 조망은 필연적이리라. "우리가 현대를 궁극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과거의 모든 시대들과의 차연의 종합으로서"(156)이기에.

 

쏟아내는 이야기의 규모는 방대하고 그 종합적 해석과 통찰은 날카롭다. 정치, 종교, 사회, 철학, 문학, 예술, 수학, 과학 등등 온갖 방면을 종횡무진하며 흩뿌려놓은 보석 같은 조각들을 하나씩 꿰맞춰 나가다 보면 거대한 그림이 보이는 듯하다. 그동안 밤하늘에 둥둥 뜬 별들을 멀뚱히 올려다보고만 있다가 갑자기 별자리가 만들어지는 현란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 것과도 같은 상황이랄까. 넋이 나갈밖에. 때로는 너무나 무리한 주장이 아닌가 저어되기도 하지만, 아마도 저자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별자리는 "확정된 사실도 아니고, 항구적이거나 보편적이거나 필연적인 사실도 아니"(170)라고, 이 또한 인간 상상력의 소산일 뿐이며 "오류일 수도 있는 전제"(169)를 필히 가정해야 한다고.

 

행간에 면면히 흐르는 지적 치열함, 당대의 세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어떤 절박성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결코 이 책을 이렇게 읽어선 안 될 것 같은데, 풍성한 지식의 향연 앞에서 마냥 황홀한 독서 체험이고 말았다. 이 책을 대단히 키치적으로 소화했다는 방증이겠다. 키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개진하고 있는 이 책을, 이거야말로 한 권의 훌륭한 교양서가 아닌가 감탄하며 키치적으로 읽다니 자조할 만한 역설이다. 어쩌겠나. 교양(으로 간주되는 것)을 황홀하게 소비하는 것- 이것이 바로 키치적 태도에 단단히 매몰된 딜레탕트의 한계인 것을.

 

의미의 죽음에 대한 상세하고도 냉엄한 전언이자 그러한 죽음에 대한 안일한 대응으로서의 키치를 고발하고 있는 이 책을 힘겹게 덮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면, 밤하늘은 여전히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하다. 의문이 들 수밖에. 모든 의미가 소멸한 이 시대에, 과거의 실재론 또는 합리론 계열의 철학자를 좇는 일은 과연 "병든 행복"(240)에 잠기는 일인가? 의미를 재건하고자 하는 이 시대 철학자들의 시도는 "어리석음이며 위선"(192)에 불과한가? 어차피 우리 모두 새장에 갇힌 신세라면, 실재에 대해 그 누구도 닿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 누구도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라면, 결국 어느 산에 오르느냐 하는 선택도, 어떤 산을 건설하느냐 하는 결심도 모두 그저 개인의 기질에 따른 심미적 취향의 문제 즉 "마음의 경향"(275)에 의해 좌우되는 문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이 화단을 휩쓸던 6-70년대에 인물 초상을 고수했던 신사실주의 계열의 화가 앨리스 닐은 "추상은 인간을 외면한다. 나는 여전히 휴머니즘을 지향한다."며 주류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한다. 자기인식적 시대착오는 더 이상 시대착오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키치도 아둔함도 아니며, 다만 또 하나의 결의이다. 책장에 꽂힌 채 어느덧 기약 없는 숙원사업이 되어버린 나의 <존재와 시간>이, 이 책의 매서운 전언에도 아랑곳 않고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선 꺼지지 않는 온기와 빛을 발하며 살아있다. "순진한 자부심"(291)인가? 그럴 지도. 그러나 이 또한 "단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내적 요구"(283)일 뿐이다. 결국 나는 이 책을 다소간은 키치적으로, 다소간은 우이독경으로 소화한 셈이 되고 말았다.

 

*

 

사족- 책에도 운명 같은 게 있을까. 그렇다면 이 책의 운명은 험난해 보인다.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워서 외면할 테고, 책을 읽는 소수의 일부는 지적 포만감에 취해 키치적으로 읽을 것이며(그리함으로써 키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개진하고 있는 이 책이 결과적으로는 한 권의 훌륭한 교양서로서 키치적 향락의 대상이 되는 역설에 처할 것이며), 나머지 일부는 그 누구보다 근대 교육 과정을 착실하게 이수한 전형적인 근대인으로서 이 책이 말하는 죽음을 끝내 인정하기 어려울 테니까. 오탈자와 몇몇 불편한 문장이 눈에 띈다. 개정판이 나올 때 다듬었으면.


156쪽: 전제군주만이 시민을 어둠 속에 가두지 않는다. → 전제군주만 시민을 어둠 속에 가두는 것은 아니다.

205쪽: 사실주의 예술과 인상주의 예술에 대한 부르주아 계층의 반발은 기득권 계층의 이념은 언제나 지성과 의미 속에 고형화되기 때문이다. → 사실주의 예술과 인상주의 예술에 대한 부르주아 계층의 반발은 기득권 계층의 이념이 언제나 지성과 의미 속에 고형화되는 까닭이다. (제안)
236쪽: 박에 → 박애
304쪽 밑에서 4번째 줄: 만약 그가 새로운 세계에 창조하여 → 만약 그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여
315쪽 밑에서 5번째 줄: 작품을 상품이나 부르고 → 작품을 상품이라 부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적으로 김지은의 입장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당시의 사건이 어떤 맥락과 토대와 문화 속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었는지 짐작해보게 한다. 사건이 개연성을 갖출 수 있는 배경이 되는, 저자가 몸담았던 조직의 현주소가 책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예비 군주를 추앙하는 충성심 강한 중세 봉건 집단과도 같은, 젠더 감수성은 부재하면서 동시에 절대적인 복종심으로 단결한, 엄격한 위계를 갖춘 신앙 공동체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 조직의 성격에 눈길 가지 않을 수 없다. 비난과 선동은 인터넷 댓글 한 줄이면 충분하나 해명을 위해서는 책 한 권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것으로 부디 작은 위로를 보탤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진영 동요집
김진영 지음 / 교문사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치지 않는 노래 아빠가 부른 노래 / 엄마가 부른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 그치지 않는 노래 하루가 기뻤을 때 / 웃으며 듣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 그치지 않는 노래 슬픔이 가득할 때 / 위로를 얻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 그치지 않는 노래 피곤하고 지칠 때 / 새 힘을 얻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 그치지 않는 노래 아빠 사랑 기억해 / 엄마 사랑 기억해 그치지 않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이 노래를 들을 때 / 언제나 아이 되는 그치지 않는 노래 / 그치지 않는 노래 한동안 잊고 살아도 / 또 다시 듣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 그치지 않는 노래 어른이 되어서도 / 함께 부르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 그치지 않는 노래 엄마 아빠가 되면 / 아이에게 불러줄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 인생의 길 다가고 하늘의 품에 안길 때 / 들으며 가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조악한 편곡과 경박한 전자음 일색의 기성 동요들에 수개월을 피폭 당해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김진영 동요를 만났다. 거의 귀의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너스레가 아니다. 아마도 출산 이후 아이와 함께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일 듯. 수많은 주옥같은 노래 중에서도 <그치지 않는 노래>는 단연 압권이다. 이 노래로 존 레논 작곡상인가를 받았다고 한다. 심보선 시인이 그랬던가, 노래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생의 완벽을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 물리학 3대 이론 - 상대성 이론 / 양자론 / 초끈 이론 뉴턴 하이라이트 Newton Highlight 77
일본 뉴턴프레스 엮음 / 아이뉴턴(뉴턴코리아)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춤추는 물리>에선 머릿속에 사물의 형상을 그려내야만 비로소 그 대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뉴턴적 세계관의 부산물이라면서 우리가 뉴턴을 극복하려면 그러한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물리학 이론을 친절하고 세심하게 그림으로 설명해주는 이 책의 면전(그런 게 있다면)에 그 누가 돌을 던지랴. 우리는 모두 뉴턴의 자식들인 것을. 그림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퀀텀 - 만화로 배우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한빛비즈 교양툰 6
로랑 셰페르 지음, 이정은 옮김, 과포화된 과학드립 물리학 연구회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로 배우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만화로 봐도 모르것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